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지금 사용하고 있는 키보드를 한번 보자. 데스크톱, 노트북, 심지어 태블릿을 써도 간편하고 빠르게 입력하는 도구로 키보드만 한 게 없다. 스마트폰 정도로 작은 크기라면 터치로 입력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긴 문장을 입력하려면 손가락이 내지르는 비명을 피할 길 없다. 심지어 손가락으로 키보드 치는 느낌을 내려고 블랙베리 같은 물건도 나오지 않았나. 예전 같지 않지만. 아무튼 컴퓨터 입력 도구로써 키보드가 수십 년 동안 사용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요즘 키보드는 예전보다 세분되었고 다양한 용도(?)로 유통되고 있다. 단순히 글자를 입력하고 명령어를 넣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적’인 물건으로 신분 세탁이 이뤄지는 중이다. 그 결과 다양한 스위치가 등장하고 있으며, 키보드의 물리적인 구조와 설계도 사람이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 "이럴 바에 내가 직접 만들어 쓴다!" 기성품은 모두를 만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커스텀' 제품이 등장한다


그런데 제조사들이 만드는 제품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호불호가 갈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최적의 설계로 만든 제품이라도 구매자의 성향에 맞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반으로 갈라진 인체공학 키보드가 그렇다. 누군가는 편하다고 느끼지만, 누군가에겐 세상 불편한 키보드일 수도 있다. 


자, 이쯤 되면 떠오르는 것이 있을 터. 그래, 바로 그거다. ‘아오! 이럴 거면 내가 직접 만들고 만다!’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커스텀 키보드’다.



이보시오, 거 커스텀 키보드가 무엇이오?


이름 그대로 내 맘대로 만들어 쓰는 키보드 되시겠다. 비록 나만 쓰는 것이니까 널리 자랑하기도 어렵고, 들고 다니기도 조금 난감하지만 오로지 내 취향에 맞는 키보드를 구성해 만들어 쓰는 것이므로 만족도는 1000%!


커스텀 키보드의 이점은 단연 ‘나만의’ 입력 장치를 손에 넣는 것. 기존 키보드 제조사들 제품에서 찾기 어려운 구성과 구조의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개인맞춤형 키보드가 된다. 또한 부품을 내 마음대로 넣을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고급화할 수 있다. 


변태적 스위치 구성도 가능하다. 쿼티(QWERTY) 입력 부분은 청축을 쓰고, 숫자나 키패드는 적축으로 만들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키캡도 어디는 무각(아무 것도 인쇄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다른 부분에는 측각(키캡 측면에 인쇄한 것)을, 또 다른 부분은 정각을 써도 된다. 키캡 재질도 PBT를 쓰던지 ABS나 POM을 쓰든지, 나무를 쓰든지 또는 금이나 티타늄을 쓰든지 상관 없다.


▲ 그냥 구매하려고 해도 비싼 기계식 키보드. 사실 내가 만들면 비용이 더 많이 든다. 마치 고급 요리를 집에서 직접 해 먹는 것과 비슷한 느낌?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 일단 내 마음대로 만들다 보니까 가격이 상당하다. 하우징부터 키판, 키캡, 스위치, LED 등을 추가로 달아야 한다. 그것도 직접 주문해서 말이다. 기성품이야 엄청난 수량을 찍어내기 때문에 원가절감 요소가 많지만 커스텀 키보드는 비용 측면에서는 자비가 없다.


이런 부분을 잘 따져봐서 도전 가능한 부분이면 가고, 아니라면 불편하더라도 그냥 시중에 판매하는 가성비 좋은 키보드를 구매하면 된다. 그리고 참고로 커스텀 키보드는 멤브레인이나 무접점 구조로는 만들 수 없다. 멤브레인이나 무접점은 커스텀을 위한 부품과 KIT이 거의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 커스텀 키보드는 대부분 기계식이라는 점 참고하시라.



커스텀 키보드를 손에 넣으려면 무엇이 필요하오?


흥미가 막 당기는가? 그럴 법도 할 것이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내가 쓰는 단 하나뿐인 키보드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하니 설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커스텀 키보드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간단히 알아보자.



돈 -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일 것이다. 키보드를 만들려면 부품을 준비해야 하는데 당연히 이들은 어디서 뚝딱 생기지 않는다. 떤 느낌으로 만들 것인지 대강의 콘셉트를 결정했다면 어떤 재질을 쓰는지, 어떤 부품을 쓰는지 확인하고 해당 부품과 제조 단가를 예상해야 된다. 대략적으로 얼마가 필요한지는 아래 각 부품별 설명을 참고하자.




