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회사는 신차를 먹고 산다.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 인공 지능 등이 주류가 되기 전까지 자동차산업계의 명제였다. 프리미엄 브랜드와 양산 브랜드의 차이는 있다. 독일 프리미엄 3사는 세분화를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모델들을 라인업 해 성공했다. 20세기 말 연간 판매 60만대 전후에서 브랜드 가치도 높이면서 250만대 전후까지 성장했다. 양산 업체들은 규모의 경제를 바탕에 두고 한정적인 라인업을 운영한다. 그러나 연식 변경과 부분 변경, 풀 모델체인지 등을 통해 끊임없는 신차 공세를 펼친다는 점에서는 같다. 이들 레거시 업체들은 테슬라 등 외부의 파괴적 경쟁자와 중국차들의 공세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세상은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만 가지 않는다.
글/채영석(글로벌오토뉴스 국장)
미디어들은 자동차회사들의 신차 출시 예상과 전망을 쫓기에 바빴다. 특히 모터쇼를 통해 예상 외의 모델들을 내놓아 주목을 끄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순간 그런 흐름이 사라졌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모터쇼는 과거처럼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오토쇼가 개최 일정을 변경하고 제네바쇼가 사라진 것이 이런 상황을 대변한다. 그 자리를 빼앗은 것이 CES라는 점이 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빠른 속도로 전기차로 전환될 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반전 조짐이 보인다. 트럼프라는 예측 불가의 정치인으로 인해 전 세계적이지는 않지만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 자동차산업을 망친다는 지적이 있지만 어쨌든 당장에 수익이 중요한 자동차회사들은 전기차 공장을 다시 내연기관차로 전환하는 등 태세 전환을 하고 있다. 물론 장기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변화는 판매뿐 아니다. 테슬라가 시작한 하나의 디스플레이로 모든 기능을 통합했던 흐름도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버튼과 스위치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 테슬라도 방향 지시등 레버를 채용하고 있다. 이미 판매된 차에 옵션으로 구매해서 장착하기까지 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알 수 없다. 결국은 시장이 결정한다. 시장은 지역과 정치적인 문제에 반응한다.
전기차 부문에서 모든 시장이 역주행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시장을 무기로 전기차로 자리를 잡았고 더 나아가 세계시장으로 세를 급속도로 확대하고 있다. 유럽도 전기차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도 트럼프의 세액공제 중단 효과로 마감 전 전기차 판매가 급증했다. 그 이후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자동차회사들은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가격을 인하하거나 다른 판매 기법을 찾아내 전기차로의 전환에 끈을 놓지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당장에 팔리는 차를 내놓는 것이다. 과거와 다른 점은 전기차는 물론이고 내연기관차에도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비용부담이 증가한다.
팔리는 차는 시장이 요구하는 신차를 말한다. 테슬라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신차효과를 노린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그래서 레거시 플레이어들은 지금 다시 신차 공세로 난관 극복을 노리고 있다. 다만 양상은 과거와 다르다. 지금은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독일 3사는 단순히 모델을 늘리는 것을 넘어, 차세대 플랫폼과 기술을 집약한 전략적 신차를 대거 투입하고 있다. 그러면서 모델 통합도 하고 있다. 비용저감을 위한 것이다.
큰 틀에서는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응해, 투 트랙, 또는 멀티 피워트레인 전략을 동원하고 있다. 배터리 전기차 판매 성장 둔화에 따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전기차가 중요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현대차그룹 등은 이 분야의 신차 및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다.
유럽 자동차업체들은 중국 저가 전기차시장 공세에 맞서 컴팩트 전기차 라인업을 출시하며 저가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현대와 기아도 포함된다. 현대차그룹은 중국시장에도 저가 전기차로 공세에 나서고있다.
