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새로운 물건을 받고 사용한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3년간 함께했던 정든 오메가를 상자에 넣고 오로라를 그 자리에 설치한 지 21일이 지났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사용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AV기기의 사용기를 쓴다는 건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AV기기는 숫자로 나타난 데이터 해석보다는 감각의 영역으로서 받아들여 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성장 속의 경험은 다양한 감각을 품게 합니다. 저 역시 그들 중 하나이고 제 감각을 가다듬어 문장으로 나타내어도 다른 누군가의 경험과 감각 속에 닿는다는 건 역시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 사용기가 누군가에게 미약하나마 닿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보노보스 H1, 오메가 그리고 오로라까지 스피커에 10만원 이상의 돈을 쓰기 시작한 제품들입니다. 저는 기기에 큰돈이 들어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얇은 제 지갑 사정도 한몫하지만, 액수에 정비례하여 기기가 스스로의 기대를 반드시 충족해준다고 생각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오로라 역시 저에겐 큰 모험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액수 그 이상의 큰 만족감을 주는 제품입니다.
1. 외관 및 구성품
상자 디자인은 정갈하며 속 박스는 매끄러운 재질입니다. 디자인은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내부는 상하좌우 적당한 두께의 스티로폼으로 보호했고, 다시 스피커의 모서리 8부분을 스티로폼으로 감싸서 포장되어 있습니다. 안전하게 운반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부에 들어있는 설명서 겸 품질보증서입니다.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설명서에 따르면 케이블은 세 가지가 들어있습니다. RCA 케이블을 제외하고는 기존 사용하던 케이블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단하고 좋아 보입니다. 오디오에서 선재의 중요성에 대한 글을 꽤 읽었지만 오로라 가격 혹은 그 이상인 케이블도 있다고 하니 별로 손대고 싶지 않은 영역입니다. 번들 케이블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합니다. 케이블이 불투명한 비닐에 포장되어 있습니다. 포슬포슬한 비닐인데 느낌이 좋습니다. 본체 이외의 구성품도 대충 포장하지 않아 좋았습니다.
최종 설치 사진입니다. PC - 오디오트랙 프로디지 큐브(usb) - 에이원오디오 VTA-2 진공관 프리앰프 - 오로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래에 고무발이 달려있어 미끄럼 및 음퍼짐을 방지해줍니다. 앞쪽이 높고 뒤쪽이 낮은 구조인데 음이 맺히고 스테이지 형성을 위함인 것 같습니다. 외관은 대나무 원목입니다. 실물은 더 진하고 따뜻한 느낌입니다. 제작자님의 설명으로는 원목의 특성상 좌우의 나뭇결이나 색상 등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하셔서 만약 좌우가 다르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좌우가 다른 것이 좀 더 독특한 느낌을 전해주어 좋았습니다. 저는 공간 안에 놓이는 모든 물건이 공간 디자인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무의 따뜻한 느낌이 좋아 오로라의 재료가 원목이라길래 망설이지 않고 구매를 하였습니다. 음향기기를 넘어 가구로서 디자인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쑥스러워하지도 않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기존에 쓰던 스피커는 보노보스 오메가 화이트였는데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피아노 도장이 들어간 빛나는 백색의 오메가는 제 책상에는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았나 합니다. 지금의 책상이 더 따뜻하고 안정된 느낌이라 좋습니다.
2. 소리
2-1. 들어가며
소리를 녹음해서 첨부하고 싶지만 녹음해서 들어봤더니 오히려 글로서 전달하려는 느낌을 방해할 것 같아 그냥 글로만 씁니다.
