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 현장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가득하다. 개발진들이 수없이 많은 코드를 점검하고 수정하더라도, 천재지변처럼 갑작스러운 오류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다만 때로는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발생했던 오류가 게임을 더 풍부하게 해주어 정식으로 게임에 반영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들 수 있다. 개발 당시 개발자 토모히로 니시카도는 외계인의 움직임을 일정한 속도로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의 CPU 성능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적 캐릭터가 많을수록 연산 부하가 커져 게임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반면, 적이 줄어들면서 화면에 출력되는 스프라이트 수가 감소하자 CPU에 여유가 생겼고, 결과적으로 적의 이동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원래라면 수정했어야 할 이 문제를 니시카도는 ‘난도 상승’이라는 구조로 받아들였다. 이용자가 적을 많이 처치할수록 게임이 더 어려워지는 일종의 ‘동적 난이도 조정’ 개념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기술적 한계에서 비롯된 오류가 결과적으로 슈팅 게임의 템포와 긴장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II’에서도 이런 우연이 발생했다. 1991년 아케이드로 출시된 이 게임에서 처음 발견된 ‘캔슬 콤보’는, 이용자가 일반 공격의 모션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특수 기술을 입력할 경우 일반 공격이 ‘끊기고’ 곧바로 특수기가 나가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원래부터 의도된 시스템이 아니라, 입력을 다소 관대하게 처리하려 했던 코드 설계가 부작용을 낳으며 생긴 버그였다. 당시 수석 디자이너였던 아키라 니시타니는 “이용자가 버튼을 너무 빨리 누르면 기술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이걸 보완하려고 여유 있는 입력 타이밍을 넣었는데, 그 덕분에 일반 공격 도중에 특수 기술이 나가게 되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처음에는 우연히 발생한 현상이었지만, 전투에 전략적 깊이를 더한다고 판단한 개발진은 이를 제거하기보다 오히려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캔슬을 이용한 ‘콤보’라는 개념이 격투 게임에서 중요한 전략 요소로 자리잡았고, 이후 다른 대전 격투 게임에서도 널리 사용되며 표준처럼 정착하게 되었다.

예기치 않은 버그가 실제 게임에도 반영된 또 다른 사례는 팀 포트리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게임은 퀘이크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퀘이크 엔진은 초창기 구조상 클라이언트와 서버의 신뢰 모델이 느슨했다. 특히 캐릭터 외형(스킨)이나 애니메이션, 모델 등은 대부분 클라이언트 측에서 로딩되고 적용되었기 때문에, 이용자가 이를 조작하면 서버가 그 내용을 그대로 반영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 악용하면 이용자가 자신의 모델을 적 팀 캐릭터 외형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했기 때문에, 진영을 숨기고 적 팀에 위장 잠입하는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당시엔 명백한 버그 혹은 유사 해킹 행위로 간주되었으나, 이용자들이 창의적으로 이를 활용하고, 게임 내에서 전략적으로도 흥미롭다는 점이 확인되자, 개발팀은 이를 새로운 캐릭터 콘셉트로 정식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스파이(Spy)’ 클래스다. 이 클래스는 적 팀 외형으로 변장하고, 일정 시간 은신하고, 적의 뒤를 잡으면 한 방에 처치할 수 있는 ‘백스탭’ 기술까지 갖췄다. 밸브 개발자인 존 쿡은 “처음엔 단순한 시각 오류였는데, 이를 고치려던 과정에서 ‘오히려 게임에 이런 캐릭터가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슈퍼 마리오 3D 월드’의 더블 체리(Double Cherry)도 처음에는 단순한 오류였다. 획득하면 똑같이 행동하는 분신이 나타나는 이 파워업은 개발자가 레벨 에디터에서 캐릭터 복사 개체를 잘못 배치하면서 마리오가 두 명 등장하게 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놀랍게도 게임은 주인공이 2명 있어도 오류를 일으키지 않았고, 화면에는 똑같이 움직이는 두 명의 마리오가 문제없이 출력됐다. 예상 밖의 결과에 개발팀은 흥미를 느꼈고, 결국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파워업을 만들어보기로 결정하게 된다.
이렇게 탄생한 더블 체리는 이후 복제 캐릭터를 생성해, 복수의 캐릭터가 동시에 움직이며 퍼즐을 해결하거나 특정 장치를 조작하는 기믹으로 발전했다.

마인크래프트의 대표적인 몬스터 중 하나인 ‘크리퍼’ 역시 개발 도중의 우연히 탄생한 캐릭터다. 기다란 몸통을 가진 이 캐릭터는 사실 원래 돼지를 만들려다 좌표가 잘못 입력된 것에서 탄생했다.
게임의 개발자인 노치는 별도의 3D 모델링 툴 없이 텍스트 기반으로 모델을 생성하는 일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X축과 Y축의 값이 바뀌는 오류가 일어났고, 그 결과 길쭉하고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괴상한 생명체가 완성됐다.
노치는 이 생명체의 기괴한 모습이 몬스터에 어울린다 생각해 정식으로 게임에 편입시키기로 결정했고, 이후 친구의 제안에 따라 자폭 기능까지 붙이게 되면서 지금의 크리퍼를 만들어냈다.
이렇듯 단순한 버그에서 출발한 요소들이, 오히려 게임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새로운 재미를 창출하는 핵심 콘텐츠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또 어떤 버그가 나타나 새로운 시스템과 캐릭터로 재탄생하게 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