이러한 신차 공세는 시장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 기술과 전기차 플랫폼 효율화를 통해 누가 더 빠르게, 더 낮은 비용으로 혁신을 이룰 수 있느냐에 따라 2025년 이후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움직임도 숨가쁘다. BMW는 올 해 말 출시 예정인 노이어 클라쎄 플랫폼을 중심으로 전기차의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동시에, 이 기술을 기존 내연기관 모델에도 확대 적용하여 고객의 선택 폭을 넓히는 유연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노이어 클라쎄 플랫폼은 배터리 기술, 효율성, 디지털 경험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BMW는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 전기차, 배터리 전기차 모델을 동일한 라인에서 생산할 수 있는 유연한 아키텍처에 일찍이 투자해 왔다. 이는 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전기차 판매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BMW와 토요타는 대부분의 완성차회사들이 전기차 전환으로 방향성을 정할 때 멀티 파워트레인 전략을 선언했다. 왜 전기차로의 전환이 둔화됐느냐는 것과는 별도로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규모의 경제라는 과제는 놓지 않고 있다. 노이어 클라쎄를 위해 개발된 파노라마 비전이나 새로운 컴퓨팅 시스템 같은 첨단 디지털 혁신 기술을 배터리 전기차뿐만 아니라 기존 내연기관 및 하이브리드 전기차 라인업 전체에 적용하여 두 개의 세상을 만들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2027년까지 40개 이상의 신차 또는 부분 변경 모델에 이 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
그 시작은 노이어 클라쎄 기반의 첫 양산형 배터리 전기 SAV iX3다. 엔트리 라인업에서는 4세대 1시리즈와 2세대 2시리즈 그란쿠페 등 엔트리급 라인업을 페이스리프트 또는 풀체인지 하여,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가 적용된 내연기관 및 경량화된 모델을 선보인다. 연말 또는 2026년 초에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출시하며 주력 세단 라인업을 보강할 예정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도 사상 최대 규모의 신차 공세를 선언했다. 차세대 전기차 전용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프리미엄 전기차 라인업을 강화하는 한편, 시장 상황에 맞춰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유연하게 생산하는 넥스트 레벨 생산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MB.EA (중대형 승용), AMG.EA (고성능), VAN.EA (밴) 등 2025년부터 3가지 전기차 전용 아키텍처를 순차적으로 도입하여 제품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브레멘 공장과 헝가리 공장 등을 중심으로 전기차와 내연기관 모델을 같은 라인에서 혼류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시장 수요에 따라 생산량을 효율적으로 조절하기 위함이다. 일례로 GLC EV는 내연기관 및 하이브리드 모델과 같은 라인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최근 비전 아이코닉 콘셉트를 통해 솔라 파워 기술, 첨단 AI 등 미래 기술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AMG는 1,000마력 이상의 EV 슈퍼 SUV 출시를 계획하는 등 고성능 부문도 전동화한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3년간 3개 대륙에 걸쳐 40대 이상의 사상 최대 규모 신차를 생산하겠다는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25년은 전기차에 집중하는 해다. 오랜 기대를 모은 G-클래스의 전기차 버전이 출시되며, 기존 모델의 독보적인 디자인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고성능 모델인 AMG GT와 E 53 AMG 등이 국내 출시를 알리며 프리미엄 고성능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AI 기반 운영체제 MB.OS와 MBUX 하이퍼스크린이 장착된 차세대 전기 SUV 올 뉴 GLC 위드 EQ 테크놀로지를 공개하며 SDV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MMA 기반의 첫 모델인 CLA 전기차도 시장 출시가 임박했다.
아우디도 사상 최대의 모델 출시를 예고했다. 약점으로 지적된 신차 부재를 해소하고, 프리미엄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데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아우디도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모두 아우르는 투 트랙 전략을 통해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모델 역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2025년 하반기 현재, 아우디는 강력한 신차 공세를 통해 판매량 반등에 성공하고 있다. 20개 이상의 신차를 출시하여 프리미엄 시장에서 가장 젊고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계획이다. 2026년에는 고효율 전기차와 강력한 SUV 라인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더 뉴 Q3 스포트백 e-하이브리드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등 배터리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적극적으로 시장에 내놓고 있다. 전기 스포츠카 콘셉트인 아우디 콘셉트 C를 통해 새로운 디자인 철학 '명확성(Clarity)'을 제시하며 미래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양산 브랜드들도 전략 수정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의 역주행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양산 업체들이다. 나름대로 시장 다변화와 라인업 전략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이라고 하는 대세를 거스르지는 않는다.