제가 H1에서 오메가를 거쳐 오로라를 오기까지 단계마다 10만원씩 금액이 추가되었습니다. 3년간 오메가를 잘 썼지만 2년 정도가 지났을 때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다음 단계에서 마음에 들 법한 기기는 세 자릿수의 금액으로 넘어갔습니다. 저에게 그 정도는 큰 사치라고 생각했고, 타협점으로 VTA-2를 구매했습니다. 어느 정도 변화를 주었지만 그래도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도중에 오로라를 접했고 금액적으로 크게 부담되지 않았고 충분히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었기에 구매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구매가 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위에 언급한 대로 제 시스템은
PC - 오디오트랙 프로디지 큐브(usb) - 에이원오디오 VTA-2 진공관 프리앰프 - 오로라입니다. 구매하여 설치한 지 21일 일평균 2~3시간 사용했으며, 음악과 드라마 감상 용도로 사용하였습니다. 순정 오로라를 테스트해볼까 하다가 프리앰프 연결 후가 포근하게 안아주는 느낌을 받는다는 제 파트너의 감상을 통해 그 정도가
(혹은 그 이상)
더해지겠구나 감안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전 시스템의 경우 볼륨 노브 12~1시, 트레블 및 베이스 노브 2시, VTA-2 볼륨 노브 12시, 프로디지 큐브 노브 1시였습니다. 애플뮤직으로 노래를 듣고 영상은 팟플레이어로 감상하는데 애플뮤직 볼륨은 90%~100% 팟플레이어는 70% 정도였습니다. 현재는 오로라 10시~11시 트레블 및 베이스 노브 12시, VTA-2와 프로디지는 같고 애플뮤직 70% 팟플레이어 70%입니다. 출력은 오메가에 비해 높습니다. 초기에는 좀 약하다 싶어 볼륨 노브를 12시~1시로 두었는데 10일차 쯤에는 많이 커져 줄였습니다.
2-2 오로라
제가 느낀 오로라 소리의 한 줄 평은 '명확한 스테이지, 풍부하지만 단단한 저음 그리고 청명한 고음 그러나 양날의 검'입니다.
스피커는 중앙에 앉아 있는 저를 향하도록 설치했습니다. 의도적으로 한쪽에서 소리가 나오는 음악을 제외하고는 보컬은 대부분 모니터 정중앙 즉, 스피커 사이 중앙에 음상이 맺힙니다. 얼핏 들으면 이마와 콧대 중앙에서 보컬의 목소리가 들리는 느낌입니다. 마치
청중인 저를 위한 책상만한 스테이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상상이지만요. 예를 들면
'아 드럼은 이쯤 위치했겠고 보컬은 여기 있고..' 같은 생각이 듭니다.
상당히 독특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스테이지가 녹음실이라 생각하고 실제 악기를 배치하고 밴드 연주를 하며 보컬이 노래했다고 상상하면 좀 더 재밌습니다. '아 이렇게 서서 했겠구나' 하는.. 물론 제가 소리를 대하는 태도가 변한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저음의 경우 오메가에 비해 유닛이 커졌기 때문인지 태생이 달라서인지 단단하고 양감이 뛰어납니다. 특히 드럼과 베이스가 인상 깊습니다. 일렉기타 역시 그에 못지않습니다. 락은 중학생 시절인 14년 전에나 들었었는데 14년만에 다시 락 노래를 찾아 듣고 있습니다. AC/DC, Nirvana, Van Helen, Blur, AeroSmith, Two Door Cinema Club, Fall Out Boy 등등.. 점점 더 많은 곡을 들을수록 신납니다. 특히 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에서 도입부를 지나 띠-딩-하는 부분(29~30초)에선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게 이런 곡이었나? 할 정도로요. 최근에 운전하며 기아 K5 순정 오디오로 같은 곡을 들었었는데 많이 뭉개져 들렸습니다. 덕분에 오로라의 구분감이 명확하게 보다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고음의 경우 해상력이 매우 뛰어나고 깨끗하며 선명한 데다 부드럽게 들려줍니다.
강아솔의 다 고마워지는 밤과 아름다웠지, 우리라는 노래를 들어보면 '우리집'이라는 스테이지에서 강아솔씨가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해상력이 뛰어난 덕분입니다.
