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전기차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테슬라 사이버트럭이나 포드 F-150 라이트닝처럼 ‘덩치 큰’ 전기 픽업트럭이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두 개의 스타트업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Slate Auto와 Telo Trucks, 이름부터 생소한 이 신생 기업들이 제시한 픽업트럭은 작고, 실용적이며, 저렴하다. 그 자체로 기존 트럭 시장의 고정관념을 부수려는 시도다.
하지만 두 차량은 접근 방식부터 사뭇 다르다. Slate는 말 그대로 ‘기본 중의 기본’을 표방하며, 단순함과 접근성을 앞세운다. 반면 Telo는 도시형 라이프스타일을 정조준하며 콤팩트함과 공간 활용, 그리고 뛰어난 성능을 강조한다. 두 모델의 특징을 비교 분석하고, 전기차 스타트업이 직면한 현실적인 도전까지 짚어본다.

Slate Auto는 2022년 설립돼 2024년 4월 첫 차량을 공개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창업자들은 테슬라, 할리데이비슨, 크라이슬러 등 유수 제조사 출신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Slate의 목표는 명확하다. “미국 시장에서 사라진, 저렴하고 단순한 차량을 다시 가져오자”는 것이다. 고도화된 소프트웨어, 대형 디스플레이, 화려한 기능은 모두 배제됐다. 심지어 기본 모델에는 스피커조차 없다.

반면, Telo Trucks는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11명의 소규모 엔지니어 팀이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2023년 말 MT1이라는 이름의 전기 픽업 콘셉트를 공개했으며, 대도시나 근교에 거주하는 이들을 위한 ‘컴팩트하지만 다재다능한’ 트럭을 목표로 한다. 흥미로운 점은 두 회사 모두 탄탄한 투자 기반을 갖췄다는 점이다. Slate는 제프 베이조스를 포함한 투자자로부터 최소 1억 1100만 달러를 유치했으며, Telo는 테슬라 공동창업자 마크 타퍼닝의 스페로 벤처스가 주요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디자인 측면에서 두 차량은 극과 극이다. Slate는 얼핏 보면 2005년식 중고차처럼 보일 정도로 전통적인 픽업트럭의 실루엣을 고수한다. 정통 박스형 차체에 투박한 그레이 컬러, 전통적인 라이트 배치까지, ‘디지털을 최소화한 아날로그 픽업’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반면, Telo MT1은 미래 지향적이다. 전기차 플랫폼의 유연성을 적극 활용해, 짧은 노즈와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했다. 외관에서는 리비안과 볼보의 영향이 느껴지고, 실내는 세련된 텍스처와 적당한 사이즈의 터치스크린이 조화를 이룬다.
차체 크기에서도 차이가 크다. Slate는 길이 174.6인치(약 4.4m)로, 포드 매버릭보다도 약 60cm 짧다. 하지만 Telo는 길이 152인치(약 3.8m)로, 미니 쿠퍼와 맞먹는 소형차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elo는 기막히게 5인승 구조를 구현해냈고, Slate는 철저히 2인승만을 고려한 설계다.

Slate는 기본형 차량을 무척 단순하게 설정해 놓았다. 공조장치, 사운드 시스템, 심지어 전동 윈도우도 없다. 그 대신, 사용자가 선택할 수 있는 ‘애프터마켓 키트’를 풍부하게 준비했다. SUV 키트를 붙이면 두 번째 열 좌석이 생기고 루프가 추가되며, 원하는 경우 고급 실내 마감재나 스피커, 외장 컬러 랩핑까지 선택할 수 있다. 초기 생산 단가는 낮추고, 수익은 옵션과 액세서리로 확보하는 전략이다.

Telo는 더 고급스럽고 기능적인 방향을 추구한다. 접이식 미드게이트는 길이가 긴 짐을 실을 수 있게 해주며, 뒷좌석 뒤에는 리비안의 ‘기어 터널’을 연상시키는 횡방향 수납 공간이 존재한다. 선택사양으로는 적재함 내부 좌석과 지붕도 제공되며, 도시형 다목적 차량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 중 하나는 가격이다. Slate는 연방 보조금을 감안하면 약 2만 달러 이하의 실구매가를 목표로 한다. 이는 MSRP 기준 약 2만 7,000달러 수준이다. 이 가격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EV인 닛산 리프보다도 저렴할 수 있다.
Telo는 기본가 41,520달러에서 시작한다. 보조금 적용 시 약 3만 4,000달러지만, Slate에 비하면 1.5배 이상 비싸다. 하지만 기능과 품질을 고려하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평가도 있다.
EV로서 가장 중요한 스펙을 보면, 두 차량의 성격 차이가 더욱 뚜렷해진다.

Slate는 일상용으로 충분한 주행거리를 제공하지만, Telo는 장거리 주행도 가능한 범위를 확보했다. 충전 속도 역시 Slate보다 Telo가 두 배 이상 빠르다. 이는 장거리 여행이나 상업용으로 활용 시 큰 차이를 만든다.
성능에서도 큰 격차가 있다.

Slate는 기본적인 운송에 초점을 맞췄다면, Telo는 전기 픽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고성능까지 제공한다.

두 회사 모두 2026년을 양산 목표로 하고 있다. Telo는 외주 생산 방식을 택했고, Slate는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오래된 프린터 공장을 인수해 자체 생산을 계획 중이다. 이들은 생산 설비, 공급망, 인증 절차 등 ‘양산의 벽’을 넘는 데 직면해 있다. 특히 차량 안전 인증과 충돌 테스트, 연방 규제 통과에는 시간과 자금이 소요되며, 스타트업 입장에선 큰 리스크다.
또한, EV 시장 자체도 변동성이 크다. 배터리 원자재 가격, IRA 법안 요건, 충전 인프라 확장 속도 등 외부 요인에 따라 출시 시점의 경쟁력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Slate는 진짜 ‘미국의 첫차’가 될 수 있다. 단순한 디자인, 저렴한 가격, 맞춤형 확장성은 기본 차량이란 개념을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너무 과감하게 ‘기능을 생략’한 것이 사용자에게 어떻게 다가올지는 미지수다.
Telo는 ‘픽업트럭의 아이폰’을 꿈꾼다. 작지만 강하고, 똑똑하며, 디자인까지 세련됐다. 도심형 전기차를 원하는 사용자라면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다만, 프리미엄 가격대는 접근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전기차 스타트업의 성패는 결국 ‘제조’에 있다. 좋은 아이디어, 멋진 디자인은 출발일 뿐이다. 시장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얼마나 많은 차량을,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Slate와 Telo가 그 벽을 넘어 진짜 픽업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그 결과는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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