토요타는 여전히 하이브리드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점이 차이이다. 토요타는 BMW 와 같은 멀티 패스웨이 전략으로 이 시대 가장 득을 보고 있다. 단일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주력으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배터리 전기차(BEV), 수소 연료전지 전기차 등 모든 형태의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제공하는 전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2025년형 캠리와 같은 핵심 모델에 5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하여 연비와 반응성을 높였다. 배터리 전기차 판매 비중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신모델 출시를 가속화하고 있다. 차세대 배터리 전기차는 생산 시간을 단축하고 제조 비용을 절감하는 혁신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동시에 미라이 FCEV 모델을 통해 수소 연료전지 기술 개발과 수소 생태계 구축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궁극적인 탄소 중립 목표인 비욘드 제로를 향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혼다는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닛산도 큰 틀에서는 토요타나 혼다와 다르지 않다.
폭스바겐 그룹은 'TOGETHER 2025+' 전략과 이를 계승한 뉴 오토 비전을 통해 단순한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소프트웨어 중심의 모빌리티 리더로의 근본적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그룹 전체의 전기차 및 내연기관 신모델을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으로 개발하여, 강력하고 확장 가능한 전자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차량의 디지털 성능을 극대화한다. 이를 통해 OTA 업데이트, 향상된 안전 기능, 높은 연결성 및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차량 개발, 산업 응용, IT 인프라 확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개발 속도와 품질,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30개 이상의 신형 전기차 출시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최근 시장 상황을 반영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을 확대하는 등 제품 포트폴리오를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다. 이는 아우디, 포르쉐 등 그룹 내 여러 브랜드를 통해 진행되며, 각 브랜드의 정체성과 시장 요구에 맞는 기술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다. 각 지역의 고유한 특성과 요구사항에 맞춰 제품을 맞춤화하고 현지 전문성을 강화하는 맞춤형 지역 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다른 업체들과 같다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차 등 전방위적인 신차 라인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양산업체들 중에서는 지금까지는 적어도 가장 안정적인 행보를 보여 오고 있다. 다만 최근 미국 투자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행태로 곤란한 상황이다.
현대차는 팰리세이드 풀체인지를 통해 6인승, 7인승,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 통행 가능한 9인승으로 시트 배열을 다양화한 3열 SUV의 풀체인지 모델을 선보인다. 주력은 하이브리드 전기차가 될 것으로 보이며, 하이브리드 모델 최초로 V2L을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3열 시트가 있는 대형 전기 SUV 아이오닉 9도 경쟁력 향상을 확보하고, 경쟁력 있는 가격대를 약속했다. 기아는 첫 픽업트럭인 타스만에 더해 유럽과 중국시장에서 경쟁력있는 전기차 라인업을 빠르게 확대하곡 있다.
제네시스는 당초 2025년부터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만 선보이겠다고 선언했었으나 지금은 다른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멀티 파워트레인 전략을 구사한다. 1억 원대 가격의 고성능 전기차 GV60 마그마와 항속거리 연장형 전기차의 추가도 주목을 끄는 내용이다.
GM은 당초의 공격적인 전기차 전환 목표를 재조정하고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아우르는 유연한 다중 에너지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2025년을 기점으로 수익성과 시장 요구에 맞춰 제품 포트폴리오의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하고 있다.
GM은 그동안 북미 자동차 제조사 중 가장 공격적으로 전기차 전환을 주도해 왔다. 그러나 최근 미국 연방정부의 전기차 세액 공제 축소 및 환경 규제 완화로 인해 수요 증가세가 예상보다 둔화될 것으로 판단, 생산 시설 조정에 따른 16억 달러의 일회성 비용을 계상하는 등 전기차 생산 능력 조정에 들어갔다. GM은 일부 전기차 생산 공장의 교대 근무를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딜락 리릭, 쉐보레 실버라도 EV, GMC 시에라 EV 데날리, 쉐보레 이쿼녹스 EV 등 얼티엄 기반의 핵심 전기차 모델 출시와 확장은 계속 진행 중이다. GM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전기차 등 부분적 솔루션에 의존하지 않고, 궁극적인 목표인 제로 배출에 도달하는 데 계속 집중하겠다는 기존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포드는 핵심 모델 전동화와 하이브리드 강화 전략을, 스텔란티스는 다중 에너지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종합하면 모든 업체들이 각자의 전통을 살리는 신차 출시를 통해 미래의 방향성을 찾아가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직은 모른다는 것이고 앞으로 또 어떤 상황이 대두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자동차회사는 신차를 먹고 산다는 명제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는 점은 같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중요하지만 시장은 스타일링과 디자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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