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의 베스트셀링 SUV인 ‘크레타’가 전기차 버전으로 등장했지만, 인도 시장에서는 예상 밖의 부진을 겪고 있다. ‘국민 SUV’의 위상을 전기차 시대까지 이어가려 했던 현대차의 전략은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동일한 이름을 달았지만 ICE(내연기관) 모델과 EV 모델은 전시장의 풍경부터, 판매 수치까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2025년 상반기 동안 현대차는 크레타 EV를 4,000여 대 판매한 반면, 내연기관 모델은 약 10만 대를 기록했다. 1월 단일 월에는 ICE 모델이 18,500대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데 반해, EV 모델은 6월 기준 500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전체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3.9%로, 현대차가 설정했던 15% 목표에는 한참 못 미친 수치다.
“가격은 높은데 감성은 없다”… 소비자가 느끼는 포지셔닝 혼란
크레타 EV는 한화 약 3,000~4,100만 원 수준의 가격대에 책정되어 있다. 이는 인도 전기차 주력 모델인 타타 넥슨 EV(약 12.5만 루피), MG 윈저 EV(13.5~15.5만 루피) 등보다 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실제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사양은, 그 가격만큼의 설득력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전기차로 만들었을 뿐”… 전용 플랫폼 부재가 낳은 한계
크레타 EV는 내연기관 차량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된 전환형 EV다. 이는 개발 비용 절감에는 유리하지만, 전기차 고유의 강점인 공간 설계의 유연성이나 디자인 차별화를 살리기 어렵다. 전기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층은 점점 더 고도화되고 있으며, 단순한 친환경성보다는 ‘미래지향적 감성’, ‘전기차다운 설계’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 “기존 내연기관 모델에 배터리를 끼워 넣은 느낌”이라는 시장 반응은 브랜드 이미지에도 영향을 준다.
NMC 배터리, 느린 충전, 부족한 차별화… EV 고객의 높은 눈높이
크레타 EV는 니켈·망간·코발트(NMC)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으나, 타타 등 경쟁 브랜드들이 채택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비해 고온 환경에서의 안전성, 수명 측면에서 불리하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LFP 배터리를 기반으로 ‘배터리 평생 보증’을 제공하는 경쟁사들과 비교할 때, 현대차의 보증 정책은 소비자들에게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DC 급속 충전 속도도 최대 50kW에 불과해, 경쟁사들이 70kW~180kW 급속 충전을 지원하는 가운데, 체감 차이가 크다. 전기차 고객이 브랜드 충성도보다 기술적 스펙을 중시하는 트렌드 속에서, 이런 지표들은 분명한 약점으로 작용한다.

현대차의 다음 시험대는 2026년 전용 전기차
현지 딜러들은 “EV 고객은 데이터 시트와 경쟁 차종 비교표를 들고 전시장에 온다”고 말한다. 그만큼 정보에 밝고, 브랜드 이미지보다 기술적 차별화를 더 중요시하는 흐름이 강하다.
현대차가 전기차 시장에서의 진정한 반등을 꾀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전환형 EV에서 벗어나 전용 플랫폼 기반의 모델로 전환이 필수적이다. 2026년 출시 예정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 기반 모델이 그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지금의 크레타 EV는 전환기적 모델이자, 현대차가 EV 전략을 어떻게 진화시켜야 할지를 말해주는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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