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율주행, OTA 업데이트, 차량 내 앱과 음성인식, 커넥티드카, 그리고 스마트폰 통합까지—앞으로 자동차는 주행성능보다 디지털 경험이 핵심 가치가 될 것이다. 이는 비단 전기차(EV)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솔린차든 하이브리드든, 제조사가 미래에 생존하려면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룸버그가 최근 보도한 토요타의 디지털 전환 지체 현상은 단순히 사내 개편 이슈를 넘어, 일본 완성차 업계 전체가 처한 전환기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읽힌다.
"디지털 전환 추진실"이 이끄는 변화의 속도는 충분한가?
토요타는 지난 수년간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동시에 운영하는 멀티 패스웨이 전략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중심의 편향을 피하고자 했고, 이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작동해왔다. 그러나 차량 자체의 디지털 전환에 있어서는 더딘 모습이다.
보도에 따르면, 토요타는 ‘디지털 전환 추진실(Digital Transformation Promotion Department)’이라는 별도의 부서를 만들어 디지털 전환을 꾀하고 있지만, 이 조직은 차량 내부 소프트웨어가 아닌 회사 내부의 업무 프로세스와 개발 시스템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조직이 변화의 동력을 상실한 채, 더 큰 조직 안에 흡수되며 실질적인 역할을 상실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내부 익명 인터뷰에선 "형식적 개편"과 "변화를 회피하는 조직 문화"에 대한 실망감도 드러난다.
왜 토요타는 소프트웨어에서 뒤처졌을까?
토요타는 5년 연속 글로벌 판매 1위, 일본 경제의 상징 같은 존재다. 이런 압도적인 실적과 문화적 위계 구조가 '현상 유지(inertia)'를 강화한 측면이 있다.
"왜 회사를 떠나야 하느냐?"라는 질문이 내부에서 자주 들린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는 도전보다 순응, 파괴보다 품질 관리와 안정성을 중시하는 ‘장인적 사고방식’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어떤 엔지니어는 자율주행 기술에 매료되어 토요타에 입사했지만, 몇 년간 전자부품의 품질관리 업무만 했다고 토로한다. 이는 일본식 생산방식(Lean, Kaizen)의 장점이 디지털 전환 시대에는 오히려 발목을 잡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토요타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시간이 없다
이 문제는 토요타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 완성차 업계 전체가 디지털화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위기감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혼다와 닛산은 최근 협업을 선언했고, 마쓰다는 차량 내 운영체제를 미국 기업에 외주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미 중국 OEM들은 텐센트, 화웨이, 샤오미 등과 연계해 자국 시장 맞춤형 디지털 UX를 구현하고 있으며, 테슬라는 10년 전부터 자체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리비안(Rivian) 역시 OTA 기반의 차량 관리 및 사용자 경험 강화에서 기존 OEM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이제 자동차는 이동 수단을 넘어 ‘구독 서비스 플랫폼’으로 진화 중이다. 스마트폰처럼 차량 내 마이크로소프트 팀즈, 스트리밍 앱, 내비게이션 유료화, 실시간 보험 적용 등 수익화가 가능한 수많은 터치포인트가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토요타는 bZ4X처럼 소프트웨어가 들어간 전기차에서도 여전히 경로 계획이 앱 외부에서 처리되어야 하는 등 기초적인 기능조차 완성되지 않은 채 출시되는 경우가 있다.
소프트웨어 전환, "나중에 하면 늦는다"
차량 하드웨어 개발은 수년이 걸린다. 반면 소프트웨어는 주 단위, 심지어 일 단위로 변화한다.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전환의 시기"는 이미 지나가버렸을 때 깨닫게 된다.
물론 토요타 내부에서도 변화의 의지는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토요타는 UX, OTA, 커넥티비티 기술 강화에 몰두하고 있으며, 각 시장별로 파트너사와 협업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일부 차량에 현지 기업이 개발한 OS가 적용돼 있고, 북미에서는 아마존 알렉사 기반 시스템도 실험 중이다.
하지만 글로벌 스케일에서 “하드웨어는 잘 만들지만, 소프트웨어는 미완성”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진다면, 토요타는 그 어떤 파워트레인 전략보다도 치명적인 경쟁력 상실을 겪을 수 있다.

하드웨어 왕국에서 소프트웨어 제국으로 갈 수 있을까?
토요타는 여전히 최고의 품질과 신뢰를 자랑하는 제조기업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대는 그 신뢰를 디지털 경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커넥티비티 생태계 안에서 이어가야 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디지털 전환은 단순한 R&D 부서의 과제가 아닌, 조직 문화 전체의 혁신 과제다. 테슬라, 애플, 바이두, 샤오미, 구글이 자동차 내부의 '화면'을 노리는 지금, 토요타가 그것을 방어하거나 리드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들은 이제 ‘기술자 중심 기업’에서 ‘경험 중심 기업’으로 변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하이브리드를 만들어도, 그 하이브리드를 사람들이 연결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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