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는 피하고, 함박눈이 내릴 땐 납작 엎드려 있으라고 했던가. 2004년 9월23일 새벽, 서울 강남의 유흥가와 용산, 청량리, 미아리 등 서울의 3대 집창촌은 사상 초유의 적막 속에 휩싸였다. 이유는 이날부터 시행되는 성매매 처벌법의 위력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창녀란 직업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생사의 위기에 놓인 것이다. 강남 유흥가의 대다수 업소는 이례적으로 이날 영업을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모두 종료했다. 아예 홍등이 꺼진 사창가에는 경찰과 구경꾼만 간혹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그렇다면 윤락녀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성매매처벌법 첫날 집창촌, 강남유흥가 르포
새벽 2시30분 용산. 22일 밤 10시부터 경찰의 집중단속이 예고됐던 탓일까. 용산 사창가는 가로등 불빛 몇 개만 겨우 살아있을 뿐, 어둠에 빠져있었다. 주인을 잃은 채 불꺼진 유리창 속에 줄지어 있는 빈 의자들만이 붉은 조명의 화려함을 추억하고 있었다.
할 일은 잃은 듯 모여있던 인근 경찰의 말에 따르면 초저녁부터 영업은 완전 중단됐다고 한다. 이미 신문, 방송 등에서 한차례 난리법석을 떨고 간 탓인지 경찰들 역시 지친 표정이었다. "이제 여긴 어떻게 될까요? 완전히 없어질까요? 솔직히 남자로서 대답해 주세요?"
난감한 표정을 짓던 경찰 한 명이 "예전 같지는 않겠죠. 하지만 이런 곳 없애기가 그렇게 쉽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차를 타고 윤락녀를 구경하는 이른바 '사파리' 차량으로 붐볐던 사창가 한 복판 도로. 빈 택시와 보기 드문 진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들른 승용차들이 간혹 지나다녔다.
불꺼진 홍등가 경찰, 구경꾼만 왔다갔다
미아리 텍사스와 청량리 588 등을 이미 한바퀴 돌고 왔다는 30대 중반의 한 택시운전사. 그는 "오늘 다 문닫았어요. 이런데 없어지면 우리도 타격이 커요. 안 그래도 힘든데 죽어라 죽어라 하네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새벽 용산을 지킨 유일한 인적은 대리운전기사들.
4-5명쯤 모여있던 그들의 신경은 아주 날카로웠고 적대적이었다. 누구보다 직접적인 생계의 위협을 받은 그들은 필요악으로서 매매춘에 대한 당위론을 속사포처럼 쏘아댔다. "막말로 돈 있으면 왜 몸을 팔고, 이런데 섹스를 하러 오냐고요. 남자나 여자나 다 없는 사람끼리 부벼대며 사는 건데, 이거 정말 너무하네요."
새벽 3시를 훌쩍 넘긴 시각 미아리로 향했다. 그곳의 상황 역시 용산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항상 택시와 승용차로 분주했던 미아리 텍사스의 도로변은 마치 빗자루로 쓸어낸 듯 깨끗했다. 비상등을 켜고 잠시 정차한 뒤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 사이, 앞에 선 경찰 순찰차 한 대가 마이크를 통해 계속 뭔가 메시지를 던졌다.
택시, 대리운전 등 유관업종까지 된서리
가까이 다가가 물어보니 불법주차 단속이란다. 취재든 뭐든 계속 그렇게 서있으면 딱지를 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미아리 역시 살아있는 업소의 불빛을 발견하기란 어려웠다. 다만, 몇몇 업소의 굳게 닫혀진 유리문 밖으로는 아가씨들의 이야기소리와 웃음이 간간이 흘러나왔다.
청량리에 도착했을 땐 새벽 4시를 훨씬 넘겨 있었다. 다른 집창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간혹 업소의 조명이 켜져 있는 곳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인적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간혹 호기롭게 찾아와 유리문을 두들기는 취객이 발견되긴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동안 서성인 끝에 가게의 문에 자물쇠를 채우는 젊은 여성 한 명을 발견했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그에게 '도대체 아가씨들은 다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자신의 승용차에 올라타며 그는 "휴가 갔다고 생각하세요. 어차피 곧 모두 돌아올 거예요."라고 말했다.
업주들 "곧 정상화" 기대 반, 우려 반
집창촌에 비해 초저녁부터 지켜본 강남 유흥가의 표정은 의외로 차분했다. 서초동 B업소의 경우 이날 손님이 크게 줄지도 않았을 정도. 하지만 논현동 C업소의 경우 새벽 2시까지 방이 안차 고생을 했고 매출은 3분의 1수준으로 급감했다고 한다.
성매매 처벌법의 영향으로 강남 유흥가에서 깜짝 특수를 노린 곳은 나이트 클럽. 강남 물나이트클럽 웨이터 '제임스 딘'은 "섹시댄스 경연대회까지 겹쳐서인지 하여튼 손님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편이었다"며 "2차도 안 되는 룸살롱에 왜 가느냐. 이제 놀 곳은 나이트밖에 없다"고 말하는 손님이 많다고 밝혔다.
장안동 이발소, 휴게텔 등과 안마시술소, 대딸방(여대생 딸딸이방), 심지어 회현동 여관바리 등도 이날만큼은 대부분 영업을 접었다. 성매매 혹은 유사 성매매를 알선했던 유흥가가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간 것. 간혹 간판 불이 켜진 곳도 있었는데 손님이 들어가면 모두 되돌려 보냈다. 이유는 보일러 수리 때문이라고 한다. 사창가든 유흥가든 업주와 관계자들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그것은 곧 정상화될 것이란 기대감과 경험론이었다. 문제는 당장 불어닥친 불황의 파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