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중국 브랜드의 공세에 맞서 초저가 보급형 전기차 라인업을 대폭 확대하며 전동화 주도권 수성에 나섰다. 르노 그룹은 향후 5년간 100억 유로(약 1.8조 엔) 규모의 투자를 검토하며 저가형 전기차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유럽연합의 공급망 규제와 맞물려 심각한 역내 배터리 공급 부족이라는 구조적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파리 모터쇼에서 스텔란티스의 안토니오 피오사 유럽 담당 CEO는 "모두가 구매할 수 있는 저가 전기차"를 선언하며, 시트로엥 브랜드의 2CV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차체 중량 1톤 미만의 소형 모델로, 중국 리프모터와의 공동 개발 플랫폼을 기반으로 2028년 1만 5,000유로(약 270만 엔) 수준의 파격적인 가격에 출시될 예정이다.
르노 역시 다치아 브랜드를 통해 1만 8,000유로 미만의 신형 스프링을 선보였다.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 CEO는 대규모 투자를 통한 소형 EV 가격 인하 의지를 명확히 했다.
폭스바겐 그룹 또한 ID.폴로를 비롯해 슈코다, 쿠프라 등 부품의 80%를 표준화한 대중형 소형 전기차 라인업을 완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보급형 전기차 전환 노력은 역내 배터리 조달이라는 거대한 병목 현상에 직면해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026년 3월 발표한 산업촉진법(IAA) 초안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 등 공공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EU 역내 제조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모빌리티 글로벌 등 전문 연구 기관에 따르면, EU 27개국의 역내 배터리 생산량은 공장 증설을 통해 2036년까지 260GWh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지만, 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는 2028년경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및 EREV를 포함해 최대 334만 대 분량의 배터리 공급 부족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배터리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상당수 전기차가 EU 보조금 혜택 대상에서 제외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비용 및 기술적 격차도 심각한 과제다. 유럽 현지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는 주로 고가의 삼원계(NMC) 중심인 반면, 저가 소형 EV의 핵심인 LFP 배터리는 중국 기업들이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유럽산 배터리 단가는 중국산 대비 약 30% 높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중국산 LFP 배터리 및 공급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유럽연합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 및 긴급수입제한 조치 등을 통해 역내 산업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수익성 확보와 산업 주권 수성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보급형 전기차를 통한 유럽의 전동화 반격은 유럽 시장 내 배터리 공급망의 실질적인 내재화가 필수 요소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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