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6월, 독일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서킷으로 손꼽히는 이곳에서 제52회 'ADAC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가 펼쳐졌다.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되는 이 레이스는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니다. 기후, 차량의 내구성, 팀워크, 전략, 그리고 드라이버의 집중력까지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모터스포츠의 극한 실험장이자, 브랜드 정체성이 살아 숨 쉬는 무대다.

올해 레이스는 특히 의미가 깊었다. 약 120여 대의 차량이 출전했으며, 전기화와 지속 가능성이라는 화두 속에서도 여전히 내연기관 중심의 '진짜 레이스'가 무엇인지 보여주겠다는 전통과 도전이 공존하는 무대였다. 경기 도중에는 강풍과 비, 급변하는 날씨가 차량과 드라이버를 끊임없이 시험했고, 클래스별 경쟁은 이전보다 더욱 치열하게 전개됐다.

종합 우승은 GT3 클래스에서 아우디 R8 LMS Evo II를 앞세운 팀 피닉스 레이싱이 차지했으며, 토요타 가주 루키 레이싱(이하 TGRR)은 'GR 야리스'와 'GR 수프라 GT4 Evo2'로 SP3T 및 SP8T 클래스에 출전해 전 구간 완주에 성공하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특히 이번 대회는 TGRR의 6년 만의 복귀전이자,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 '모리조'라는 닉네임으로 직접 출전한 상징적인 무대였다.

TGRR은 올해 뉘르24에서 다시 한번 ‘더 좋은 차 만들기’라는 철학을 트랙 위에서 실현하기 위해 돌아왔다. TGRR은 토요타 가주 레이싱의 기술력과 루키 레이싱의 실전 경험이 결합된 형태로, 모리조를 필두로 젊은 드라이버들이 함께 호흡을 맞췄다.
레이스 초반은 마른 노면으로 시작됐으나, 이내 뉘르 특유의 기후 변화가 경기 양상을 흔들었다. 오후 늦게부터 시작된 간헐적 비로 인해 미쉐린, 던롭, 브리지스톤 등 다양한 타이어 제조사들의 전략이 엇갈렸고, 이는 SP 클래스 차량들의 랩타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GR 야리스는 경량화된 차체와 고강성 섀시를 바탕으로 민첩한 움직임을 보이며 초반부터 클래스 선두권을 유지했다. GR 수프라 GT4 Evo2는 고속구간에서의 안정적인 주행과 브레이킹 성능으로 기술적인 우위를 입증했다. 초반 드라이버였던 모리조는 차량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며 교체까지 무리 없는 주행을 이어갔다. 모리조는 인터뷰에서 "차와 대화하며 달린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금 느꼈다"고 말했다.

레이스의 진짜 시험은 밤이 찾아오면서 시작됐다. 짙은 안개와 간헐적인 폭우는 팀 전략에 혼선을 야기했고, 사고와 탈락 차량도 속출했다. 그러나 TGRR의 두 차량은 정교한 피트 인·아웃과 기민한 상황 판단으로 혼란 속에서도 안정적인 포지션을 유지했다.
GR 야리스는 야간 드라이빙에서도 큰 흔들림 없이 랩을 이어갔으며, 모리조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시우라 히로아키, 오시마 카즈야 등의 드라이버들은 저마다의 스타일로 기민하게 대응했다. GR 수프라 GT4 역시 야간 고속 섹션에서 오히려 성능을 발휘하며 오버테이크에 성공하는 장면이 다수 포착됐다.

특히 GR 야리스의 경우, 야간 중반 한 차례 드라이브샤프트 문제로 긴급 피트를 실시했으나, TGRR의 빠른 대응으로 손실 시간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신속한 대처는 현장 기자들과 팬들 사이에서 박수를 받았다.

새벽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노르트슐라이페를 비추기 시작하면서 레이스는 마지막 국면에 접어들었다. 피로가 극에 달하는 시간대지만, TGRR은 오히려 주행 리듬을 회복하며 마무리 구간에 접어들었다.

GR 수프라는 클래스 내에서 안정적인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하며 오버히트나 타이어 마모 문제 없이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GR 야리스는 마지막 스틴트에서 다시 한번 모리조가 스티어링을 잡으며 의미 있는 피날레를 장식했다. 모리조는 마지막 바퀴를 마치고 차에서 내리며, “이 한 바퀴가 가장 좋았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 장면은 현장을 찾은 많은 팬들에게 인상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두 차량 모두 클래스 완주를 기록하며, 비록 종합 순위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브랜드 철학과 레이스 본질에 대한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장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레이스 자체뿐만 아니라, 유럽 모터스포츠 팬들이 보여주는 문화적 태도였다. 가족 단위의 캠핑카 팬들, 자정에도 응원을 멈추지 않는 수천 명의 열성 팬, 자발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며 함께 즐기는 레이스 문화는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축제’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 가운데 일본 제조사로서 TGRR은 독일 본토에서 이질적인 존재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펙토리 레이싱팀 이상의 철학’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으며 팬층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특히 모리조의 직접 출전은 관람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젊은 팬들 사이에선 TGRR의 굿즈를 착용한 관람객도 적지 않았다.

또한, 루키 레이싱 소속 드라이버들의 성장과정과 피트워크의 진지함은 유럽 팬들에게 ‘진정성’ 있는 레이싱 팀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토요타 가주 루키 레이싱은 '완주'라는 뛰어난 성과 뿐만 아니라 ‘왜 레이스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 팀이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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