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산업은 이제 더 이상 하드웨어만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과 부품사, IT 기업들은 미래 모빌리티의 중심으로 소프트웨어를 지목하며 SDV(Software-defined Vehicle,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테크 기업으로 변화를 꾀하는 이들의 행보는 이미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최근 BMW는 '노이어 클라쎄(Neue Klasse)' 플랫폼을 발표하며,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전자·전기(E&E) 아키텍처를 전면 혁신했다. BMW는 이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차량의 핵심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무선으로 실시간 제공하고, 다양한 개인화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폭스바겐 역시 소프트웨어 전담 자회사인 CARIAD를 중심으로 E&E 아키텍처를 단순화하며 차량 소프트웨어 플랫폼 구축에 주력하고 있으며, 테슬라는 이미 OTA(Over-the-Air) 업데이트를 통해 자율주행 기능부터 차량 성능 최적화까지 폭넓게 제공하며 SDV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다지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도 자체 소프트웨어 플랫폼 MB.OS를 통해 인포테인먼트, 차량 제어, 자율주행 등의 기능을 통합 관리할 계획이며, GM 역시 Ultifi 소프트웨어 플랫폼으로 SDV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GM은 구글과 협력해 차량 내 AI 기반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으로, 차량 내부의 모든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관리하고 업데이트할 계획이다.
여기에 IT 공룡들 역시 자동차 소프트웨어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다. 구글은 Android Automotive OS(AAOS)를 앞세워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협력하고 있고, 애플 역시 카플레이(CarPlay)를 넘어 차량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소프트웨어 환경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고성능 차량용 컴퓨팅 플랫폼을 제공하며 SDV의 두뇌 역할을 맡고 있으며, 퀄컴은 차량용 칩셋과 함께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성능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글로벌 경쟁 속에서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 28일 서울에서 개최한 개발자 컨퍼런스 'Pleos 25'를 통해 본격적인 SDV 전략을 공개하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차가 발표한 'Pleos'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그룹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Pleos Vehicle OS와 Pleos Connect라는 두 핵심 플랫폼을 통해 현대차는 차량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디커플링)하여 제어기를 약 66% 줄이고, 차량 내 소프트웨어 유연성을 극대화했다. 이를 통해 차량이 마치 스마트폰처럼 언제나 최신의 소프트웨어로 업데이트되고 개인 맞춤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특히 현대차가 개발한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Pleos Connect'는 구글의 AAOS를 기반으로 모바일과 차량 간 연결성을 대폭 강화했다. 여기에 음성 인식 기반의 AI 어시스턴트 'Gleo AI'를 적용해 사용자가 더욱 직관적이고 편리하게 차량과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현대차는 2027년까지 레벨2+ 자율주행 기능 도입을 목표로 카메라와 레이더 기반 인식, AI 딥러닝 등 자율주행 관련 기술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할 계획이다.
또한 현대차가 공개한 차량용 앱 생태계 'Pleos Playground'는 전 세계 개발자 누구나 차량용 앱을 개발하고 배포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이다. 이는 단순히 현대차만의 생태계를 넘어 글로벌 개발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더욱 다양한 고객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대차는 SDK와 API뿐 아니라 실제 차량 없이 앱을 개발 및 테스트할 수 있는 환경과 디버깅 도구를 제공해 개발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구글, 네이버, 삼성전자, 우버 등 주요 글로벌 파트너사들이 함께 참여해 모바일과 차량 간의 연결성 강화, 차량용 앱 마켓의 확장 방향성을 공유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싱스(SmartThings)를 통해 스마트 홈과 차량을 연결해 더욱 편리한 생활 환경을 구현할 계획을 발표했고, 네이버는 AI를 통해 차량 내에서 더욱 개인화된 콘텐츠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전을 제시했다.
현대차의 이번 발표는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흐름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소프트웨어 중심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며, 이 과정에서 글로벌 파트너사와의 협력, 그리고 개방형 플랫폼 전략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향후 현대차가 SDV 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게 확장하고 다양한 파트너사들과 협력하여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글로벌 경쟁력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차량뿐 아니라 도시와 국가 단위의 모빌리티 혁신을 위한 협력 체계인 'NUMA(Next Urban Mobility Alliance)'를 구축해 수요 응답형 교통(DRT) 솔루션과 교통약자 지원 디바이스 등을 통해 사회적 문제 해결까지 목표로 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번 'Pleos' 발표가 현대차의 글로벌 소프트웨어 경쟁력 확보와 미래 모빌리티 시장 선점에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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