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음을 빼앗겼을 컬러가 있다. 바로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British Racing Green)’. 이 짙고 깊은 녹색은 단순한 색상을 넘어, 영국 자동차 문화와 모터스포츠의 전통, 그리고 성능에 대한 집념을 상징하는 전설적 컬러다.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의 기원은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은 당시 자국 내 도로에서 자동차 경주를 금지하고 있었기에, 아일랜드에서 열린 고든 베넷 컵에 출전하며 그 땅을 상징하는 ‘그린’을 선택했다. 푸른 초원의 나라, ‘에메랄드 섬’ 아일랜드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였다. 이 컬러는 곧 영국을 대표하는 레이싱 리버리가 되었고, ‘샴록 그린’이라는 이름을 지나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이라는 명칭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은 수많은 영국 브랜드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로터스는 1960년대 짐 클라크와 함께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에 흰색 스트라이프를 더한 ‘로터스 25’로 월드 챔피언을 차지하며 이 컬러를 전설로 만들었다. 최근 발표된 ‘에미라 클라크 에디션’은 이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모델로, 노란 스트라이프와 우드 기어 노브, 짐 클라크의 서명까지 담아낸 60대 한정의 헌사다.
재규어 역시 이 전통의 중심에 있다. 르망을 석권한 C-타입, E-타입은 모두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으로 칠해졌고, 지금도 재규어의 주요 모델에서 이 컬러는 빠지지 않는 선택지다. 빠르면서도 우아한 브랜드 철학을 시각적으로 대변하는 색이다.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은 럭셔리 브랜드 벤틀리에서도 독자적인 해석을 입었다. ‘벤틀리 보이스’가 르망을 달리던 1920년대의 유산을 계승한 이들은, 지금도 컨티넨탈 GT나 벤테이가에서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4’라는 고급 무광 솔리드 컬러를 제공한다. 특히 맞춤 제작 부서인 뮬리너를 통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최고급 피니시로 표현되고 있다.
MINI는 이 전통을 대중적인 감성으로 풀어낸 대표적 브랜드다. MINI는 전기차를 포함한 거의 모든 라인업에서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계열 컬러를 옵션으로 제공하며, 시대에 맞춰 메탈릭, 무광, 변형 톤 등으로 감각적으로 재해석한다. 소형차와 클래식 컬러의 대비는 MINI만의 독특한 매력을 형성한다.
가장 절제된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을 선보이는 브랜드는 애스턴 마틴이다. 그들은 이 컬러에 ‘애스턴 마틴 레이싱 그린’이라는 이름을 따로 부여할 만큼 자부심을 갖는다. 더 짙고, 깊은 청록빛이 감도는 이 색은, 애스턴 마틴의 고급스러움과 모터스포츠 유산을 동시에 품는다. 포뮬러1 머신은 물론, GT3 머신, 세이프티카 등에서 이 컬러는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으로 기능한다.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은 단지 ‘예쁜 색’이 아니다. 그것은 1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영국 모터스포츠의 역사, 전통, 철학이 담긴 문화적 유산이다. 각 브랜드는 이 전통을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하고 재창조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의 전설은 질주하고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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