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관통하는 마더 로드, 루트 66을 여행했다.

What is the Route 66?
2026년, 미국 대표 도로인 ‘루트 66(Route 66)’이 100주년을 맞이한다. ‘루트 66’은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출발해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까지 무려 3,940km에 달하는 국도다. 일리노이와 미주리, 캔자스, 오클라호마,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까지 총 8개의 주를 관통한다. 1926년 개통 후 미국의 심장을 관통하며 중요한 역할을 해 왔지만, 고속도로가 하나둘 생겨나며 1985년에 이르러 연방 정부 고속도로 체계에서 제외됐다. 고속도로로서의 수명은 다했지만, ‘루트 66’은 그 역사성을 인정받아 시민단체와 지방정부의 도로 복원 작업 지원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2003년, 역사도로라는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100주년을 앞둔 루트 66을 여행하기 위해 미국 일리노이주로 떠났다.

●남겨진 것들
Illinois State Fair Route 66
어쩌면 이번 여행은 시끄러운 모터 소리와 기름 냄새로 가득할지도 모르겠다. 미국에 도착해 ‘일리노이주 박람회장 루트 66(Illinois State Fair Route 66)’에 들렀다. 어둠 속에서 형형색색의 빛을 뿜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가득한 이곳은, 그야말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전시장을 방문했던 날에는 올드카가 가득했다. 족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탔을 법한 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모두 개인 소장품들이었다. 한눈에 반했던 하늘색 자동차 앞에 서 있던 주인은 “할아버지가 타던 차로 유년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올드카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창고에 방치돼 있던 차를 수리해 지금의 모습으로 되살렸단다. 그 옆에는 붉은색의 콜뱃 올드카와 시끄러운 엔진음과 기름 냄새를 폴폴 풍기는 노란빛의 올드카도 있었다.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외형이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올드카를 구경하고 있으니, 어느덧 저녁. 내려앉은 노을 뒤로 하나둘 켜진 네온사인들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콘도그를 손에 들고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네온 간판을 원 없이 구경한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들로부터 아련한 감정이 어둠을 뚫고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세상에 남겨진, 이제 흔하지 않은 것들은 참 소중하다.
●미국 로드트립의 필수코스, 주유소
West End Service Station & Ambler's Texaco Gas Station
국내에서 드라이브 여행을 떠날 때면 출발 전 꼭 검색해 보는 것이 있다. 장거리 운전에서 필수적인 휴게소와 주유소다. 어디쯤에서 쉬어 갈 것인지, 어느 주유소가 저렴한지 등을 미리 알아 두면 마음이 편하다. ‘루트 66’에는 과거 주유와 휴식을 동시에 제공했던, 역사적인 주유소 몇 곳이 아직까지도 자리한다.

그중 ‘에드워즈빌(Edwardsville)’의 ‘웨스트 엔드 주유소(West End Service Station)’는 1927년부터 1964년까지 주유소 겸 정비소로 운영됐다. 멀리서 보면 마치 작은 주택처럼 보이는데, 노란 건물에 붉은색 주유기가 조화롭게 놓여 인상적이다. 방문객들은 주유기 주변에서 사진을 찍으며 포즈를 취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이 따로 없다. 주유소 내부에는 루트 66의 역사를 보여 주는 사진과 관련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루트 66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 없는 이들도 관심을 가지게 될 만큼 종류가 다채롭다.

또 다른 한 곳을 꼽자면 ‘드와이트(Dwight)’에 위치한 ‘앰블러스 텍사코 주유소(Ambler’s Texaco Gas Station)’. 이곳은 1933년에 문을 열었다. 하얀색 판자 외벽과 초록 지붕 그리고 그 앞의 빨간 주유기가 클래식한 매력을 더한다. 대략 60년 동안 운영됐는데, 루트 66에서 가장 오래 운영된 주유소라고 한다. 내부 공간에는 손때 묻은 공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고, 맞은편에는 핀포인트 지도가 걸려 있다. 미국과 유럽에는 핀들이 촘촘히 꽂혀 있지만, 한국은 내가 꽂은 핀을 포함해 단 3개뿐이었다.
●Livingston & Springfield
알록달록 색들의 향연
Pink Elephant Antique Mall
루트 66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 리빙스턴이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이름만큼이나 인상적인 골동품 가게, ‘분홍 코끼리 앤틱 몰(Pink Elephant Antique Mall)’을 만났다. 1926년에 지어진 리빙스턴 고등학교를 2000년 초부터 골동품 상점으로 리모델링해 선보인 곳이다. 상호 이름처럼 상점 앞에는 거대한 코끼리 모형이 서 있고 그 뒤에는 간판이 달려 있는데, 간판은 세월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색이 바랬다. 하지만 코끼리는 누군가의 손길 덕분인지 여전히 선명한 분홍색을 간직하고 있었다.

골동품점 안으로 들어서니 특유의 묵직한 먼지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불쾌하다기보단 오래된 물건들이 지닌 정감 있는 냄새다. 유리그릇, DVD, 양초, 기념품, 수집품, 피규어 등 진열대마다 가지각색의 보물이 가득하다. 미키마우스 피규어나 귀여운 인형 하나쯤은 꼭 데려오고 싶었지만, 남은 여행 일정을 생각하며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들른 곳은 바로 옆의 ‘더 트위스티 트리트 다이너(The Twistee Treat Diner)’. 아이스크림콘 모양의 외관이 눈에 띄는 이곳은 달콤함을 여행자에게 선물한다. 바 테이블과 창가에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들, 등받이가 높은 의자까지 미국 드라마에서 자주 보던 미국식 휴게소, ‘다이너(Diner)’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공간. 파스텔톤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딱 어울리는 장소다. 이곳에서 어느 미국인 가족이 함께 들어와 감자튀김을 먹는 모습을 보며, 루트 66 로드트립 중임을 실감했다.
Ace Sign Company Sign Museum
다음 장소를 향해 다시 루트 66에 올랐다. ‘스프링필드’에 위치한 ‘에이스 사인 컴퍼니(Ace Sign Co.)’의 사인 박물관은 스프링필드와 루트 66을 위해 제작된 85개 이상의 간판들을 전시하고 있다.

