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그야말로 실사에 가까운 그래픽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대다. 게임 그래픽은 인류 최초의 전자 게임으로 꼽히는 '테니스 포 투'가 점과 선으로 화면을 표현했던 것을 시작으로, 하드웨어 성능의 진화와 각종 기술의 발전이 더해지며 각 시대에 맞춰 엄청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8비트나 16비트 게임들이 도트 그래픽과 스프라이트의 한계에 도전하며 아름다운 그래픽을 선사했고, 플레이스테이션 시대에 들어서는 3D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게임 시장에 들어왔다. 3D 그래픽 가속기가 등장한 이후에는 컴퓨터 게임 시장도 그래픽이 빠르게 발전했고, 점점 더 실제 같은 게임들이 등장하며 게이머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다.
이에 지난 세월 게이머들에게 비주얼로 충격을 선사했던 주요 게임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단순히 뛰어난 그래픽을 보여준 것은 물론, 기기의 한계에 도전했던 작품들도 섞여 있어 "A라는 게임이 있고 B라는 게임이 없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리라 본다.


패미컴 말기 기술의 집약체인 1993년 작품 '별의 커비 꿈의 샘 이야기'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부드러운 색감에 알록달록한 배경, 다양한 효과까지 구현한 것이 강점이다. 이외에 애니메이션 스타일 컷씬을 도입했던 1988년 작품 '닌자용검전'도 많은 게이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으리라 본다.

16비트 게임기로 넘어오면 슈퍼패미컴용 1994년 작품인 '동키콩 컨트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게임은 CG 렌더링 기반의 그래픽을 2D 스프라이트 형태로 변환해 사용했으며, 이는 마치 3D 게임처럼 보이게 만들어 기존 게임들을 뛰어넘는 비주얼을 선사했다. 여기에 정글, 동굴, 광산, 설산 등 풍부한 자연 환경을 표현하고 배경 레이어에 패럴랙스 스크롤링을 더해 입체감도 살렸다. 게임 제작에 할리우드에서 사용하는 고급 장비가 활용됐다.

메가 드라이브로 등장한 1993년 작품 '건스타 히어로즈'도 기술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작품으로 꼽힌다. 화려한 이펙트와 무기 연출을 실시간으로 매끄럽게 구현했다. 화면에 수많은 적, 투사체, 폭발 이펙트가 등장하지만, 느려짐이나 스프라이트 깜빡임 없이 부드럽게 구동되는 것이 강점이다. 여기에 회전이나 화면이 흔들리는 연출 등 기기의 한계를 넘어선 모습까지 구현했다.

3D 그래픽의 대중화가 시작된 플레이스테이션 1 시절에는 1999년 등장한 '파이널 판타지 8'이 대표적이다. 이 게임은 당시 JRPG의 기술적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인 작품으로 꼽힌다. 게임에는 수십 분 분량의 FMV(풀모션 비디오)가 준비되어 있으며, SD폼이었던 7편과 달리 더 인체와 유사한 비율 등으로 게임이 아니라 영화를 즐기는 기분을 전해줬다. 당시 파이널 판타지 8은 그래픽만으로도 엄청난 주목을 받았으며, 게임 화면으로 구성된 'Eyes on Me' 팬메이드 뮤직비디오는 게이머가 아닌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마찬가지로 스퀘어에닉스가 플레이스테이션 1 황혼기인 2000년에 선보인 '베이그란트 스토리'도 기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광원 효과와 고급 텍스처를 구현해 초기 플레이스테이션 2 게임과 착각할 정도로 고퀄리티 그래픽을 보여줬다. 이외에 영화 같은 카메라, 연기력 있는 캐릭터 애니메이션으로 화제를 모은 1998년 작품 '메탈기어 솔리드'나 실제 차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외형 구현과 고해상도 텍스처로 무장한 '그란투리스모 2'도 빼놓으면 아쉽다.

세가 새턴의 경우 3D 성능이 다소 약한 느낌이 있었지만, 1998년 선보인 '팬저 드래군'이 다중 카메라 연출, 실시간 전투, 부드러운 캐릭터 모델링을 보여주며 저력을 뽐내기도 했다. 말 그대로 기기의 한계를 극복한 작품이다.

플레이스테이션 2와 드림캐스트 시절부터는 뛰어난 비주얼을 자랑하는 게임들이 대거 출시됐다. 2001년 플레이스테이션 2로 등장한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 판타지 10'은 풀 3D 배경, 실시간 컷씬이 결합되고, 바닷물 표현, 소환수 연출 등이 애니메이션 수준으로 빼어난 비주얼을 보여줬다. 주인공 티다와 유우나의 컷씬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인상적인 영상미를 자랑한다.

2001년 등장한 '메탈 기어 솔리드 2: 선즈 오브 리버티'는 영화 수준의 그래픽과 연출을 보여줬으며, 빗물, 거울 반사 등 디테일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4년 등장한 '그란 투리스모 4'는 실제 차량 질감 표현, 조명 반사, 야간 주행 시 시야 표현까지 한층 강화해 레이싱 게임의 기준을 새롭게 만들었다.

