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페라리가 8기통 3,990cc 엔진과 전기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의 차량 CZ26을 공개한 바 있습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 차량은 미국인 고객의 주문에 따라 단 한 대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자료를 더 찾아보니 차량 명칭에서 CZ는 주문자의 이름 Craig Zinns를 의미한다고 하며, 26은 페라리의 맞춤 차량 제작 부서에서 제작한 26번째 차량이라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올해 2026년과도 맞아 떨어지는 숫자입니다.
페라리는 이 차량을 만들기 위해 수석 디자이너 플라비오 만초니가 이끄는 페라리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디자인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개인의 주문에 의한 차를 단 한 대 만들기 위해 페라리라는 기업의 디자인 부서 인력이 투입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개발된 CZ26은 전장 4,762mm, 전폭은 무려 2,005mm, 전고 1,189mm, 휠베이스 2,650mm로, 그야말로 넓고 납작한 비례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지난 2019년에 공개됐던 하이브리드 방식의 고성능 페라리 SF90 차량을 기반으로 개발됐다고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최신형 CZ26과 SF90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전체적으로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블랙아웃 처리된 지붕과 A-필러, 그리고 도어와 벨트 라인 등이 비슷한 모습입니다.
물론 다른 부분은 그다지 비슷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SF90이 사선을 주로 쓴 조형인 것에 비해 새로운 CZ26은 수직, 수평에 사각형을 차체 디자인의 폼팩터(formfactor)로 사용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좀 더 디지털적 감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폼팩터 라는 말은 얼마 전 글에서도 설명한 일이 있습니다만, 어떤 형태를 구성하는 규칙을 만드는 요소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만, 이 개념은 전체적으로는 스타일(style) 이라는 용어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스타일이 대체로 외부 형태의 양식(樣式) 이라는 개념이라면, 폼팩터는 구조적 요소와 기술적 요인으로 나타나는 형태 특징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CZ26의 차체에서 수직과 사각형 요소, 그리고 직선과 각을 세운 조형이면서도 네 개의 휠 아치 위쪽의 차체는 근육질 형태의 유기체적 곡면으로 구성돼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후드에 뚫린 공기배출구와 차체 측면 공기흡입구에 적용된 로쏘 람판테(Rosso Lampante)라고 불리는 강렬한 빨강은 차체 색상으로 칠해진 수은(水銀)의 은빛(색상 명칭은 이탈리아 말로 아르젠토 벨로체-Argento Veloce 라고 합니다)과 대비되면서 첨단적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색상의 감각은 1970년대 이탈리아의 산업디자인(Industrial Design)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고 합니다. 1970년대에 이탈리아는 세계적인 디자인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시작했고, 자동차산업에서도 피닌파리나, 쥬지아로, 간디니 등을 필두로 하는 이탈리아의 디자이너와 차량 디자인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이런 이탈리아 산업디자인(Industrial Design)을 상징하는 듯한 인상은 CZ26의 뒷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직사각형 막대 두 개로 구성된 LED 테일램프와 둥근 사각형 개구부를 통해 돌출된 티타늄 재질의 둥근 배기 파이프는 각을 세운 차체 형태와 함께 기존의 타원형 램프를 쓴 SF90의 감성과는 구분되는 디지털 기기 같은 인상을 더욱 강조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CZ26은 차체 폭이 2,005mm에 이르는 그야말로 초 광폭으로, 바탕이 된 SF90의 1,973mm보다 32mm 더 넓고, 2mm 더 낮아서 매우 전위적 비례입니다.
SF90과 치수만 차이나는 것이 아니라, 조형 감각도 차이를 보입니다. SF90이 곡면과 곡선의 유기체적 감성이지만 CZ26은 그야말로 디지털 전자제품 같은 감각의 인상입니다.
한편 차체 뒤쪽의 배기 파이프가 티타늄 재질인 것을 보면 과연 페라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티타늄은 용융점이 매우 높은 고경도의 금속이기에 가공이 어려운 고가의 재료입니다. 그런 재료를 배기구 마감재로 쓴 것은 고열에 의한 산화나 변색을 막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보통의 양산형 차량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아낌없는(?) 고급 설계와 디자인입니다.
실내로 오면 바탕이 된 SF90과 구성은 거의 같은 인스트루먼트 패널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SF90은 대부분 검은 색조로 구성돼 있지만, CZ26은 도어 트림 패널과 클러스터 후드 등에 은빛 질감의 재질을 적용해 상대적으로 밝은 인상입니다. 이것 역시 아마도 차체 디자인의 모티브와 같이 은빛을 통일성 있게 반영한 걸로 보이는 부분입니다.
그와 아울러 카본 재질도 사용되면서 차량 명칭 CZ26의 로고가 새겨진 크러시 패드는 맞춤형 주문생산 차량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좌석에도 CZ26 이라는 차량 명칭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좌석의 양쪽 끝에 부착된 3D 프린팅 방식의 빨간색 인서트 부품-물론 저 부품의 기능이 무엇인지 명확치는 않습니다만-이 오늘날의 변화된 생산기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택 가공된 3차원 곡면 알루미늄 질감의 20인치 휠은 미세한 입자를 분사해 다듬는 숏-핀 가공(shot-peened)에 의해 검은색 도장면과 광택 가공된 알루미늄 은빛의 두 가지 색상으로 마무리됐다고 합니다. 이 가공 기술은 얼마 전에 살펴봤던 롤스로이스 나이팅게일의 3차원 곡면 휠 가공에도 쓰였던 기술로 보입니다.
우리들이 일상에서 흔히 보는 다이아몬드 커팅 가공 알루미늄 휠은 선반에 물려서 절삭하는 가공 공법의 한계로 인해 기하학적 성향의 곡면(Euclidian curved surface)이나 평면 형상 표면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 이외의 비 유클리드 특성의 곡면(non-Euclidian curved surface), 즉 자유 곡면 가공은 단순히 은빛 페인트 가공만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롤스로이스 나이팅게일이나 CZ26의 휠은 그러한 곡면을 금속 재질로 가공한 질감의 휠을 장착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부분은 한 대의 자동차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성능이라는 본질적인 부분이 아닌 감각적인 표면의 디테일에 불과한 요소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자동차에서 개성 있는 디자인은 매우 다양한 주제와 소재, 그리고 그것이 결합된 감성적 이미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앞으로의 자동차 기술이 디지털화와 개별화의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고 생각하는 방향이라면, 오늘 우리들이 살펴본 단 한 대만 제작된 페라리 CZ26은 그러한 방향을 보여주는 차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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