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 의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는 주로 SF 를 배경으로 하던 90년대 말 FPS 장르에서 밀리터리를 주제로 새로운 FPS 장르의 유행을 불러일으킨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시리즈의 시작은 99년 PS1 의 셀프 타이틀 게임으로 괜찮은 성적을 거뒀고, 본격적 대성공은 PC 로 발매된 <메달 오브 아너 : 얼라이드 어설트> 부터였습니다. 얼라이드 어설트는 스필버그의 전쟁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를 모티브로 한 상륙작전을 당시의 기술력으로 매우 잘 재현해내 유저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고, 미션의 구성이나 연출, 타격감 등 전반적인 면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게임이었습니다.얼라이드 어설트의 개발사였던 2015 가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히트시킨 인피니티 워드의 전신인 것은 게임팬들에겐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2015 는 제각기 EA 와의 불화가 원인이 되어 잔여팀과 인피니티 워드로 찢겨지고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는 EA LA 가 쭉 개발을 해왔습니다.
EA 가 자사의 스튜디오를 통해 개발해온 메달 오브 아너는 <메달 오브 아너 : 퍼시픽 어설트> 까진 그나마 준수했지만, 2007년 <메달 오브 아너 : 에어본> 이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 와의 진검 승부에서 흥행과 평가 모든 면으로 참패를 당함으로써 동면기를 거치게 되고, EA 가 완전한 대세로 굳혀진 현대전이란 소재로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를 재붓시킬 것을 결정하며 3년만에 발매된 시리즈 신작이 바로 메달 오브 아너 셀프 타이틀, 통칭 티어 1 에디션 입니다.
신작 <메달 오브 아너> 가 티어 1 에디션이라 불리는 이유는 게임의 싱글 플레이가 묘사하고 있는 미션들이 실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어 있는 미 특수 부대원들의 경험담과 개발에 대한 조언을 참조해 만들어졌다는 것 때문인데요. 티어 1 이란 미 대통령의 직속 명령을 하달받는 델타 포스나 실팀 6 와 같은 다수의 특수 부대들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대게 겉으로 내놓을 수 없는 흑막의 비밀 임무들을 수행합니다. 아프간이 무대인지라 게임의 시간적 배경은 아프간 전쟁이 진행중이던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유저는 아프간 전쟁의 특수 작전에 투입되는 특수 요원 중 3명의 임무를 번갈아가며 경험하게 됩니다. 각 요원의 임무 성격은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게릴라 침투 임무와 잠입 임무, 전면전으로 그 성격을 구분할 수 있으며, 이들의 임무는 동일한 시간적 흐름 속에 중반이후부터 유저가 참여했던 부대원들과의 교차 및 합류, 공동 작전이 빈번히 이뤄지곤 합니다. 이들은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중이던 탈레반 세력은 물론 이들이 비호하던 테러 집단 알카에다를 주 적으로 만나게되지만, 체첸 반군과도 자주 교전을 합니다. 미군이 점령한 지역이 체첸군의 공격을 당하며 시작되는 게임은 아랍계 정보원에 의해 알려진 대규모 탈레반 부대와의 전투로 번지게 되고, 유저가 속한 특수부대를 필두로 이들을 제압하는 과정 속에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실존 모델이 알려저 화제가 됐었던 표지를 멋지게 장식한 턱수염 아저씨도 물론 게임에 등장합니다.
티어 1 에디션의 가장 큰 특징은 현장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사운드입니다. 언리얼 3 개조 엔진을 사용한 그래픽은 여타의 게임들에 비해 뚜렷히 우월하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무난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방을 울려퍼지는 총성의 강렬함을 필두로한 각종 효과음은 타 게임에 비해 분명 우월한 퀄리티로 현장감을 높여주고 있으며 장면에 따라 긴박감있게 깔리는 배경음악의 조화도 매우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게 FPS 게임은 총질에 몰두하다보면 배경 음악의 존재감이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티어 1 에디션은 치고 빠지는 배경음악의 타이밍이 기가 막히면서도 음악이 전달하는 느낌이 강렬해서 게임의 분위기를 매우 잘 띄워주는 역할을 해줍니다. 발매전 트레일러에 삽입된 곡들로 화제가 되었던 린킨 파크의 곡은 게임 대미의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메달 오브 아너> 가 제공하는 특수 부대원의 경험은 총기를 다루며 펼쳐지는 기본적인 것 외에도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유저는 공중 폭격 지원이나 산악 지형에 특화된 탈 것, 원거리 스나이핑 등을 경험할 수 있으며 가장 특별한 경험은 건쉽 헬리콥터 조종입니다. 유저는 게임 중 부대원들이 몰살되기 직전 공중 지원으로 자신들을 구해준 건쉽을 조종하는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데, <헤일로 : 리치> 에서 선보였던 슈팅 모드와 유사한 성격으로 꽤 오랫동안 건쉽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헌데 문제는.. 건쉽의 조종이 기대만큼 재미있진 않다는 겁니다. 건쉽의 조종은 100% 유저의 의도대로 이동이 결정되는 것이 아닌 반자동 형식으로 유저가 이동을 하기도 하고 자동으로 건쉽이 이동되기도 하는데, 사실상 건쉽 조종에서 유저가 담당하는 것은 적절한 타이밍에 타겟을 맞춰 무기를 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타겟을 잡기 위한 시점이 불편하기도 하고 건쉽 미션 자체가 좀 지루한 감이 있습니다. 과거 퍼시픽 어설트 전투기 모드와 같은 최악의 요소는 아니지만, 건쉽 미션을 플레이하며 '대체 언제 끝나나' 싶은 느낌이 들었던 건 사실입니다.
