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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커피’는 김치만큼이나 없어선 안될 존재다. 손님을 대접할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커피가 등장하고, 식당 출구에는 당연한 듯이 100원짜리 커피 자판기가 놓여 있다. 설탕과 프림이 몽땅 들어간 다방커피가 전부였던 옛날을 지나 바야흐로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커피전문점의 커피를 먹던 여자들을 통상 ‘된장녀’라고 부르던 것도 지난 얘기다. 이젠 우리들 입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카라멜 마끼아또’ 따위를 말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우후죽순 생겨난 커피전문점 중에서도 ‘스타벅스’는 조금 남다르다. 커피 문화의 선구자로 마치 그 때 그 시절 다방문화를 자연스럽게 커피전문점의 문화로 만든 셈이다. 테이크아웃의 개념도 고급커피의 이미지도 모두 스타벅스가 최초로 선보였다.
국내 매장만 435개, 하루 평균 14만여 명의 손님이 들락날락하는 스타벅스. 그들은 정말 ‘원조’라고 불릴 만 할까?
미국 사람에겐 아지트

스타벅스 1호점 시애틀점. <사진 = 스타벅스 홈페이지>
1971년 미국 시애틀에 문을 연 최초의 스타벅스는 커피 원두를 로스팅해 팔던 작은 상점이었다. 고전 모비딕에서 커피를 사랑하는 항해사 스타벅(Starbuck)의 이름을 본 따 가게의 이름을 스타벅스라 붙이고, 그리스 신화의 인어 세이렌을 심벌로 선택해 커피 무역상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스타벅스 로고의 초기 이미지는 상당히 적나라했다)
이들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현 스타벅스 회장인 하워드 슐츠를 고용하면서부터였다. 커피 맛에 반해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 두고 1982년 스타벅스의 영업 이사로 합류한 슐츠는 우연한 기회에 이탈리아에 들렀다가 커피에 대한 새로운 열정을 발견했다. 그는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매개체”라고 말하며 미국도 이탈리아처럼 직접 추출한 커피를 팔며 근사한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사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슐츠는 스타벅스를 나와 일 지오날레라는 커피 회사를 설립했다. 커피를 뽑아 고객들에게 무료로 시음하도록 하고 투자자들을 설득해 이뤄낸 이 커피전문점은 슐츠의 예상대로 승승장구하면서 2개의 분점을 냈다. 1987년 급기야 슐츠는 스타벅스를 인수해 제대로 커피전문점의 신화를 써 내려간다. 그리고 스타벅스는 가정과 회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 3의 아지트’가 되었다.
커피 맛과 향의 정석이 된 스타벅스는 어느새 전 세계 54개국에 매장 16000점(2010년 기준)을 넘어섰고 이제는 맥도날드처럼 세계 어디를 가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선 다용도실
신세계와 스타벅스 인터내셔널의 공동투자로 설립된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1999년 이대 앞에 스타벅스 국내 1호점을 열고 고속 성장했다. 인사동에는 세계 최초로 자국어 간판이 설치되기도 했다.

스타벅스 국내 1호 이대점(좌), 한국어 간판으로 명물이 된 인사점은 현재 리뉴얼 공사 중이다.(우)
<사진 = 스타벅스 홈페이지>
우리나라는 스타벅스가 최저의 성장률을 보이며 위기라고 불리던 2008년에도 밤낮 없이 꾸준한 매상을 올려줬다. 스타벅스에 대한 충성도가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다. 혹자는 커피는 끊어도 스타벅스는 끊을 수 없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 스타벅스가 들어온 배경도 미국 유학시절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시던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한국에 돌아온 후 스타벅스를 잊지 못해 결국 국내로 데려온 것이었다.

국내 300호점 안국역점 오픈 행사. 현재는 435개의 스타벅스가 오픈한 상태다.<사진 = 스타벅스 홈페이지>
커피의 맛도 맛이지만 ‘공간’이 필요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커피전문점은 최적의 장소였다. 민들레영토처럼 추가요금을 낼 필요도 없고 음료 한 잔이면 누구나 그 공간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포문을 연 것이 스타벅스였다.
미국의 아담한 스타벅스 매장들과 비교하면 국내 매장들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이 어마어마한 공간은 때때로 모임 장소가 되기도 하고 공부를 하는 독서실이 되기도 한다. 커피전문점에서 업무를 보는 직장인들도 많아 커피(Coffe)와 오피스(Office)의 합성어인 ‘코피스’라는 말도 생겨났다.
더 깊은 공간으로 스며든 비아(VIA)
1등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는 새 국면을 맞았다. 유리병커피, 캔커피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시도. 바로 인스턴트 커피다. 2년 전 미국에서 출시한 원두 분쇄커피 비아 래디 브루(VIA Ready Brew, 이하 비아)가 지난 9월 16일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소비자 반응은 제각각이다. 먼저, 스타벅스 마니아는 드디어 비아가 상륙했다는 이야기가 반갑기만 하다. 스타벅스의 풍미를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매장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마니아들은 이미 외국의 지인이나 인터넷을 통해 비아를 구입해 이 맛은 어떻고, 저 맛은 어떻고 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제는 스타벅스 매장에만 가면 손에 넣을 수 있으니 편하지 아니한가.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인스턴트 시장과 비교하니 터무니 없이 가격이 비싸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스타벅스 비아를 3500원에 구입하면 그 안에는 스틱형 인스턴트 커피가 3개 들어있다. 하나당 가격이 1200원 정도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인스턴트 커피는 하나에 약 120원이니 가격 차가 10배나 된다. 가뜩이나 우리나라 커피 시장도 ‘고급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비아의 등장으로 커피 가격이 더 오르지 않을까 걱정하는 여론도 있었다.
평소 커피를 즐기는 20대 직장인 여성 최씨는 “맛만 보고 따져봤을 땐 기존 커피 믹스의 단맛과 텁텁함이 없이 깔끔한 맛이 충분히 승산이 있다”면서 “하지만 늘 마시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고, 매장의 분위기 때문에 스타벅스 커피를 즐기는 이유도 있기 때문에 여행 같은 특수한 상황에 가져간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게 인스턴트 커피의 의미는 남다르다. 인스턴트 알갱이 커피의 고향이요, 믹스커피의 태생지인 우리나라에서 스타벅스 비아는 어떤 행보를 보여줄까. 19일에는 동서식품에서도 원두를 분쇄한 분말 커피인 ‘카누(KANU)’가 출시된다고 하니 그들의 싸움 또한 기대가 된다.

동서식품 원두 분쇄커피 카누의 티저광고
먼 훗날 우리나라 커피 역사는 고종황제가 즐겨 마셨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최초의 다방 정동구락부, 최초의 믹스커피 맥심 등 다양한 이야기거리들이 쏟아질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이야기들 사이에서 스타벅스도 충분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스타벅스는 여전히 우리나라와 함께 커피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미디어잇 염아영 기자 yeomah@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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