▲ 외관 디자인을 결정하는 요소는 하우징이 담당한다.


하우징 - [|haʊzɪŋ] 그럴싸한 발음이지만 그냥 껍데기를 말한다. 키보드 겉면에서 키캡 이외의 요소들은 전부 하우징이라고 보면 된다. 재질은 아크릴/금속(주로 알루미늄)/나무/플라스틱 등을 쓴다.


그중에서도 커스텀 키보드 시장에서는 주로 아크릴과 알루미늄 하우징을 많이 사용한다. 아크릴은 하우징 구매 비용이 적게 들고 제품 제작이 쉽다는 이점이 있다. 캐드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설계하기도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 아크릴 하우징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아크릴 여러 장을 뽑아서 겹쳐 만든다. 이런 방식을 적층식이라고 한다


전문 업체에 아크릴 하우징 제작을 맡길 경우 대략 4~5만 원 정도가 소모된다. 도면은 직접 그려도 되고 커뮤니티에서 다른 사용자가 공개한 도면을 구해서 넘겨도 된다.


▲ 인기 있는 하우징인 라마(Rama) M60, 생긴 건 작아보여도 고가의 하우징이다


그에 비교해 알루미늄 하우징은 상당히 비싸다. 가장 저렴한 것은 아크릴과 비슷한 금액으로 구할 수 있지만 이런 제품은 묵직한 통 알루미늄이 아니고 얇은 알루미늄판이다. 얇고 가벼운 거라면 굳이 알루미늄을 쓰는 의미가 없다. 가성비 모델은 약 10만 원 전후이고, 희소성 높은 고급 알루미늄 하우징은 보통 30~60만 원 사이에 팔린다.


기판 - 키보드도 결국 전기 신호를 보내는 입력 장치다. 이런 것 없이 입력 가능하다면 당신은 외계인이거나 터치스크린을 사용하거나 둘 중 하나다. 아무튼 전기 신호를 보내려면 기판이 있어야 한다. 기판을 알아볼 때는 우선 내가 원하는 키보드 배열이 무엇인지 알아본 다음, 내가 원하는 배열에 맞는 형태의 기판을 골라야 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텐키리스(TKL) 기판이다.


기판은 작동을 위한 다이오드가 기판에 포함되어 있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하나는 편리하고 다른 하나는 다이오드를 납땜하는 노가다 작업을 거쳐야 된다. 고생한 만큼 뿌듯함은 쑤욱! 요즘은 납땜이 필요 없는 기판도 늘어나고 있다.


▲ 빨간 스위치 줄까~ 파란 스위치 줄까~ 기분 좋은 걸로 주세요~


스위치 - 이제 가장 중요한 스위치다. 하우징이 보고 만지는 역할이라면 스위치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누를 때의 감각과 소리에 의한 쾌감을 담당한다. 무엇을 쓰는가에 따라 감각이 달라지므로 이 단계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스위치는 기본적으로 ‘딸깍’ 소리가 나는 클릭형(청축/녹축)과 상대적으로 소리를 억제한 넌클릭형(갈축/백축), 걸리는 느낌 없이 부드럽게 입력할 수 있는 리니어(적축/흑축)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여럿 존재하지만, 설명이 난해하므로 가급적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 여기까지 왔다면 대부분은 스위치에 대해 정통해 있을 테니 취향에 맞는 스위치 정도는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입력 방식을 선택했다면 다음은 브랜드(제조사)다. 이 역시도 중요하다. 같은 청축이라도 제조사에 따라 타건감이 다르고 가격도 다르기 때문. 시장에는 체리, 카일, 오테뮤, 게이트론이 대표적인 스위치 브랜드이며, 다소 독특한 브랜드로는 구형 체리(지금은 생산하지 않는 단종된 체리 구형 스위치가 일종의 브랜드가 되어 있다), Jeal PC 등이 있다. 


저렴한 스위치는 텐키리스 기준 2만 원가량이면 구할 수 있으나, 구하기 힘든 구형 스위치나 고급 스위치는 1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기도 한다.


▲ 키캡은 육안으로 보여주기 좋은 요소 중 하나다.


키캡 - 이제 거의 마지막 단계인 키캡을 선택할 차례다. 색상이나 형태가 다양해서 시각적으로 꾸며주기에 가장 좋은 부품이다. 


