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개봉전인 1997년, 불법복제 비디오테이프로 처음 봤던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Love Letter, 1995년)는 사실 플롯이 정교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기본 골격은 산에서 조난당해 사망한 남자친구와 이름이 똑같은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남자친구가 과거 짝사랑했던 사연을 알게 되는 여인의 이야기다.
죽은 남자친구는 짝사랑했던 여인을 못잊어 똑같이 생긴 지금의 여자친구를 좋아한 것.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토록 좋아한 여인이라면 왜 한 번도 찾아가 고백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오히려 똑같이 생긴 여자를 만나는 것 보다 서로 잘아는 사이인 여인을 찾아가 사랑을 얻는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판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중학교 졸업앨범을 뒤져 찾아낸 주소로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을 보면 여인은 그동안 한 번도 이사를 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니 죽은 남자가 그토록 사랑한 여인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설정이다.
그런 점에서 플롯이 엉성하지만 이 영화에 빠지려면 그런 헛점에 대해 질끈 눈을 감아야 한다.
어차피 영화가 노린 것은 누구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첫사랑의 아련한 그리움이기 때문.
그것은 오래된 앨범에서 찾아낸 빛바랜 사진처럼 이야기보다 한 조각의 영상으로 의미가 있다.
슌지도 그 점에 주목해 이 영화를 예쁜 사진집처럼 꾸몄다.
특히 죽은 남자의 추억을 되짚는 과정은 누구나 간직하는 첫사랑의 설레임과 그리움을 자극하는 판타지다.
이를 슌지 감독은 쌍둥이처럼 똑닮은 두 명의 여인이라는 기발한 설정으로 풀어냈다.
그런 점에서 나카야마 미호가 1인2역한 여인은 관객을 헷갈리게 하면서 이야기에 신비로움을 부여한다.
더불어 이 영화의 또다른 매력은 오타루의 신비한 설경.
'미스터 초밥왕'의 고향이기도 한 오타루를 2008년 2월(http://wolfpack.tistory.com/entry/오타루-러브레터의-고향)과 10월(http://wolfpack.tistory.com/entry/비-내리는-오타루)에 걸쳐 두 번 간 적이 있는데, 유럽풍의 메르헨 거리에 발목이 빠질 정도로 밀가루같은 흰 눈이 쌓이던 환상적인 풍경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때 찍은 사진 중 일부가 이번 블루레이 타이틀에 포함된 소책자에 실렸다.
꼭 '러브레터'에 대한 기억이 아니더라도, 오타루의 겨울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아름답다.
고인이 된 시노다 노보루 감독의 테크니컬한 카메라 움직임도 아름다운 영상에 한 몫 했다.
여기에 유려한 피아노 선율이 돋보이는 레미디오스의 서정적인 영상도 빼놓을 수 없다.
그만큼 로맨스 드라마로는 많은 사람을 설레게 한 수작이다.
그렇기에 여러 작품들이 이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욘사마 열풍을 일으킨 국내 TV드라마 '겨울연가'는 곳곳에 이 작품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보인다.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DVD 보다 월등 좋아졌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전체적으로 미세한 지글거림이 보이고 어두운 장면에서는 입자가 거칠다.
DTS-HD 2.0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하며 부드럽다.
부록으로 콘티영상, 예고편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by 블로그 '달콤한 인생' http://wolfpack.tistory.com/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 스크린 샷은 저작권 문제가 걸려 있으니 퍼가지 말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