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게임 과몰입(게임 이용 장애)을 질병으로 등재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을 반영한 KCD-10의 초안을 2025년 연말에 공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게임 과몰입의 질병 등재 도입을 두고 각계의 찬반논란이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정신의학계는 이를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있으며, 문화부와 게임업계 중심으로 이를 격렬하게 반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정신의학계는 “게임 자체가 문제라는 입장은 아니다”라며, 지난 2013년 게임을 마약과 동일시 여겼던 4대 중독법 때보다는 뉘앙스를 완화하긴 했지만, “게임에 지나치게 과몰입하면서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이들에게 정책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KCD-10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통계청에서도 “게임 질병 코드 도입이 확정은 아니다. 국내 여건과 상황을 감안해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문화부와 게임업계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와 정신의학계가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난항이 거듭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정신의학계가 이처럼 게임 질병 코드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근거는 청소년은 스스로 통제할 능력이 부족하니, 게임에 과몰입될 위험이 높아 의료계의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게임 과몰입 관련 연구 논문들을 살펴보면 2015년 한국중독범죄학보에 발표된 ‘청소년 인터넷 게임 과몰입 실태와 개선방안’ 등 게임 과몰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주장은 실제 교육 현장의 분위기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많은 초등학교에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의 저몰입, 다시 말해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행동을 보이는 주의력 결핍(ADHD)이기 때문이다.
많은 초등학생들이 하나의 일에 장시간 집중하지 못하다보니, 학업 성취도가 많이 떨어지고 있으며, 조별 과제나 단체활동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 사회생활 부적응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는 분석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ADHD 어린이 환자가 3만7,609명, 청소년 환자가 5만3,652명으로 전년 대비 각각 30%, 29% 증가했다. 전체 ADHD 환자의 65%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 2016년에 한국실과교육학회지를 통해 발표된 “초등학생의 컴퓨터·스마트폰 게임중독이 ADHD성향에 미치는 영향 : 수면 및 식사문제의 다중매개효과 분석” 같은 논문처럼, 게임이 ADHD 증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도 많다.
하지만, 앱 분석 서비스인 ‘와이즈앱’이 발표한 세대별 한국인이 가장 오래 사용하는 앱 순위에 따르면 10대가 가장 오래 사용하는 앱은 유튜브가 압도적인 1위였으며, 게임은 6위에 머물렀다. 게임 과몰입이 청소년에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주장과 달리, 정작 10대들은 빠르게 콘텐츠가 바뀌는 숏폼 영상을 제공하는 유튜브, 틱톡 등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고, 게임에 과몰입하는 비율이 높지 않은 것이다. 미국 FDA가 ADHD 아동을 위한 치료제로, 게임형 디지털 치료제인 '엔데버Rx'(‘EndeavorRX’)를 공식 승인한 것만 봐도, 게임을 ADHD 증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무리수에 가깝다.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게임이용자 행동유형을 5년간 추적한 종단연구인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5차년도)’ 보고서에서도 게임 이용 행동이 지속적으로 문제적 성향을 보이는 비율은 매우 낮게 나타났으며, 아동·청소년 및 성인의 게임이용 시간, 이용 게임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제로 서울 모 초등학교 학부모 몇 명과 인터뷰를 해봤을 때도, 게임보다는 유튜브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게임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나, 게임보다 아이돌 포토카드 수집에 더 열중하는 등 성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조차도 게임을 장시간 플레이하는 경우는 드물고, 유튜브 숏폼 영상으로 넘어가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다고 한다. 또한, 영상을 통해 비속어를 배우는 경우도 많아서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긴 것 자체가 걱정스러운 것이지, 게임 하나만 찍어서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이들이 플레이하는 게임도, 하나에 푹 빠지기 보다는, 같이 노는 친구들에 따라 빠르게 바뀐다는 입장을 보였다. 몇 년 전 포켓몬빵이 유행할 때만 하더라도 포켓몬 게임에 푹 빠지는 모습을 보였으나, 요즘에는 포켓몬빵 유행이 끝나면서, 포켓몬 게임에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부모 세대들이 구슬치기, 딱지치기로 친구를 사귀었던 것처럼, 요즘 아이들에게는 게임이 친구들과 소통하는 주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에 대한민국 21대 대통령으로 뽑힌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게임을 질병으로 봐서는 안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2025년 말로 예고된 KCD-10 초안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모습으로 발표될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