매년 노벨상 주간에 앞서 진행되는 이그노벨상은 ‘사람들을 웃긴 뒤 한 번쯤 생각하게끔 만드는’ 괴짜 연구에 주어진다. 오리 떼가 일렬로 헤엄치는 이유를 유체역학적으로 분석하거나 변비에 걸린 전갈이 제대로 짝짓기를 찾을 수 있을지를 탐색하는 연구는 많은 사람에게 하나의 웃음거리, 괴짜 과학자의 황당한 연구 정도의 인상을 남긴다.
2024년 이그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엉덩이 호흡’ 연구는 그 이름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이그노벨상 수상위원회는 일본‧미국 학자로 구성된 이들 연구팀은 생쥐, 돼지를 비롯한 많은 포유류가 항문을 통해 호흡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낸 공로를 높이 샀다. 그런데 최근, 이 아이디어를 인간에게 적용한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사람을 대상으로 같은 원리를 적용한 첫 임상 시험 결과가 최근 국제 학술지 《메드(Med)》에 실린 것이다. 엉뚱한 발상의 이면에 어떤 가능성이 숨겨져 있을까?
미꾸라지의 호흡법에서 아이디어를 찾다
연구를 주도한 미국 신시내티 어린이병원 의료센터의 다케베 다카노리 교수는 장기 오가노이드 의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그는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폐를 거치지 않고도 산소를 공급받는 방법이 없을지 의문을 품었다. 이에 미꾸라지나 해삼 같은 바다생물이 저산소 환경에서 장을 통해 물속 산소를 흡수하는 것에 영감을 얻고 이들의 '장내 산소 호흡(enteral ventilation)' 원리를 포유류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이그노벨상을 받은 2021년 연구는 바로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연구팀은 관장의 방식으로 생쥐와 돼지의 직장에 ‘퍼플루오로데칼린’을 주입했다. 과불화탄소의 일종인 이 물질은 공기 중 산소 농도와 비슷하게 산소를 녹일 수 있는 액체로, 체내에 들어가면 보통의 숨쉬기로 공기를 얻었을 때처럼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 작용이 일어난다. 실험 결과, 해당 물질이 직장에 주입된 포유류들은 저산소 환경에서도 정상적인 움직임을 유지했다. 즉, 항문에 공기를 주입한 후 장을 통해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연구진들은 포유류의 장내 호흡이 호흡기 질환 환자를 위한 방책이 될 뿐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처럼 인공호흡기가 부족한 재난 상황에 새로운 산소 공급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엉덩이 호흡, 안전할까?
이그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은 다케베 교수는 “복잡한 심경”을 느낀다면서도 이를 통해 장내 호흡 기술에 관한 관심을 불러온다면 기쁠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당시 진행 중이던 인간 대상의 임상 1상 연구의 후속 연구를 모두 마친 뒤 그 결과를 지난 10월 《메드》에 발표했다.
연구에는 20~40세 건강한 남성 27명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산소를 포함하지 않은 퍼플루오로데칼린 액체를 적게는 25밀리리터에서 가장 많게는 1,500밀리리터까지 용량을 늘려 직장에 주입했고, 피험자는 한 시간 동안 누운 자세를 유지했다. 실험 결과, 참가자 대부분에게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 참가자가 복부 팽만감이나 불편감을 토로했지만, 출혈이나 감염 등 이상 반응은 없었다. 내시경 검사를 통해 장벽이 손상되지 않은 것이 확인되었고, 투여 후 생리적 지표(혈압·심박수·체온)도 정상 범위를 유지했다. 투여된 액체는 24시간 내 대부분 자연 배출되었다.
이번 인간 대상 연구는 엉덩이 호흡법, 즉 산소를 포함한 장내 호흡 실험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아직 산소를 포함하지 않은 액체를 한 시간가량 주입했을 때 장내 가스 교환에 문제가 없는지, 독성 반응이 발생하지 않는지 등을 먼저 살핀 것이다. 연구진은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대체 산소 전달 경로의 기초 자료를 확보했다.”라며 이후에는 산호를 포함한 액체로 혈중 산소 포화도를 높이는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통의 방식으로 숨 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이 연구는 ‘포유류도 장을 통해 숨 쉴 수 있다’는 초기 아이디어가 실제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음을 입증한 데 있다. 다케베 박사의 처음 고민처럼 폐나 기도가 손상되어 인공호흡기를 사용할 수 없는 환자들은 이 방법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다. 중증 폐 질환자나 신생아처럼 기도 확보가 어려운 응급 상황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처치법이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장은 호흡보다 소화에 특화된 기관이기에 산소 교환을 장시간 반복하면 점막이 손상되거나 염증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변화, 약물과의 상호작용 양상도 고려해야 한다. 안전성에 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물속 생물에서 착안한 새로운 호흡법은 보통 사람들처럼 숨쉬기 어려운 환자를 위한 활로가 될지 모른다. 처음은 웃고, 다음은 생각하게 하는 이그노벨상의 취지를 실현하는 장내 호흡 연구의 상용화 과정이 기대되는 이유다.
글 : 맹미선 과학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
<저작권자 ⓒ 과학향기(http://scent.ndsl.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