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하류에 있는 덕양산은 해발 125미터로 높이는 낮지만,
한강과 맞닿은 남쪽과 서쪽 사면은 가파른 절벽과
급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1593년 초봄, 이곳은 나라의 숨통을 지켜낸
가장 치열한 전장이었습니다.
밀려드는 3만의 왜군 정예병을 마주한 건
정예 관군과 의병, 그리고 승병을 합쳐 수천 명 남짓의
조선군이었습니다.
숫자로만 보면 이미 끝난 싸움이었지만,
권율 장군은 이 작은 언덕의 지세를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뒤편으로는 한강을 등져 배수진이자 보급선으로 삼고,
토성 위에 이중 목책을 둘렀습니다.
여기에 변이중의 화차와 승자총통, 비격진천뢰 같은
조선의 화약 무기를 치밀하게 배치했습니다.
음력 2월 12일 새벽,
왜군의 맹렬한 파상공세가 이어졌습니다.
조선군과 처영 대사가 이끈 승병들은
불 뿜는 화포를 쏘고 돌과 끓는 물을 퍼부으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 외책이 뚫리고
화살마저 거의 바닥나 최후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한강 물길을 가르고 도착한 배에서
수만 발의 화살이 전해졌습니다.
행주대첩은 기적이 만들어 낸 승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준비된 방어 전략과 화기 운용,
그리고 결사 항전한 이들의 결의가 만들어 낸
역사적인 승리였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벅찬 순간에도
끝까지 제자리를 지키며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묵묵히 힘든 삶의 무게를 견디며
꾸준히 자신을 성장시켜 온 사람만이
성공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월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