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쉽지만 일단 선점에는 실패한 듯 하다. 미드 니켈 NCM 배터리 셀과 셀투팩(CTP) 시장 이야기다.
우리 나라와 중국은 이차전지 강국이다. 비록 시장 점유율과 규모에서는 중국이 앞서 나가고 있지만 양국의 이차전지 산업은 분명하게 각자 또렷한 강세 분야를 점유하고 있다.
바로 한국의 삼원계 배터리, 중국의 LFP 배터리다.
초기에는 높은 에너지 밀도의 삼원계 배터리 기술에 앞선 우리 나라가 앞서 나갔다. 하지만 A123시스템즈가 갖고 있던 LFP 배터리의 핵심 특허가 2022년 공개되면서 기술적 난이도가 비교적 낮은 LFP 배터리의 개발과 급속한 보급에 성공하였다. 즉, 한국은 고성능 배터리 시장에, 중국은 가성비 배터리 시장에 또렷한 강점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일단은 중국의 기세가 높다.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는 얼리어답터 시장은 신규 시장 초기 진입에는 효과적이지만 시장 규모를 본격적으로 성장시키는 대중화 단계에서는 이보다는 접근성이 좋은 가격이 중요하다. 특히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낮은 중국 대중 시장의 입장에서는 더욱 가격이 중요했다. 이 시점에서 대두된 것이 바로 LFP 배터리다. LFP 배터리는 코발트나 니켈 등 고가의 원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했다. 그리고 제조 공정이 삼원계 배터리에 비하여 단순했기 때문에 빠르게 기술을 발전시켜 양산에 돌입하기에도 유리했다. 그 결과, 중국은 LFP 배터리의 보급을 통하여 이차전지 및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주력 시장의 공략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중국의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 시장 진출에는 한국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촘촘한 특허 장벽이 문제였다. 실제로 현재로 NCM811급 이상의 하이 니켈 배터리에서는 중국산 제품이 수율이나 성능 등에서 한국 기업의 제품에 비하여 열세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대로 한국이 LFP 등 저렴한 배터리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노력은 중국의 빠르고 강력한 LFP 시장 선점과 절대적 가격 경쟁력에서 제한적 결과에 그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한동안 한국과 중국은 각자의 강점을 중심으로 이차전지 시장을 각각 형성해 왔다. 즉, 강점은 강화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의 기술 개발로 자신이 강한 시장의 장악력을 강화하는 방향이었던 것. 고가 고성능 제품 시장에 강세였던 한국의 삼원계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를 더 끌어올리면서 코발트 등 고가 원료의 비중을 낮추는 하이 니켈 배터리 셀의 개발과 안정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BMS의 고도화 등이 주된 트렌드였다. 셀의 에너지 밀도가 높아지고 안전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장의 요구에 따라 에너지 밀도에 유리했던 기존 파우치 형태의 셀 중심에서 구조적 안정성이 높은 각형 셀과 범용 규격의 원통형 배터리로의 트렌드 변화가 두드러졌다.
중국 LFP 진영의 발전은 보다 공격적이었다. 대표적 예가 바로 셀-투-팩(CTP) 구조의 적극적 채용이다. 기존의 배터리 팩은 셀-모듈-팩 구조로 이중 구조를 사용한다. 모듈이라는 중간 구조가 존재하므로 안전도 및 안정성은 우수한 반면 당연히 전체 팩 기준에서는 에너지 밀도에 희생이 따를 수 밖에 없다. LFP 셀의 CTP 배터리 팩은 열폭주에 대한 안정성이 높고 기본적으로 각형 셀이 주류인 LFP 배터리의 안정성을 활용하여 모듈 단계를 삭제하고 배터리 셀을 팩에 직접 담는 방식으로 LFP 셀의 낮은 에너지 밀도를 보완하는 것이다. BYD의 블레이드 배터리와 CATL의 기린 CTP가 대표적이다. CTP 구조는 셀-모듈-팩 구조에 비하여 단위 부피 당 에너지 밀도가 20~30% 개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LFP의 CTP로의 진화는 무슨 뜻일까? 그것은 중핵 시장으로의 접근이다. 즉, 저가 전기차 시장을 출발점으로 LFP 배터리가 중앙의 가장 두터운 시장으로 다음 방향을 정한 것이다. 삼원계 배터리가 에너지 밀도와 안정성 등 배터리 기술의 고도화에 집중하면서 기술적 외연을 밀어 올리는 사이 중국은 시장 점유율과 제조업 기반을 바탕으로 주류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가장 두터운 시장이 될 바로 이 중핵 시장은 한국 삼원계와 중국 LFP 배터리의 직접적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즉, 한국 배터리는 가성비를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중국 배터리는 LFP의 에너지 밀도 등 성능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시작한다.
바로 여기에서 미드 니켈 CTP가 치열한 전장이 될 전망이다. 중국은 이미 성숙된 CTP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에 주로 사용하던 LFP 배터리 셀을 대신하여 에너지 밀도도 높고 비교적 기술적 장벽을 극복한 미드 니켈 삼원계 배터리 셀을 사용하는 접근법으로 중급 배터리 팩 시장에 접근할 수 있다. 반대로 고도의 하이 니켈 포뮬러로 기술적 수준을 높인 한국은 이제는 셀 단위의 에너지 밀도는 다소 희생하지만 높은 수준의 안정성과 수율을 확보할 수 있는 미드 니켈 삼원계 셀을 중국보다 훨씬 잘 만들 수 있다. 하이 니켈 배터리 셀보다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미드 니켈 셀은 충분히 CTP로도 안정성을 기술을 접목한다면 한국은 자신의 강점인 삼원계 기술을 바탕으로 성능과 가격의 균형이 좋은 우수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특히 코발트 등 원자재의 가격이 안정된 지금이 적기다.)
하지만 최근 출시된 중국 배터리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전기차들이 국내에 도입되면서 우리가 한 발 늦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성능 또한 상당하다. 400마력의 폴스타 4가 NCM523 기반의 CTP를 사용하고, 600에서 900마력대의 초고성능 GT인 로터스 에메야 / 엘레트라가 NCM523 또는 NCM622 셀을 사용하는 CTP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미드 니켈 배터리로도 충방전 성능이 우수하다는 의미다. 심지어 로터스는 800V 아키텍쳐를 구현하였다. 또한 배터리 팩의 용량이 모두 100kWh 이상으로 절대 용량에서도 하이 니켈 대비 미드 니켈의 단점을 CTP 기술로 완벽하게 커버하였다. 즉, 최소한 제원상으로는 우리 나라가 강점을 갖고 있는 하이 니켈 셀-모듈-팩 방식에 뒤처지는 부분을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CATL의 기린 3.0 CTP 기술은 LFP와 NCM 셀을 모두 지원하는 유연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개발비 절감에 따른 가격 경쟁력을 더 넓은 제품군에서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본격적인 중핵 시장용 솔루션이다.
물론 전고체 배터리 등 근본적으로 기술적 장벽을 넘는 방법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최근 국제적 경기 침체와 전기차 수요 둔화에서 체험했듯이 제품의 대중화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보편성을 갖는 제품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대책은 무엇인가. 미드 니켈 NCM 셀의 개발과 CTP 기술의 개발이 진행중이라는 소식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안된다. 중국의 미드 니켈 CTP와 차별화할 수 있는 섬세한 제품 사양의 확정이 매우 중요하다. 거기에는 우리의 강점이 잘 녹아들어야 하고 그것을 고객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핵 시장에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중국 쓰나미에 떠내려갈 수도 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c) 글로벌오토뉴스(www.global-auto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저작권자(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