사람에 따라서 재질에 따른 만족도도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재질은 다양하다. 가장 많이 쓰이는 ABS를 시작으로 내구성이 높은 PBT, 부드러운 감각을 주는 POM, 촉감과 내구성을 크게 높인 PPS 등이 있으며 이 외에 목재, 금속, 고무, 실리콘, 레진 등 취향에 따라 선택 가능하다.  


보통은 PBT를 더 고급으로 치는데, 의외로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키캡들은 ABS 재질이 많다. ABS는 내구성은 약하지만 이색사출로 만든 키캡의 색감이 화려하고, 기술력이 뛰어난 제조사가 만들면 촉감이 아주 부드러워서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사용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키캡 제조 브랜드는 미국의 SP, 독일의 GMK, 중화권의 MAXKEY, EnjoyPBT, 타이하오 등이 있다. 



기타 - 이들 부품 외에도 취향이나 필요도에 따른 부품이나 재료들도 있다. 빛을 내는 LED나 납땜에 필요한 도구도 필요하다. 스위치의 잡소리를 억제하기 위한 윤활유도 필요에 따라 선택 가능한 재료다.



예쁜 커스텀 키보드 구경하고 가실게요~!


어려울 것 같다고? 쉽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기성품 키보드들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내 마음에 쏙 드는 키보드를 손에 넣어 보는 것은 어떠한가.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그래, 기왕 썰을 풀었는데 뽐뿌 한 번 받으라는 의미에서 멋진 커스텀 키보드 몇 가지를 소개하고 마치겠다. 아디오스!


▲ 반으로 쪼개지는 것이 특징인 어고노믹 하우징 Vergo VE:A 

<이미지 출처: geekhack.org /닉네임 zefyr>


Vergo VE:A – 버고라는 애칭의 커스텀 키보드. 반으로 쪼개지는 것이 일품이다. 필요에 따라 붙여 쓸 수도 있고 반으로 나눠진 상태로 쓸 수도 있다. 메인 키보드 배열은 75% 배열이라고 부르는 변형된 텐키리스 배열(텐키리스의 중간 공백을 없애고 압축한듯한 배열)이다. 대신 키보드 왼쪽에 숫자패드를 대신하거나 별도의 매크로 키로 이용할 수 있는 10개의 키를 추가했다.


▲ 전원을 연결하면 이렇게 영롱한 RGB 라이팅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massdrop 제품 판매 페이지>


워낙 예쁘고 독특해서 이 하우징을 '인생 키보드 하우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모조품도 등장할 정도다. 기성품처럼 계속 만드는 하우징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주문을 받아서 공동제작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구하려면 중고로 구해야 한다. 이 제품을 구하기 위해 전 세계 웹을 뒤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VE:A는 한국인(KBDLAB 사이트 닉네임 버밀리온 회원)이 만든 하우징이라는 것도 기억해두자. Vergo 라는 제품명은 버밀리온 + 어고노믹에서 따온 것이라고. 이 제품은 지금 당장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만약 다시 제작 신청을 받는다고 해도 가격이 만만치않으니 만약 구할 생각이 있다면 미리미리 구매비용을 모아둬야 한다. 참고로 MASSDROP 사이트에서 진행했던 공동제작 당시 초기 가격은 $449 였다.


▲ 알루미늄 스멜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커스텀 키보드, KBD75


KBD75 – 중국의 유명 커스텀키보드 관련물품 판매 채널인 KBDFANS 채널에서 제작한 풀 알루미늄 커스텀 키보드 제작 키트다. 무난한 가성비의 키보드 DIY 킷이다. 중국이라고 무시하지 말자. 비교적 마감이 깔끔하며 위에서 소개한 VE:A 처럼 측면 RGB 라이팅 효과도 있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알루미늄 커스텀 키보드에 입문하려면 이쪽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 대략적인 구매 가격은 구성에 따라 10~15만 원 정도다.



TX84 – 한국산 하우징의 또 다른 자존심(?)이다. 자매품으로 TX87이 있다. 심플하고 고급스러운 텐키리스 배열 하우징이다. 예전부터 국내외 사용자들에게 수수하고 단단한 금속 하우징의 매력을 뽐내왔다. '튜닝의 끝은 순정' 이라는 말에 동의한다면 이 하우징이 당신에게 어울릴 것이다. 제작자의 닉네임은 KIN25, 보통 KIN25 보다는 즐이오 또는 줄이오로 불린다. 엔틱 버전과 화이트 버전이 곧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이 하우징도 가격대가 만만한 제품은 아니다. 



기획, 편집 / 송기윤 iamsong@danawa.com
글, 사진 / 강형석 news@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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