회사는 100년 넘게 품목을 발전시켜 오며 네온사인을 비롯해 LED 등 여러 스타일의 간판을 제작해 오고 있다. 빨간색, 주황색, 초록색, 파란색 등 형형색색의 네온사인들이 눈길을 휘어잡는다. 1953년 제작된 네온 펩시 병뚜껑과 빈티지 간판 등을 구경할 수 있다. 네온사인의 감성에 끌린다면, 이곳은 노다지 같은 공간이다.
●그가 사랑했던 도로
Route 66 Association Hall of Fame & Museum
‘밥 월드마이어(Bob Waldmire)’는 루트 66을 사랑했던 예술가이자, 이 길 위에 삶을 바친 사람이다. 그는 손으로 직접 그린 ‘올드 루트 66 여행 지도’를 제작했다. 그 지도를 통해 루트 66의 매력을 세상에 알렸다.

1945년 태어나 2009년 세상을 떠난 그는 자신의 유해가 루트 66에 뿌려지길 바랐을 만큼 이 도로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밥 월드마이어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루트 66을 여행한 뒤, 그 길의 매력에 빠졌고 이후 머스탱과 폭스바겐 밴을 타고 루트 66을 여행했다고 한다. 그가 그린 여행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의 손끝에서 완성된 지도는 루트 66에 대한 안내서이자 예술품이다.

스프링필드 ‘더 파머시 갤러리 & 아트 스페이스(The Pharmacy Gallery & Art Space)’에서는 2026년 12월19일까지 밥 월드마이어의 특별 전시회를 열고, 폰티악의 ‘루트 66 국도 명예의 전당 및 박물관(Route 66 Association Hall of Fame & Museum)’에서는 밥 월드마이어의 자동차를 전시한다고.
●아는 맛의 새로움
Old Route 66 Family Restaurant
사실 장거리(특히 미국, 캐나다) 여행을 하게 되면 의도치 않게 다이어트가 된다. 한식이나 아시아 음식을 제외하고는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국에서 자주 챙겨 먹는 웨스턴식은 햄버거 정도인지라, 일정 내내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물릴 만큼 먹었다.

마지막 날 점심까지도 햄버거였다. 큰 기대 없이 들어선 ‘올드 루트 66 패밀리 레스토랑(Old Route 66 Family Restaurant)’은 현지 주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사방에는 루트 66을 테마로 한 소품이 가득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레트로한 느낌.

이곳의 대표 메뉴인 ‘루트 66 버거’는 사실 특별한 조합은 아니었다. 소고기 패티와 치즈, 양상추, 적양파가 들어간 전형적인 햄버거. 다만 가게의 정겨운 분위기가 맛을 한층 살려 줬다. 참고로 캘리포니아 현지인이 공유해 준 팁을 하나 풀어 보자면, 감자튀김의 케첩에 후추를 뿌리면 감칠맛이 두 배가 된다는 사실.
루트 66을 여행하는 법
루트 66의 역사를 짚어 보는 여정은 시카고에서 시작된다. 북적이는 도심을 지나 미주리, 오클라호마, 뉴멕시코 등을 거쳐 감성 가득한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이어지는 경로다. 세월이 흐르며 경로는 일부 변했다. 경유 없이 단숨에 달린다면 32~38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루트 66의 정수를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하루에 약 320km 정도씩 달리며, 역사적인 장소들을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속도로 완주하게 된다면 10~12일이 소요된다. 여행은 속도가 아닌 밀도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루트 66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도로가 지닌 감성과 서사를 더 깊숙이 만날 수 있다.
●Editor's pick
당신이 루트 66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도서관 & 박물관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으로 1861년부터 1865년까지 이어진 남북전쟁을 치르고 노예제를 폐지한 인물이다. 그동안 노예제를 폐지한 대통령이라는 단편적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박물관을 둘러보며 그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박물관은 대통령 ‘링컨’뿐만 아니라 인간 ‘링컨’의 삶에 대해 조명한다. 단순히 유물을 나열하는 박물관의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그의 삶의 여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리, 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 장치를 활용해 관람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노예제를 폐지하고 싶은 링컨과 반대하는 인물들의 대립을 미디어아트를 통해 나타냈으며, 대통령이 되기 전 아버지이자, 변호사였던 링컨 가족의 단란했던 모습을 정교한 모형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근처에 링컨 가족이 실제 살았던 집이 있으니 함께 둘러보길 추천한다.
텐더로인 농장
라일락과 라벤더 향을 특히 좋아한다. 라일락은 곳곳에 심겨 있어 꽃이 피는 4~5월 마음껏 향기를 맡을 수 있지만, 라벤더는 찾아가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다. 미국에서 마음껏 라벤더 향을 즐기고 왔다.

텐더로인 농장은 실제 운영되고 있는 농장으로 2016년부터 라벤더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라벤더 개화 시기에 맞춰 방문하면 직접 가위로 꽃을 수확할 수 있다. 라벤더 재배 구역이 넓지는 않지만, 호수와 곳곳에 핀 야생화들을 둘러보고 있으면, 바쁜 로드트립 일정 속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글·사진 김다미 기자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유나이티드항공, 일리노이주관광청(Enjoy illin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