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망, 스파, 뉘르부르크링, 세 개의 레이스가 말해주는 내구 레이스의 세계
자동차 레이스라고 하면 보통 빠르게 달리는 경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모터스포츠에는 ‘내구 레이스’라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단시간의 속도를 겨루는 경기가 아니라, 장시간 동안 얼마나 안정적으로, 또 전략적으로 차를 운용할 수 있는지를 겨루는 레이스다. 그중에서도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르망, 스파, 뉘르부르크링 세 대회는 전 세계 내구 레이스의 중심축이라 불린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르망 24시는 그중 가장 오래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한다. 최고 시속 350km를 넘나드는 고속 구간과, 밤낮을 넘나드는 긴 주행 시간, 그리고 다양한 클래스의 차량이 한 트랙에서 동시에 달리는 구조가 특징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최고 성능과 내구성을 동시에 증명해야 하는 무대다.

벨기에 스파 24시는 트랙의 변화무쌍한 지형과 날씨로 유명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고, 비가 오다가도 금세 맑아지는 날씨 속에서 드라이버는 순식간에 전략을 바꿔야 한다. GT3 차량 중심의 레이스로, 다양한 드라이버 조합과 브랜드 간 경쟁이 펼쳐진다.

독일의 뉘르부르크링 24시는 그 어떤 대회보다도 실제 도로와 비슷한 조건에서 벌어진다. 총길이 약 25km에 이르는 뉘르부르크링 북코스는 73개의 코너와 고저차, 다양한 노면 상태를 가지고 있다. 이런 환경은 단순히 빠른 차보다 ‘오랫동안 문제없이 달릴 수 있는 차’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뉘르부르크링은 레이스이자 ‘기술 시험장’이라고 불린다.

2025년 대회는 6월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열린다. 참가 차량만 141대로,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수다. 이 대회는 클래스(등급)가 다양해서 경주차량마다 속도와 성격이 다르다. 때문에 드라이버들은 자신보다 느린 차를 빠르고 안전하게 추월해야 하고, 빠른 차는 뒤에서 달려오는 속도차를 감안해 방어 운전을 해야 한다. 이른바 ‘흐름 관리’가 중요한 경기다.
이번 대회의 중심은 단연 GT3 클래스다. 8개 제조사가 최상위 GT3 차량을 앞세워 출전하며, 브랜드 간 자존심 대결이 펼쳐진다.
포르쉐 911 GT3 R은 총 7대가 출전해 예선 상위권을 휩쓸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메르세데스-AMG GT3는 지난해 아쉬움을 딛고 재도전을 준비했고, 람보르기니, BMW, 아우디, 애스턴 마틴, 페라리 같은 전통의 강자들도 한 자리에 모였다. 여기에 포드 Mustang GT3가 올해 처음 이 대회에 출전해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내고 있다.

포드의 GT3 머스탱은 전통적인 유럽 GT 경기에선 보기 어려웠던 모델이다. 올해는 HRT 팀 소속으로 총 3대가 출전하고 있으며, 참가 드라이버 명단에는 눈에 익은 이름도 있다. 전 F1 챔피언 미하엘 슈마허의 조카, 데이비드 슈마허가 포드 머스탱을 타고 이 대회에 도전장을 던졌다.
포드 Mustang GT3는 강력한 V8 엔진을 바탕으로 최근 데뷔한 모델이다. 아직 이 트랙에서의 검증은 부족하지만, 단단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GT3 강자들과의 경쟁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번 대회의 또 다른 관심사는 토요타의 복귀다. 토요타는 2019년 이후 약 6년 만에 이 대회에 다시 참가했다. 참가 차량은 하이브리드가 아닌 ‘GR 야리스’를 기반으로 한 레이스카다. 엔진과 미션은 신형 플랫폼을 테스트하는 목적으로 설계됐으며, 차량은 SP2T 클래스에 출전한다.
드라이버 라인업에는 토요타 전 회장 아들이자 Gazoo Racing의 상징적인 인물인 다이스케 토요다, 그리고 일본 슈퍼GT 출신의 베테랑 드라이버들이 포함됐다. 토요타는 이번 대회를 통해 단순히 성적을 내기보다, 실제 주행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데이터는 향후 양산차 개발이나 고성능 GR 모델에 적용될 예정이다.

르망이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무대라면, 뉘르부르크링은 ‘현실성 있는 시험장’에 가깝다. 급격한 날씨 변화, 다양한 차량들이 뒤섞이는 환경, 반복되는 코너와 고속 주행 속에서 차량은 물론 드라이버와 팀 전체의 역량이 종합적으로 평가받는다.
2025년 대회는 기록상으로도, 참가 브랜드의 다양성으로도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단순한 우승이 아니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이 트랙을 이겨내는가를 보는 것이 진짜 관전 포인트다. 그리고 그것이 내구 레이스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이기도 하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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