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매니아에게 한성은 친숙한 브랜드다. 주로 속칭 '인민에어'나 '보스몬스터' 노트북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이며 여전히 한성컴퓨터 웹사이트의 첫 번째 탭은 '노트북'으로, 노트북이 주력 제품임을 과시하고 있지만, 잘 살펴보면 모니터나 의자, 키보드와 마우스 등의 주변기기도 다양하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필자 또한 현재 한성 울트라와이드 모니터와 르누아르 노트북을 사용하고 있으며 한성 태블릿이나 기계식 청축 키보드를 사용해본 경험도 있는 등 낯선 브랜드는 아니다.
한성 GK998B SKY 기계식키보드는 한성컴퓨터 키보드 중 아마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 제품이 아닐까 싶다. 라인업으로만 따지면 TFG 시리즈가 가장 높은 포지션이겠지만, 실용성과 활용도를 고려하면 GK998B SKY가 당분간 최고 권위를 자랑할 것 같다. 제품 옵션이 꽤나 독특한데, 키캡은 영문과 한글 각인이 모두 있는 버전과 영문 Only 버전으로 나뉘며 스위치는 체리 저소음적축/적축/갈축 3종류로 나뉜다.
구성품을 하나하나 꺼내보다가 감탄사가 나왔다. 키캡 리무버나 브러시까진 예상했지만 사용하지 않을 때 키보드에 먼지가 앉는 걸 방지하는 커버(정식 명칭은 '키보드 루프')가 제공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으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분 스페이스 바와 스테빌라이저까지 추가로 들어있다는 점도 추가점을 줄 법하다.
특히 키보드 루프는 키보드를 여러 대 구비해두고 플레이하는 게임이나 작업 용도에 따라 바꿔 끼우기도 하는 사람들이 보관 목적으로 별도 구매하거나 직접 만들기까지 하는 부속인 만큼 이게 기본으로 제공된다는 점은 분명한 플러스 요인이라 볼 수 있다.
색상은 블랙/화이트 2종이며, 각각 블랙 프레임 + 블랙/브라운그레이 민트각인 투톤 키캡과 화이트 프레임 + 그레이/라이트그레이 블루각인 투톤 키캡으로 구성돼있다. 블랙 모델의 경우 민트가 호불호를 가를만한 색이긴 하지만 완전히 무채색만으로 구성한 것보다 인상이 강렬해 쉽게 질리지는 않을 듯하며, 화이트 모델은 2000년대 학교 컴퓨터실 키보드를 연상시키는 레트로 감성 색 조합이라 잠시 추억을 즐길 수 있었다.
키 배열은 표준 104키에 미디어 제어 4개가 추가된 108키 버전으로, 취향에 따라 서드파티 체리스위치 키캡으로 교체할 수는 있으나 미디어 버튼에 할당할 추가 키캡을 구비할 필요가 있겠다. 키캡 소재로는 내구도가 높고 단가가 비싼 PBT를 사용했으며 한글이나 Fn 기능 부분을 제외하고는 이중사출로 각인돼 사용 중 각인이 지워질 염려를 덜었다. 전체 크기는 통상적인 풀배열 키보드와 비슷한 수준(442*133*36mm)이며, 무게는 980g으로 미동조차 없게 만들려고 일부러 무게추까지 넣은 키보드에 비하면 살짝 가볍지만 이만해도 흔들림이 발생하진 않으며 오히려 블루투스 키보드로 쓸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작정 무겁기만 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그 균형을 잘 찾았다는 느낌이다.
기능키는 통상적인 몇 가지 프로그램 바로가기나 미디어 재생 관련 기능, 윈도우 락과 윈도우/맥 전환, 매크로 등을 제공한다. 이 제품의 경우 블루투스 4.0 칩셋을 탑재해 무선 키보드로 활용할 수도 있는 모델이며, Fn 키 조합으로 최대 3개 기기를 기억해두고 멀티페어링을 할 수도 있다. 또한 ESC에는 키보드 잠금 기능까지 추가해 고양이가 방해할 때나 키보드를 청소할 때 의도치 않게 입력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다.