<메달 오브 아너> 는 티어 1 에디션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게임을 위해 EA 가 아프간 현지 특수 부대의 협조를 받았으며, 이는 발매전 마케팅에서 적극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조국을 위해 애쓰는 현지 특수 부대원들의 미션을 경험한다!' 뭐 이런 느낌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말이죠. 특수 부대가 실제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미션을 재구성해서인지, 티어 1 에디션의 미션들은 좀 심심한 면이 있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랄까요. 현지 특수 부대원들의 무용담이지만 그것이 이제까지 여타 게임들을 통해 즐겼던 게임속 영웅들의 무용담에 비해선 화려한면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조금만 가다보면 공중 지원 요청하고, 다시 진행하다 공중 지원 요청하고.. 뭐 이런식으로 교전의 흐름이 스팩타클하기보단 절제되어 있고 조심스럽습니다. 그것이 티어 1 에디션의 참맛이라 느낄 유저들도 있겠지만 '나는 람보, 무적의 영웅!' 을 제대로 느끼고 싶은 유저들에겐 지루하게 다가갈 수도 있습니다. 이는 특히 초반의 게릴라 침투 미션이나 잠입 미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또한 <메달 오브 아너> 의 연출은 그럴듯하지만 '그럴듯해 보이려는 의도가 너무 뻔히 보이는' 연출들이 대부분이고 연출을 부각시키기 위한 후속 연출도 좀 부족해보입니다.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 의 성공에 자극받아 시작된 게임이고,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 2> 의 연이은 성공을 바라보며 개발된 <메달 오브 아너> 는 분명 그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히 느껴지긴 하지만 확실히 그것들보다 못합니다. 멋있게 상황을 이끌어 놓구선 '뭐야 그게 다야?' 라는 허무한 느낌이드는 불현듯 튀어나오는 적 병사와의 조우라던가 너무 심플한 폭격 지원 요청 , 섬세하지 못한 인물들의 표정등은 전개 자체가 절제되어 있는 미션 구성의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이나 아군의 AI 는 대체적으로 짱박혀서 총쏘기를 좋아합니다. 솔직히 멍청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녀석들이 사격 솜씨하나는 또 기가막히게 좋고 체감 데미지가 상당히 쎈 편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동 루트를 교묘하게 잘 이동하게 되면 미션이 쉽게 풀리는 편이지만, 사격 솜씨들이 워낙 좋아 이동 루트를 무난히 이동하는게 힘듭니다. 한가지 웃긴점은 적 출현 스크립트가 유저가 조종하는 캐릭터의 위치에 맞춰져있지 않고 동료 유닛에게 맞춰져있는지라 유저가 최전방에서 적 진형을 파고드는 와중에 갑자기 유저의 근처를 뒤덮는 적 병사들이 출현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아군 AI 는 뒤에서 짱박히는걸 좋아하는데, 유저는 앞장서서 적군을 처리하는 입장이다보니 발생하는 일종의 혼선이죠. 뭐 그 외에도 잠입 미션 중 동료의 OK 사인이 나면 바로 뒤를 뛰어서 지나가도 눈치를 못채는 적 병사들의 모습등을 보다보면 AI 의 답답함이 느껴지는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메달 오브 아너> 의 플레이 무대는 매우 단조롭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선 비개발지라는 말이 적당할 것으로 보이는 황토색 빛깔을 위주로 한 무대와 설원의 흰색 빛깔을 위주로 한 두가지 무대가 싱글 플레이 무대의 전부이며, 무대를 이루고 있는 오브젝트들도 비슷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네. 한마디로 좀 지겹습니다. 절제된 미션의 성격, 무대의 단조로움, 너무 짧게만 멋있는 연출 세가지가 어우러져 조성하는 전반적인 게임의 지루한 분위기는 어떻게보면 괜찮은 게임 <메달 오브 아너> 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리뷰 도입부에서 이야기한 개발사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콜 오브 듀티 신화를 이룬 인피니티 워드의 핵심 개발진들은 액티비젼과의 불화로 인해 모두 회사를 빠져나와 리스폰 엔터테인먼트라는 개발사를 차렸고, 얄궂게도 과거 자신들과 갈등을 빚었던 EA 와 손을 잡았습니다. 이들은 현재 완전 새로운 프렌차이즈를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만, 언제 어떤 이유로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의 개발을 맡게될지는 알 수가 없죠. 유통사와의 마찰에 와해되는 개발진들은 한번 크게 데이면 대게 그 다음은 어떻게든 정착을 하던가 아니면 소리소문없이 긴 잠수를 타는데, 이들은 참 특별한 행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