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의 꿈처럼 나도 단풍이 들어간다

가을날
단풍이 들어가는 건
단풍나무만이 아니다
봄의 다리를 건너오느라
여름의 산을 넘어오느라
한편으론 지치고
한편으론 무성해진
나도 단풍이 들어간다
내가 지나온 숲에서
누군가 붙여 둔 표지만을 보기도 하고,
누군가 놓아 둔 의자에서 쉬기도 하고
누군가 걸어 놓은 컵으로 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단풍나무처럼 나도 단풍이 들었다
그러나 겨울이 오기 전에
무거운 삶의 이파리들을 정리해야 한다
몇 가지에 골몰하기 위해
몇 가지만 남기고 털어 내야 한다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봄꽃을 피우고
건강한 여름 그늘을 엮으려면
이제 나는 낙엽 지는 단풍나무처럼
거추장스러운 이파리들을 버려야 한다
겨울나무처럼
모든 빛깔을 삼킨 채
단순해져야 한다
-최명숙 시, <단풍나무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