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독일 하노버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상용차 박람회 'IAA 트랜스포테이션 2026'에서 두 번째 전용 목적기반차량(PBV) '더 기아 PV7'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지난해 말 출시한 PV5로 유럽 C세그먼트 전기 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기아가, 한 체급 위인 미드사이즈 전기 밴 시장까지 정조준하고 나선 모습이다. 1531㎡ 규모의 전시 부스에는 PV7 라인업 3대와 PV5 라인업 7대가 함께 전시됐다. 2024년 브랜드 최초로 하노버 IAA에 참가한 이후 2회 연속 참가했다.
시장조사기관 데이터포스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유럽 경상용차(LCV) 시장은 120만6458대로 전년 동기 대비 8.7% 줄었다. 반면 전기 경상용차(eLCV) 시장은 같은 기간 12만5069대로 10.2% 늘며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전체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전동화 비중만 확대되는 구조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PV5가 속한 C세그먼트 전기 밴(eCVAN) 시장은 4만4810대로 26.6% 성장했고, C세그먼트 밴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7%에서 13.2%로 높아졌다. PV7이 새롭게 진입할 미드사이즈 전기 밴(eMVAN) 시장 역시 5만7804대로 9.2% 커지며, 전체 미드사이즈 밴 시장 성장률(2.3%)을 크게 앞질렀다. 기아가 PV7의 데뷔 무대로 하노버를 택한 배경에는 이러한 시장 흐름이 자리한다.
PV7은 PBV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S를 기반으로 개발된 대형 전동화 PBV다. 전장 5350mm, 전폭 1995mm(도어 핸들 포함 2030mm), 전고 1990mm, 축거 3500mm에 달하는 원박스 차체를 갖췄다. 기아는 전장 5.3m급의 'PV7 카고 롱'과 'PV7 패신저 롱'을 먼저 선보이고, 이후 '플렉시블 바디 시스템'을 활용해 축간거리와 실내 구성을 달리한 파생 모델 23종을 순차적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국내와 유럽 출시 시점은 2027년 하반기다.
전동화 성능도 눈에 띈다. 71.5kWh와 96.2kWh 용량의 배터리를 각각 탑재한 스탠다드·롱레인지 모델로 운영되며, 롱레인지 모델은 유럽 WLTP 기준 460km 이상 주행이 가능하다. 800V 충전 시스템과 최대 350kW급 초급속 충전을 지원해 배터리 충전량을 10%에서 80%까지 끌어올리는 데 20분대 중반이면 충분하다. 차량 앞쪽에 급속·완속 충전구를, 뒤쪽 측면에 별도의 완속 충전구를 마련한 점도 기아 최초 사양이다. 구동계는 최고출력 200kW, 최대토크 420Nm의 전륜 모터가 기본이며, 사륜구동 모델도 추후 추가될 예정이다.
적재 능력 역시 강화됐다. PV7 카고는 유로 팔레트 3개를 적재할 수 있어, 2개에 그쳤던 PV5보다 적재 효율이 높아졌다. 패신저 모델은 최대 11인승까지 구성된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운영체제 기반 '플레오스 커넥트'와 생성형 AI 에이전트 '글레오 AI', 플릿 관리 시스템 '플레오스 플릿'을 갖춰 고객사의 차량 운용을 지원한다.
PV5가 도심형 C세그먼트 밴을 겨냥한 모델이었다면, PV7은 한 체급 위인 미드사이즈 밴 시장을 정조준한다. 이 시장은 포드 E-트랜짓, 메르세데스-벤츠 e스프린터, 폭스바겐 상용밴 등이 오랜 기간 장악해 온 곳이다. PV5가 3만 유로대(세전) 가격 경쟁력과 패신저·카고·샤시캡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유럽 시장 문을 열었다면, PV7은 대형 화물·다인승 셔틀·이동형 매장 등 보다 넓은 활용성을 앞세워 주력 체급 공략에 나선 모습이다.
PV5는 올해 상반기 유럽에서 1만3603대(데이터포스 기준, 기아 IR 집계로는 1만4015대)가 팔리며 C세그먼트 전기 밴 시장 점유율 30.4%로 1위에 올랐고, 12개국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올해 1~8월 글로벌 판매량은 3만9000대에 달하며, 국내 브랜드 최초로 '2026 세계 올해의 밴(IVOTY)'을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수상하기도 했다. PV7이 이 흥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기아의 PBV 라인업은 탑승객 수송에 특화한 '피플무버', 업무 환경에 최적화한 '유틸리티', 물류 배송에 특화한 '딜리버리' 세 유형으로 구성된다. 2025년 PV5, 2027년 PV7에 이어 2029년에는 초대형 모델 PV9까지 순차적으로 출시하며 소형부터 초대형까지 전 체급을 아우르는 라인업을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도심 배송에 특화한 소형 모델 PV1도 개발 중으로, PV7의 넉넉한 적재 능력과 결합하면 라스트마일 배송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생산은 오토랜드 화성의 PBV 전용 공장 '화성 EVO 플랜트'가 전담한다. 다차종 유연 생산 시스템을 갖춰 PV5·PV7·PV9을 한 공장에서 함께 생산할 수 있는 체제다. 기아는 2030년까지 PBV 판매량 25만대를 목표로 제시했다. 지역별로는 유럽 13만3000대, 국내 7만3000대, 기타 지역 4만5000대이며, 모델별로는 PV5가 13만5000대, PV7과 PV9을 합쳐 11만5000대를 담당한다. PV7과 PV9이 PV5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해야 목표 달성이 가능한 구조다.
세계 최초 공개와 실제 인도 사이의 간극은 변수다. 국내와 유럽 출시는 2027년 하반기로 예고됐지만, 현지 매체들은 실제 고객 인도 시점을 그 이후로 내다보고 있다. 공개부터 양산·인도까지 1년 이상의 시차가 벌어지는 셈이다. 그 사이 포드와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기존 강자들이 소프트웨어와 충전 인프라, 서비스망을 더욱 다지며 대응할 여지가 있다. 유럽 플릿 시장은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서비스 네트워크가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가격과 제품력만으로 오랜 거래 관계를 뒤집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PV5가 유럽시장에서 보여준 것은 후발주자도 제품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면 유럽 전기 상용차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PV7의 과제는 그 성공 공식을 한 체급 위, 훨씬 치열한 격전지에서 재현하는 일이다. 2029년 PV9까지 라인업이 완성되면 기아의 PBV 사업은 승용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에 이은 세 번째 성장축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판가름 날 전망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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