드라마를 볼 경우에 현장감이 상당히 잘 느껴집니다. 스테이지도 스테이지지만 배우의 발성이나 목소리를 상당히 사실적으로 들려줍니다. 덕분에 최근 라이프라는 드라마를 보는 데 아주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양날의 검이라고 표현한 것은
부드럽게 들린다는 것과 모순되게도
쨍한 고음이 포함된 음원의 경우 상당히 듣기 거북할 정도로 쨍하게 들립니다. 리뷰를 쓰기 위해 기존에 듣던 노래말고 다양한 노래를 들어봤습니다. 예를 들면 이달의 소녀라는 그룹의 Hi High라는 노래는 저음은 거의 없고 대부분 고음으로 이루어진 노랜데 귀가 먹먹할 정도로 쨍-하게 들립니다. 청력 테스트랍시고 고주파음이 나오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귀가 먹먹해집니다. 저음이 함께 나오는 부분은 괜찮길래 혹시나 싶어 여러 번 들어봐도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두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제작자가 이렇게 녹음했고, 대중에게 이렇게 들리게 하고 싶었나?'라는 기존에 생각지 않았던 음원 제작자의 제작 의도와 역량을 고민하고, 두 번째는 '명확하고 괜찮은 소리를 접해 감각의 지평이 새로이 열리니 취향의 호불호(好不好)가 확실해진 건가'하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달의 소녀의 Hi High라는 노래는 제 취향이 아닌 노래가 되겠지요. 긍정적으로 보면 그걸 결정하는데 오로라가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쩌다 제작자인 다피님과 통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본인을 오로라에 많이 녹여내셨구나! 생각했습니다. 통화 내내 아 이 분은 부드럽고 참 섬세하시구나는 걸 느꼈기 때문입니다. 위에는 쓰지 않았지만 오로라의 전체를 관통하는 소리 이미지는 섬세함입니다. 그것이 쿵쿵대는 음악이건 잔잔한 음악이건 섬세한 디테일을 잘 캐치해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은 거의 채워졌지만 초기에는 아래 유닛과 트위터 사이가 텅 빈 듯한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단순히 중간 음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 공간이 완전히 비어있다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채워지는데 이질감을 받으시는 분이 있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3. 마치며
PC스피커 시장의 가장 치명적인 점은 사용자의 수가 많지 않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픽카드와 모니터에는 수백만원씩 쓰지만 정작 소리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사용자가 대부분입니다. 만원짜리 사운드바나 모니터에 포함된 스피커로 소리를 듣곤 합니다. 이들이 괜찮은 소리를 낸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게이밍 헤드셋엔 수십만원을 쓰기도합니다. 예를 들면,
배틀그라운드를 위해 백만원씩 투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구매력은 생각보다 대단하고 즐거움을 위해서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피커나 오디오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진입 장벽이 아닐까 합니다.
'좋은' 그래픽카드나 모니터는 백만원 정도의 지출로 하이엔드 혹은 끝판왕을 구매할 수 있는 것에 비해
흔히 알려진 '좋은' 오디오나 스피커의 이미지는 수천씩 하는 기기와 비싼 공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벽을 느끼고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적당한 가격으로도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러한 시간들 역시 괜찮은 취미이며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임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액수에 정비례하여 반드시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함정이 있는 것도..
오로라를 접하고 또 다른 감각의 지평을 마주하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재즈피아노, 네오소울, 모던펑크, 보사노바, 락, 얼터너티브, 팝, 제이팝, 시티팝 등등.. 호불호는 확실해지겠지만 시야는 편협해지지 않는 세계로 한 걸음 내딛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눈에 보이는 숫자, 그래프와 같은 데이터 그리고 기기의 가격, 기기의 하드웨어 자체에 매달려 매몰되지 않고 소리를 즐기되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경험 역시 오로라를 제 책상에 올렸기에 할 수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이 오로라를 접하며 누군가는 실망하고 누군가는 기쁨을 느끼겠지만 보다 많은 이들이 용기내어 경험하고 이들이 쌓여 또 다른 세계가 열리길 바랍니다. 오로라의 어원이 새벽인 것처럼 이 새벽이 지나면 찬란한 햇빛이 에이원오디오를 비추길 바랍니다. 또 언젠가 다른 소리로 또 다른 세계를 접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의 제품일수도 길거리에 파는 싸구려 이어폰일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 이러한 경험을 저에게 선사한 에이원오디오의 다피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사용기를 넘어 일기장 수준의 글을 읽어주신 많은 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