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게임 시장을 대표하는 게임으로 EA의 EA FC 시리즈와 2K가 선보이고 있는 NBA 2K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축구와 농구로 종목은 다르지만 매년 수백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사랑받고 있다.
특히 두 작품은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내며 발전하는 동시에, 서로 닮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종목은 다르지만 게임의 시스템을 서로 '베끼며 개발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닮았다.
■ 선수 카드팩 팔이의 시작
먼저 EA는 피파 시절, 시리즈를 대표하는 메인 콘텐츠 '피파 얼티밋 팀'을 '피파 09'를 통해 DLC(다운로드 콘텐츠) 형태로 처음 선보였다. 카드팩 구매나 선수 거래, 전술 설정 등을 통해 나만의 팀을 만들어 가는 재미를 선보였으며, '피파 11'부터는 당당히 메인 콘텐츠로 추가됐다. 이후 시리즈를 이어가며 피파 시리즈, 그리고 지금의 FC 시리즈를 대표하는 콘텐츠로 자리했다.
게임 판매 이후 카드팩 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거둔 EA가 부러웠기 때문일까? 2K도 'NBA 2K13'에서 '마이팀' 모드를 도입했다. 다양한 선수로 팀을 구성해 대결을 펼치는 콘텐츠를 구현했고, 그 중심에는 추가 과금으로 선수를 획득할 수 있는 카드팩 구매가 있었다. 마이팀 모드 역시 발전을 거듭하며 대규모 대회까지 열리는 등 NBA 2K 시리즈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 각본 없는 스포츠에 각본을 더하다
흔히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며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다. 하지만 게임으로 등장한 스포츠 장르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각본이 마련된 스토리형 콘텐츠로 새로운 재미를 시도했다.
'NBA 2K16'은 마이 커리어 모드를 단순한 싱글 캠페인을 넘어 한 편의 영화처럼 연출하려 했다. 뉴욕 닉스의 팬이자 전설적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가 비주얼 콘셉트와 극본 등 공동 제작에 참여했다.
이 작품의 선수 육성 모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그리고 루키 시즌을 거치는 농구선수의 일대기를 영화처럼 보여주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연출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평가는 좋지 못했다. 2K는 절치부심해 다음 작품인 NBA 2K17에서 다시 연출을 강화했고, 배우 마이클 B. 조던이 친구 역할로 등장하는 등 다양한 요소를 더해 큰 사랑을 받았다.
EA도 '피파 17'에서 '저니 모드'라는 스토리 모드를 도입했다. 알렉스 헌터라는 어린 축구 선수의 EPL 입성을 다룬 스토리로, 기대를 모았다. 다만 이용자들의 바람과 달리 선수의 데뷔부터 은퇴까지는 즐길 수 없었고, 이미 짜인 각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후 '피파 18'에서도 알렉스 헌터의 이야기가 이어졌고, '피파 19'에서는 '저니 모드'의 파이널 시즌이 공개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혼성팀 구현
EA는 피파와의 계약 해지 후 EA FC 시리즈로 새롭게 출발하며 야심찬 시도를 선보였다. 대표 콘텐츠인 FC 얼티밋 팀에서 남녀 혼성팀 구성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실제 경기에서는 불가능한 남녀 대결이지만, 얼티밋 팀에서는 남녀가 함께 축구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남녀 리그의 수준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책정된 오버롤(능력치)과 특수 능력 덕분에 유난히 강력한 여성 선수들이 등장해 이용자들의 원성을 샀다. 그럼에도 카드팩 판매가 핵심인 게임 구조상, 원하는 선수의 획득 확률을 낮추는 여성 선수 추가는 EA 입장에선 이득이었다. 지금도 남녀 혼성팀 구성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NBA 2K 시리즈도 늦게나마 NBA 2K26의 마이팀에서 남녀 혼성팀 구성을 지원했다. 다만 신장이 중요한 농구의 특성상 FC 시리즈보다 여성 선수 활용이 쉽지 않다. 그러나 카드팩을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여전히 손해 볼 일이 없다.


■ 한국에는 안 팔아! 아니, 못 팔아...
2024년 우리나라에서 확률형 아이템 공개가 법적으로 의무화됐다. 비록 모바일게임을 중심으로 논의됐지만, 플랫폼에 상관없이 적용되는 정책이기에 EA와 2K도 따라야 했다.
하지만 두 회사는 한국 내 확률 공개 의무가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공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던 걸까? 결국 한국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2K가 먼저 2024년 'NBA 2K25'를 출시하며 한국에서는 선수 카드팩 판매를 중단했다. 지금도 국내에서는 카드팩 구매가 불가능하다. EA는 약 1년간 무대응으로 버티다가, 해외 게임사의 국내 대리인 지정 제도 시행을 앞둔 올해 'EA FC 26'부터 선수 카드팩 판매를 중단했다.
콘텐츠뿐만 아니라 서비스 정책까지 닮아버린 두 게임사의 행보다.

■ 앞으로도 닮아갈까?
서로 점점 닮아가는 두 게임의 미래는 어떨까? 개발사만이 알겠지만, 관련 전문가들이 일부 예측하는 부분이 있다.
NBA 2K 시리즈의 '시대 콘텐츠'를 EA FC가 차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시대 콘텐츠는 NBA의 전설적인 선수들의 전성기를 구현해 당시 NBA를 즐길 수 있는 시스템으로, 래리 버드,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의 시대와 관련 NBA 팀이 모두 등장한다.
만약 EA FC가 이를 차용해 펠레의 시대, 마라도나의 시대, 지단의 시대, 메시와 호날두의 시대 등으로 구성하면, 이미 팔 수 있는 선수 카드 팩만으로도 엄청난 규모가 될 것이다. 이제는 '아이콘'으로 팔지 않아도 마음껏 과거의 선수를 팔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돈 냄새가 나지 않는가?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확실한 건 우리나라에서는 어차피 살 수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