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보다 더 어려운 도전이 있다. 바로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 Software-Defined Vehicle)'이다.
자동차 업계는 이제 하드웨어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기업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기계적 정밀성과 품질, 브랜드 헤리티지로 경쟁해왔지만, 이제 소비자들은 스마트폰 수준의 반응성과 사용자 경험을 요구한다. 버튼 하나에도 직관성이 있어야 하고, 기능은 끊임없이 업데이트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2025년에도 대부분의 자동차는 여전히 소프트웨어적으로 느리고 불편한가?

최근 포드는 차세대 전기 아키텍처 개발 프로젝트였던 FNV4를 기존의 FNV3와 통합한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FNV4가 당초 계획대로 진척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FNV4는 EV와 내연기관차 모두에 적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중심 플랫폼으로 설계됐으나, 핵심 차량(3열 전기 SUV 등)의 개발이 중단되면서 플랫폼 자체도 정비를 받게 된 것이다. 포드는 일부 기능만 FNV3로 가져가면서 '점진적 업그레이드' 방식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포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너럴 모터스(GM), 폭스바겐, 볼보, 현대차그룹 등 거의 모든 완성차 기업들이 SDV 전환 과정에서 크고 작은 좌절을 겪고 있다.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은 단순히 무선 업데이트(OTA)를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차량 내 각 기능을 제어하는 전자 제어 장치(ECU)를 줄이고, 하나의 중앙 컴퓨터에서 통합 제어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이 방식은 전장 부품 수를 줄이고, 배선 구조를 간소화하며, 무엇보다 새로운 기능을 빠르게 추가하거나 수정할 수 있게 한다.
테슬라는 이 모델을 가장 먼저 구현했다. 모델S부터 차량의 다수 기능을 중앙 컴퓨터에서 관리했고, ABS 세팅조차 OTA로 변경할 수 있었다. 2018년 컨슈머리포트가 모델3의 제동 성능을 지적하자, 테슬라는 소프트웨어 수정으로 며칠 만에 문제를 해결했다. 이는 기존 완성차 업체들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유연성은 양날의 검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기능이 불완전한 상태로 출시될 수 있고, 소비자에게는 "나중에 고쳐줄게"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SDV는 기술보다 조직의 문제다.
기존 완성차 기업들은 안전, 규제, 부품사와의 관계 등으로 인해 소프트웨어를 보수적으로 다뤄왔다. 한 번 출시된 차량은 10년 이상 유지되어야 하고, 부품 하나가 수십 개 모델에 공유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매주, 매달 변화한다. 이런 개발 철학의 차이를 조율하는 것이 SDV 전환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GM의 'VIP(Vehicle Intelligence Platform)', 볼보의 'SPA2', 폭스바겐의 '카리아드(Cariad)' 모두 비슷한 문제에 봉착했다. 특히 폭스바겐그룹은 카리아드의 실패로 인해 소프트웨어 개발을 외부 업체(Rivian, Mobileye, 중국 파트너)로 넘기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는 독자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약점이 된다.
BMW, 메르세데스는 차세대 SDV 플랫폼을 통해 본격 진입을 시도하고 있고, GM은 CarPlay 배제를 감수하면서까지 독자 플랫폼을 밀어붙이는 중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SDV 전략 전환을 선언했지만, 현재 판매 중인 차량의 디지털 경험은 아직 테슬라나 GM에 비해 1~2세대 뒤처져 있다. OTA 기능은 제한적이고, 차량 내 UI는 스마트폰과 같은 반응성을 제공하지 못한다.
토요타는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을 미국에 세우고 내재화를 추진 중이며, 혼다는 0시리즈 EV부터 AI 기반 어시스턴트와 SDV 플랫폼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 상용 단계에서의 결과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테슬라, 리비안, 루시드, 중국 NIO나 샤오펑 등은 처음부터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설계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유리하다. 하드웨어 중심의 과거에서 벗어나야 하는 전통 브랜드들과는 출발선이 다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소비자들이 테슬라, 리비안, 심지어 샤오미가 만든 전기차를 타며 "업데이트로 좋아지는 자동차"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다. SDV는 차량의 유지보수 비용을 낮추고, 새로운 수익 모델(구독 기반 기능, 데이터 활용 등)을 가능케 한다. 브랜드 입장에서도 고객과의 장기적 연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제 남은 것은 '100년 기업이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BMW, GM, 현대차그룹 모두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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