드림캐스트 진영에는 현대 오픈월드 게임의 원조격인 '쉔무'가 1999년 등장했다. '쉔무'는 당시 게임 시장에서 보기 힘들었던 현실 기반 오픈월드를 구현했으며, 날씨와 시간의 변화, NPC의 스케줄 변화까지 구현해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1999년작 '소울칼리버'의 경우 드림캐스트 초창기 타이틀임에도 아케이드 버전을 뛰어넘는 그래픽을 자랑하며 눈길을 끌었다.

플레이스테이션 3에서는 2009년 작품 '언차티드 2'와 2013년 작품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언차티드 2'는 컷씬과 게임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조로 실시간 영화 같은 장면을 구현했다. 눈 덮인 히말라야, 도시 전투, 밀림 등 다양한 배경은 물론, 빛 반사, 그림자, 안개 등으로 깊이를 더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광원과 쉐이더 기술을 극대화해 빛 반사 처리를 디테일하게 구현한 것이 강점이며, 캐릭터의 감정 표현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엑스박스 360 진영에서는 2006년 작품인 '기어즈 오브 워'가 돋보인다. 언리얼 엔진 3 기반으로 구현된 HDR 조명, 노멀 맵 기반 질감, 실시간 그림자는 그야말로 차세대 게임의 모습을 보여줬다. 캐릭터 질감이나 배경의 파괴, 그림자 디테일 모두 기존 콘솔 게임에서 보기 힘들었던 수준이었다. 엑스박스 360은 게임 개발 측면에서도 여러 강점을 보여주며 초창기 플레이스테이션 3보다 경쟁 우위를 점했다.

이 시기쯤 PC 게임 시장에도 전설적인 작품이 등장했다. 2007년 등장한 '크라이시스'가 그 주인공이다. '파 크라이 1'을 개발한 크라이엔진의 후속 버전인 크라이엔진 2로 제작된 '크라이시스'는 '크라이실사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엄청난 비주얼을 자랑했다. “니가 가진 PC, 크라이시스 돌릴 수 있어?”라는 밈을 만든 전설적인 게임이다.
'크라이시스'는 1인칭 슈터 게임으로, 포토리얼리즘 급 환경 표현이 강점으로 꼽힌다. 밀림, 해안, 암석, 빛 번짐 등 배경이 현실과 닮았고, 수풀 하나하나가 고유하게 흔들리며 나뭇잎도 충돌 시 반응했을 정도였다. 여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태양 각도, 색온도, 그림자 길이가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건물, 나무, 차량 등 대부분 오브젝트가 파괴 가능한 등 기존 게임을 한 단계 뛰어넘은 어마어마한 비주얼을 자랑했다.

후속작인 '크라이시스 3'는 지금 봐도 엄청난 비주얼을 보여주며, 현대 게임이 추구하는 주요 기술들이 모두 담겨 있다. 정말 지금 봐도 놀랍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도 '크라이시스' 시리즈가 전해준 비주얼 쇼크는 가히 최고라고 꼽고 싶다.
플레이스테이션 4 이후부터는 많은 게임이 멀티 플랫폼으로 출시됐고, 언리얼 엔진 등 범용 엔진이 널리 쓰이면서 게임들의 비주얼이 평균적으로 대폭 상승했다. 어지간한 게임이라면 기본적인 비주얼 퀄리티를 자랑했으며, 압도적으로 빼어난 모습을 보여주기는 점점 더 어려운 시대가 됐다.

그런 와중에도 2018년 등장한 '레드 데드 리뎀션 2'는 현세대 그래픽의 결정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빼어난 모습을 자랑한다. 게임은 자체 엔진인 RAGE(Rockstar Advanced Game Engine)를 활용해 개발됐다. 눈 덮인 산맥, 초원, 늪지, 사막, 도시 등 지형과 환경의 다양성이 살아 있고, 자연광, 대기 중 안개, 하늘의 움직임, 기온 변화까지 반영돼 표현된다. 말의 땀이나 사람의 젖은 옷까지도 표현된다. PC 버전의 경우 4K 해상도와 울트라 옵션을 제공해 최근 등장하는 게임들과 견줘도 전혀 부족하지 않은 비주얼을 자랑한다.

2015년 선보인 '위쳐 3: 와일드 헌트'로도 빼어난 비주얼을 자랑한 CDPR은 2020년 선보인 '사이버펑크 2077'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비주얼을 뽐냈다. 특히 2023년 울트라 레이 트레이싱 모드인 패스 트레이싱 적용 이후 그래픽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광원, 그림자, 반사, 빛의 굴절과 색 번짐 등 현실 광학에 가까운 처리를 보여준다. 여기에 초고밀도 도시도 빛에 반응하며, 피부 질감, 안광 반사, 땀, 상처 표현 등이 매우 사실적이다. 현존 최고 사양의 그래픽카드인 지포스 RTX 5090으로도 DLSS4의 도움 없이는 정복이 쉽지 않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