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게이머들은 비웃을 수도 있지만, 한 때 전 세계 게임업계를 블리자드가 지배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e스포츠 열풍을 이끌었던 스타크래프트부터, 핵앤슬래시 장르를 상징하는 게임이 된 디아블로 시리즈, 지금도 전 세계 MMORPG 장르를 이끌고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까지 내놓은 게임마다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으니까요.
지금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건재하고, 오버워치2, 하스스톤 등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명성에 먹칠하는 후속작들만 줄줄이 내놓고 있는 게임사라고 인식되고 있는 것은, 전성기가 그 누구보다 화려했던 만큼 지금의 모습에 더욱 실망한 열성 팬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게임사들이 항상 잘 나갈 수는 없습니다. 트렌드에 뒤처져서 신작이 망하기도 하고, 전설의 호흡을 자랑했던 개발진들이 뿔뿔이 흩어지기도 하니까요. 실제로 지금의 블리자드를 보면 액티비전에 인수된 후 창업자 마이크 모하임을 비롯해서 유명 개발진들이 모두 나가면서 예전과 다른 회사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럼, 과거 블리자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개발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한 때 블리자드의 간판 개발자였던 빌로퍼는 블리자드 개발진 중에서 가장 먼저 블리자드를 퇴사하고, 새로운 게임사를 설립했습니다. 다들 익히 아는 헬게이트 런런을 개발한 플래그십 스튜디오입니다.
빌로퍼뿐만 아니라 당시 블리자드 핵심 개발진으로 꼽혔던 에릭 스캘퍼, 맥스 스캘퍼, 데이브 브레빅 등이 플래그십 스튜디오에 합류했고, 당시 블리자드 게임을 유통하면서 한국 게임 시장을 주도했던 한빛소프트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엄청난 기대를 모았는데요, 아쉽게도 망했습니다. 게임성도 약간 애매했고, 과금 모델에 대한 반감도 문제가 됐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유행하는 루트 슈터 장르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데,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것 같기도 합니다.
빌로퍼는 플래그십 스튜디오가 망한 이후 시티 오브 히어로의 개발사인 크립틱 스튜디오에서 챔피언스 온라인, 스타트렉 온라인 등에 참여했다가 다시 퇴사했고, 오랜 기간 디즈니 인터랙티브 스튜디오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게임 사업 확대를 추진했습니다.
직접 게임을 개발하는 위치가 아니다보니, 소식이 많이 들려오지는 않았는데, 지난해 새롭게 설립한 루나시게임즈에서 헬게이트 런던 IP를 계승한 헬게이트 리뎀션을 만든다는 소식을 밝혀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블리자드 퇴사 이후 계속 안타까운 모습만 보였는데, 이제 나이가 있다보니 마지막은 화려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네요.

스타크래프트2 개발을 주도했던 팀 모튼과 제시 브로피, 라이언 슈터 등이 설립했던 프로스트 자이언트 스튜디오는 RTS 장르의 부활을 외치면서 스톰게이트를 선보였는데, 출시 전 기대감에는 많이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RTS 장르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면서, 3인 AI 협력전, 건설 과정에 도움을 주는 버디봇 등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많이 노력을 했다고 하는데, 시대에 많이 뒤쳐진 그래픽, 그리고 다소 실망스러웠던 초반 캠페인이 실망감을 준 것 같네요. 아직 공개되어야 할 캠페인이 많고, e스포츠도 꾸준히 추진한다고 하는데, 초반 실망감을 극복하고 부활할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됩니다.

스타크래프트2 밸런스 담당으로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데이비드 킴 역시 언캡드 게임즈에서 신작 RTS 배틀에이스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RTS 문법을 따르고 있는 스톰게이트와 달리 배틀에이스는 시작 위치가 정해져 있고, 자원 채취도 자동으로 진행되는 등 상당히 파격적인 RTS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기지가 완성되기 전까지 지루한 초반 구간을 겪어야 하는 것이 RTS 장르의 진입장벽이라고 판단하고, 오로지 전투에만 집중하겠다는 컨셉이네요.
이미 얼리액세스 서비스를 시작한 스톰게이트와 비슷한 시기에 CBT를 진행하면서 주목을 받았는데요, 아직 정식 출시 일정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피드백에서 나온 의견들을 반영해 게임을 개선 중인 것 같은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완성도 있는 모습으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하스스톤 개발자로 유명한 벤 브로도는 위에서 언급된 다른 개발진에 비하면 꽤 인상적인 성과를 냈습니다. 새롭게 설립한 세컨드 디너에서 하스스톤에 대항하는 신작 카드 게임 마블 스냅을 출시했고, 흥행에 성공했으니까요.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마블 유니버스 캐릭터들을 활용한 것이 가장 큰 흥행의 요인이 되겠지만, 게임성 자체도 굉장히 간단한 룰과 빠른 경기 템포, 나름 깊이 있는 전략적인 플레이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틱톡으로 유명한 바이트댄스의 자회사 뉴버스가 퍼블리셔이다보니, 미국 게임사가 만든 게임인데 미국에서 퇴출될뻔한 아찔한 상황도 있었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퍼블리셔를 변경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성공시키며 블리자드 성공 신화에 가장 기여한 개발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롭 팔도를 필두로, 디아블로3 총괄 디렉터 조시 모스케이라, 블리자드의 모든 시네마틱 제작을 주도했던 닉 카펜더는 퇴사후 본파이어 스튜디오를 설립했습니다.
본파이어 스튜디오는 지난 2016년에 설립된 후 라이엇게임즈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요, 아직까지 주목할만한 신작이 없어서, 불안 불안 했는데, 최근에 신작 프로젝트 토치를 출시한다고 발표하고, 하이브IM과 한국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해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토치는 PC 기반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으로, 팀 기반 PVP 방식이라고 합니다. 퍼블리셔까지 결정됐으니, 조만간 상세한 정보가 공개될 것 같네요.

블리자드 창업자로 유명한 마이크 모하임은 블리자드 퇴사 후 지난 2020년에 새로운 회사 드림헤이븐을 설립했습니다. 설립 후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조용히 사라지는가 싶어 걱정됐는데, 다행스럽게 최근에 더 게임 어워드의 유튜브와 트위치 채널을 통해 신작을 공개하는 쇼케이스를 진행했습니다. 사실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블리자드 퇴사자가 많다보니…
드림헤이븐에서 개발 중인 게임 중에 가장 먼저 즐겨볼 수 있는 것은 오는 4월 23일로 출시가 확정된 선더포크입니다. 테이블탑 RPG에서 영감을 받은 게임이라는데, 미니어처 전략 게임 같은 느낌이 듭니다. 특이한 점은 최대 4명까지 플레이할 수 있는데, 한명만 게임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3명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을 이용해서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드림헤이븐 산하 개발사인 문샷 게임즈에서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코옵 플레이 게임 ‘와일드 게이트’도 오는 연말에 선보인다고 합니다. 4명이 한팀이 되어 우주선을 조정하고, 다른 이들을 약탈할 수도 있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고 하네요. 마이크 모하임이 블리자드를 퇴사할 때 깔끔한 모습은 아니었다보니, 드림헤이븐에서 명예회복을 했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