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전 현대자동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생산 라인 전경. (현대차)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중국 브랜드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3년간 러시아 자동차 시장을 완전 장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브랜드의 시장 지배력이 높아지면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또는 종전과 함께 복귀 가능성이 높은 국내 업체들의 부담과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최근 발표한 "러시아 자동차 산업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3년간 러시아 자동차 시장이 중국계 브랜드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됐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러시아의 자동차 생산은 전년 대비 34.7% 증가한 98만 3000대, 판매는 39.2% 증가한 183만 4000대를 기록했다. 외국계 브랜드의 철수로 인한 공백을 현지 기업과 중국 브랜드들이 빠르게 대체하며 전반적인 시장 회복세를 견인하고 있다.
러시아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중국계 완성차와 부품기업들의 폭발적 성장이다. 중국의 대러 자동차 수출은 2022년 15만 4000대에서 2024년 117만 대로 7.6배 증가했고, 승용차 시장 점유율은 8%에서 60.4%로 치솟았다.
특히 체리(Chery), 지리(Geely), GWM(Haval) 등은 현지 생산과 SKD 조립 확대를 통해 빠르게 기반을 확보했으며, 2024년 상반기 판매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중국계 자동차의 시장 점유율이 빠르게 상승하자 러시아는 최근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비관세 장벽의 하나로 재활용 수수료(폐차세)를 66.7만 루블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인상하고 매년 10~20% 인상할 예정이다. 중국산 자동차가 특히 강세인 전기차도 구매 시 국산 부품 탑재 조건을 강화해 내수 산업 지키기에 나섰다.
또한, 외국계 기업의 복귀 시에는 현지 합작 투자, 기술 이전, 고강도 현지화 요건을 의무화하는 조건이 제시되고 있어, 전쟁전과 같은 단독 진출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다.
보고서는 향후 종전 가능성과 함께 르노, 도요타, 현대차 등 주요 글로벌 브랜드의 재진입 가능성을 높게 봤다. 특히, 2021년 기준 러시아 내 점유율 1위였던 현대차 기아는 현지 중고차 시장에서도 여전히 상위권을 차지하며 브랜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어 복귀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KAMA 관계자는 “러시아 시장은 전쟁 이전까지 한국 자동차 업계의 주요 수출시장인 동시에 생산 거점 역할을 해온 만큼 향후 성장 여력이 있다”라고 했다. 보고서는 따라서 한국 기업의 재진입 시 지정학적 리스크, 정책 변화, 현지화 요구 등 다층적인 변수를 고려한 전략 수립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대차가 지난 2023년 7000루블(10만 2000원)에 매각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올해 말까지 재매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최근 저가 매각 자산의 재취득을 제한한다는 방침이어서 재매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러시아는 한때 한국 자동차 산업의 2대 수출시장으로 자리했던 주요 전략국이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거대한 변수는 시장 지형도뿐 아니라 진입 방식까지 바꿔놓았다. 중국 브랜드의 급부상과 러시아 정부의 산업 보호 정책은 외국 기업에 높은 장벽이 되고 있다.
국내 기업이 러시아 시장 재진출을 모색할 경우, 단순히 수출재개 차원이 아닌 현지 생산, 기술 공유, 전략적 제휴 등 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러시아 시장은 여전히 유효한 기회지만, '쉽지 않은 길'이라는 점에서 명확한 리스크 평가와 선제적 대응 전략이 절실해졌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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