키캡은 스텝스컬쳐2가 적용돼 편하고 안정적인 타건이 가능하다. 언뜻 보면 별로 대단할 게 없을 것 같지만 레트로 타자기 키캡처럼 평평한 걸 써보면 오타가 심하게 나는 등 역체감이 꽤 되기도 하는 특징이다. 특별히 키캡에 독특한 디자인을 적용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게이밍 키보드 제조사가 기본으로 적용하는 스타일.
하판에는 미끄럼방지 패드가 모서리마다 위치하고 각도조절 접이식 발판도 마련돼있다. 개인적으로 키보드는 좀 앞으로 기울어있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발판은 꼭 펼쳐 쓰는 편. 특이사항으로, 유선 키보드로 쓸 때에는 USB Type C 케이블을 연결해야 하는데 컴퓨터 본체가 어느쪽에 있는지에 따라 케이블을 상단이나 좌우 측면으로 뺄 수 있도록 홈이 파여있어 선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다. 연결할 디바이스에 블루투스 모듈이 내장돼있거나 동글을 사용한다면 무선으로 블루투스 4.0 무선 기능을 활용하는 게 최고로 깔끔하겠지만, 한끗 차이의 인풋렉까지 신경 써야 해서 필히 유선으로 사용해야겠다면 선이라도 깔끔하게 정리해보자.
기계식키보드 스위치 종류는 청/적/갈/흑 4종류가 대표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체리 스위치 특허가 만료된 뒤 수많은 제조사들이 호환 스위치를 개발하고 있는 지금은 춘추전국시대가 따로 없다. 한성 GK998B SKY는 체리 정품 스위치를 사용하며 종류는 적축/저소음적축/갈축 3종류다. 짤깍거리는 클릭음으로 기계식키보드를 대표하다시피 했던 청축이나 특유의 묵직함이 매니아층을 만들었던 흑축보다, 기계식키보드 중 비교적 조용한 편이라는 적축과 그보다 더 조용하게 만든 버전인 저소음적축, 독특한 매력이 있는 갈축의 니즈도 충분하다고 판단한게 아닐까 싶다. 위 영상은 필자가 기존에 사용하던 체리 은축(스피드실버)과 갈축, 저소음적축을 비교 타건하는 모습을 담았는데, 키압이 낮고 깊이가 얕아 쉽게 눌려 구름타법에 유리하다는 은축보다 저소음적축의 키감이 좀더 묵직하지만 굳이 구름타법을 구사하지 않아도 소리가 훨씬 적게 나서 장시간 타이핑 또는 게임 플레이 시 손의 피로감은 덜한 편이었다.
한성 GK998B를 연결하고 자주 플레이하는 게임 '카트라이더'를 시연한 모습. 인게임에서 소위 '톡톡이'라는 드리프트 기술이나 부스터를 연달아 쓰는 부분에서 키압이 낮고 키를 살짝만 눌러도 인식되는 은축이 태생적으로 유리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좀 더 세밀한 키 스트로크 타이밍 조절이나 오동작 방지는 저소음적축이 더 수월하게 느껴졌다. 플레이 도중 무의식중에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도 소음이 과하게 나지 않으며 통울림 현상도 발생하지 않아 주변에 민폐를 끼칠 일이 없어 저소음적축의 적막한 매력을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주로 플레이하는 게임 특성상 은축 키보드를 선호하지만,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며 글을 투고할 때면 장시간 타이핑도 하기 때문에 기계식키보드 특유의 태생적인 타건음이 신경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다. 그런 면에서 게임과 상성이 괜찮은 편이고 소음은 압도적으로 조용한 저소음적축은 게임이나 글 작성 양면 모두 균형있게 잘 활용할 수 있어 매력적이었으며, 유무선 겸용이라는 특징 덕에 메인 데스크탑을 쓰다 서브/휴대용 PC인 한성 TFX4470H 노트북으로 전환해 다른 작업을 이어갈 때도 쓰던 키보드 그대로 계속 타이핑할 수 있어 굉장히 편리했다. 본 제품의 가격은 14만 원 내외로 한성컴퓨터 키보드 중에서는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블루투스나 다양한 미디어 기능, 체리 정품 스위치 사용을 생각하면 매우 합리적인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단, LED 라이팅 효과는 지원하지 않으니 화려한 불빛이 감싸는 키보드를 찾는다면 통한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