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를 발표하면서 '게임의 질병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 ICD-11 개정안은 현재 국내에 바로 적용되지 않고 유예 기간을 거치는 중이지만, 빠르면 오는 2026년에 이를 반영한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고 있다. 만약 2026년에 정부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를 공식화하면, 게임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 질병으로 정의되게 된다.
백주선 법무법인 대율 대표변호사는 민주당 게임특위 간담회에서 "만약 그렇게 되면 의료 보건 체계, 교육 및 가정환경, 법 제도적 측면 등에서도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진단했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게임 질병화에 따른 '낙인효과'로 불이익 예고
문제는 국내 환경이다. 국내는 정서상 '정신병' 이력에 대해서 굉장히 각박한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정신 질환을 뇌의 기질적인 변화로 판단하여 치료되는 형태가 아니라, 치료 불가능한 영역으로 분류하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비단 정서상의 이슈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 자체가 정신 질환을 겪었다는 이력이 있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섣불리 '정신 치료'를 받으러 갈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에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직업군은 나이 어린 학생들이다. 만약 학생들이 게임으로 인해 정신질환자로 등록되면, 취업이나 해외 비자 발급 때에도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공공기관이나 군대, 일부 대기업에서는 건강검진 시 정신질환 이력을 기재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만약 아이가 정신질환 치료 이력이나 F코드 진단 이력이 있다면 취업에서 서류 탈락 등으로 불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만약 입사를 했더라도 사후 해고 사유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학생 비자 발급 과정에서도 불이익이 예상된다. 현재 일부 국가의 비자 심사에서는, 중대한 정신질환에 대해서 '공공 의료 부담 요인'으로 판단해 비자 발급을 거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만약 게임이용장애가 정식 정신질환(F코드)으로 등록되면 중증으로 진단될 경우 이 범주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특정 학과 진학도 제한될 수 있다. 의료, 항공, 법학 계열 학과의 경우, 정신건강 이력을 사전에 확인하거나 면접에서 관련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일례로 간호학이나 항공 조종, 공공안전 계열 등에서는 '충동조절, 약물 치료 여부' 등을 검토하는 경우가 있다.
비단 학생이 아니라도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는 군대나 보험, 양육권 분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민간보험 가입이나 보험금 청구 시에도 불이익이 예상된다. 보험료 인상, 가입 거절, 면책 사유 확대 등의 가능성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
또한 자녀 양육권 분쟁이나 입양, 교직 임용 등 특정 분야에서도 불리한 평가 요소가 될 수 있다. 현재에도 이혼 시 양육권 분쟁에서 '정신질환 병력'은 불리한 사유로 작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외에 병역 관련으로도 징병검사 시 정신질환 진단 이력을 통해 병역 등급에 영향이 미칠 수 있으며, 형사 사건 시에도 피의자나 피고인이 되는 경우, 정신건강 진단 이력이 재범 위험 판단, 보호처분, 소년법 적용 여부 등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진단 기록이 형사사법적 판단 과정에서 부정적 요소로 해석될 우려가 많다는 뜻이다.
게임 질병화, 일부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 '압도적' 높아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에 대한 긍정적 기대 효과도 없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게임 이용으로 일상 기능에 장애를 겪는 이용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으며, 조기 개입과 치료를 통해 중증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 예방 효과도 있을 수 있다.
또 공공정책 차원의 예방 교육 확대로 디지털 웰빙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향상 등 건강한 게임 이용 문화를 형성할 계기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그러한 작은 장점에 비해, 게임 질병화의 부정적 효과는 압도적으로 커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가장 우려가 높은 것은 의료계의 과잉 진단 가능성이다. 질병코드가 등재되면 의료기관에서는 게임 질병으로 건강보험 청구가 가능해지는데, 객관적인 기준 없이 게임이용장애 진단을 남용할 개연성이 충분히 높은 상황이다.
특히 경미한 과몰입 수준조차도 '장애'로 지정하는 현상이 만연할 경우 이는 환자 수 확대를 통한 의료기관의 수익 창출 수단으로 오용될 우려가 있다. 결과적으로 정상 범주의 게임 사용자 조차도 정신과 치료나 약물 처방 대상이 될 가능성이 생기며, 이는 의료 자원 낭비와 건강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국내의 정신의학과 모임에서는 이러한 게임의 질병화를 '숙원사업'이라고 표현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전례가 있다.

나아가 다양한 게임직업군에 대한 사회적 낙인 또한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현재 게임은 아시안 게임에 정식 종목으로 도입되어 국가 위상과 관련된 스포츠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질병화 도입 이후 프로게이머나 게임 스트리머 등도 정신질환자로 낙인이 찍힐 수 있다.
해외에서는 국가 최고 인사가 게임 캐릭터 분장을 하고 세계를 맞이하지만, 한국에서는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을 찍는 것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표현의 자유와 자기 결정권의 침해도 큰 우려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에서 성인 이용자는 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데, 게임이 질병화될 경우 개인의 선택이 '비정상'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에 의한 사적 영역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게임업계에서는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되면 담배나 주류처럼 '게임세'나 '게임부담금'이 신설될 것을 경계하고 있다. 과거 '인터넷 게임중독 치유 지원에 대한 법률안'에서 매출액의 1%를 부담금으로 부과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또 게임이 질병화가 되면 현재의 자율 규제에서 정부 규제로 회귀하고, 중독성 경고 문구의 삽입, 게임 등급분류 심사 기준 강화 등 새로운 형태의 규제가 대거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업계의 고민과 불안이 깊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백주선 법무법인 대율 대표변호사는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은 제한적 효용에 비해 개인적-사회적-산업적-법적 차원에서 과도한 권익 침해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라며 "긍정적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은 보이지 않으므로 이를 도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