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노래의 탄생비화"
빛나는 졸업장을.... 어제 산책을 하던중 우연히 초등학교 졸업식 이야기로 한담 하시는 동네분들 틈에 끼이다보니 갑자기 제가 어릴때 만난 당시에는 "국민학교"라 불렀던 시골 국민학교 졸업식에서 불렀던 졸업식 노래가 생각나고 우연히 알게된 그 노래의 탄생배경이 생각나서 차제에 이곳에 옮겨 나누기로 작심 하였습니다. 중앙청에 성조기가 나부끼고 미군 육군 중장이 38선 이하의 조선 땅을 통치하던 무렵, 군정청 편수국장 직함을 가지고 있던 외솔 최현배가 한 아동문학가를 찾았습니다. 춘원 이광수가 “석동이라는 아호가 좋네. 누가 지어 준 거요?” 라고 칭찬하면서 그대로 아호가 돼 버렸다고 합니다.
“졸업식 때 쓸 노래가 마땅하지 않소. 그래서 외국 곡을 이것저것 가져다 쓰는 형편이니 석동이 하나 지어 줘야겠소.” 해방된 조선의 어린이들이 목청껏 ‘'새나라 우리나라'’를 부르게 해 주었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배차 시간 쫓기는 기사가 모는 버스 같아서 제때 손 들지 않으면 휙 지나가 버리는 법.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정순철 또한 가사를 받고 악상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간 것 같습니다. 설렁탕 집에서 때아닌 고성방가는 하지만 그 가사와 가락은 결코 엉성하지 않았습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사실 2절을 부를 때 졸업식은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강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열화와 같은 호응을 거쳐 졸업식 노래로 공표된 것이 1946년 6월 6일이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크나큰 상처를 입거나 아예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복동생은 충남 서산에 살고 있었는데 새어머니 쪽이 좌익과 관련되었다고 합니다. 거의 서울이 수복되던 9월 28일경 인민군에게 납북되고 만 것입니다. 그의 제삿날은 그래서 수복 다음날인 9월 29일이 됐답니다.
동심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의 본심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동물이나 목성하고도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이 곧 동심입니다.” 해방의 혼란과 설렘 와중에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