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김영우 기자] 본지 편집부에는 하루에만 수십 건을 넘는 보도자료가 온다. 대부분 새로운 제품, 혹은 서비스 출시 관련 소식이다. 편집부는 이 중에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 몇 개를 추려 기사화한다. 다만, 기업에서 보내준 보도자료 원문에는 전문 용어, 혹은 해당 기업에서만 쓰는 독자적인 용어가 다수 포함되기 마련이다. 이런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본지는 보도자료를 해설하는 기획 기사인 '뉴스줌인'을 준비했다.
출처: 카운터포인트리서치 (2025년 4월 25일)
제목: SK하이닉스, 기술 혁신으로 1분기 실적 기대치 상회

요약: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5년 1분기 기준, SK하이닉스가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SK하이닉스가 거둔 실적 중 HBM은 전체 D램 출하량의 14%에 불과했음에도 매출의 44%, 영업이익의 54%를 창출하며 높은 수익성을 입증했다. 1분기 HBM 출하량은 연간 출하 예상치의 20% 정도라 향후에도 실적 개선 여지가 크다.
해설: SK하이닉스는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이었으나, 그 위상은 삼성전자에 미치지 못하는 ‘만년 2위’의 이미지가 강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D램, 낸드 등) 외에 비메모리 반도체(CPU, GPU 등) 부문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는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서며 이러한 흐름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HBM(High Bandwidth Memory)이 있었다. HBM은 고성능 D램의 일종으로 2013년경에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적층해 용량을 확보하는 한편, 그 사이를 관통하는 전극을 설치하는 방법으로 처리속도를 높이는 구조를 갖췄다.
HBM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D램을 훨씬 능가하는 대역폭(데이터가 지나가는 통로)이다. HBM은 2013년에 등장한 첫 버전부터 1024 비트(bit) 규격의 버스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경쟁 규격인 GDDR6 메모리(384 비트) 대비 훨씬 우월한 사양이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HBM이 처음부터 잘 나갔던 것은 아니다. 이론적으로 훌륭한 성능을 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주변 환경이 여의치 않았다. HBM이 처음 탑재된 제품은 2015년에 AMD에서 출시한 ‘라데온 R9 퓨리 X(AMD Radeon R9 Fury X)’ 그래픽카드였는데, 시장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특히 그래픽카드의 주요 소비자층인 게이머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수치적으로는 높은 성능을 발휘했지만, 실제 게임 플레이 중에 느낄 수 있는 체감 성능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HBM은 일반 메모리 대비 한층 섬세한 제조공정을 요구하다 보니 생산 수율이 높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고용량을 확보하기 힘들었고, 당시 라데온 R9 퓨리 X는 겨우 4GB 용량의 HBM을 탑재하고 있었다. 아무리 대역폭이 높은 메모리라 해도, 용량이 적으면 게임에서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기 힘들다. 그러면서 제품 가격까지 높고, 공급 물량도 부족해서 라데온 R9 퓨리 X는 기대 이하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HBM은 이론적으로는 훌륭하지만, 가격경쟁력이나 생산성까지 고려해보면 시장성이 떨어지는 제품 취급을 받았다. 삼성전자 역시 HBM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2019년을 즈음해 사실상 철수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인공지능(이하 AI) 기반의 제품 및 서비스가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HBM은 뒤늦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차세대 데이터센터를 위한 AI 가속기용 메모리로서 HBM은 ‘찰떡궁합’이었다. 특히 2022년에 엔비디아가 출시한 ‘H100’에 SK하이닉스의 HBM3가 탑재된 사건은 확실한 분기점이었다. 삼성전자는 HBM 사업을 재개했지만 기술격차는 이미 벌어진 상태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SK하이닉스는 2025년 1분기에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처음으로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점유율 이상으로 주목할 점은 수익성이다. HBM은 SK하이닉스 전체 D램 출하량의 14%에 불과하지만 매출에서는 44%, 영업이익에서는 54%에 달하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HBM 부문에서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그리고 AI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앞으로도 꾸준히 유지된다면 SK하이닉스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한때 ‘빛 좋은 개살구’ 취급을 받던 HBM이 이 정도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IT동아 김영우 기자 (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