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슈퍼카 브랜드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순수 전기차로의 전환이냐, 내연기관의 고수냐. 하지만 람보르기니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2025년 람보르기니 데이 제팬에서 만난 스테판 윙켈만 CEO와 밋챠 보커트 디자인 총괄은 명확한 메시지를 전했다. "우리는 감성을 팔지, 가속 시간을 파는 게 아니다." 페라리가 하이브리드로, 포르쉐가 전기차로 향할 때, 람보르기니가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그들이 바라보는 슈퍼카의 미래, 그리고 2030년까지의 로드맵을 들여다봤다.
람보르기니의 전동화 여정은 예상보다 험난하다. 스테판 윙켈만 CEO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예상보다 훨씬 더디다." 이는 비단 람보르기니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2023년을 기점으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고, 특히 고가 세그먼트에서 그 현상은 더욱 뚜렷하다.
윙켈만 CEO는 2029년 출시 예정인 신차의 파워트레인을 올해 말까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순수 전기차로 갈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유지할지는 아직 열린 선택지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람보르기니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명확히 담겨 있었다.
"순수 전기차는 가속할 때 멀미를 느낄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슈퍼카의 본질은 단순한 속도가 아니다. 코너에 진입하는 방식, 차체의 진동, 핸들링, 파워 대 중량 비율.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감성적 경험이야말로 람보르기니의 존재 이유다."
그는 특히 랩타임을 강조했다. "세상에 직선 주행에서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는 레이스 트랙은 거의 없다. 중요한 건 직선 가속이 아니라 모든 요소의 조합이다." 0-100km/h를 2.4초에 주파하는 괴물 같은 성능을 가진 차를 만들면서도, 정작 그 수치가 가장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역설. 이것이 람보르기니가 전동화 시대를 대하는 태도다.
흥미로운 건 시장의 지역화 현상이다. 윙켈만 CEO는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점점 더 지역화되고 있으며, 각국의 전동화 정책도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에서는 합성연료(e-fuel) 사용 가능성이 열리고 있고, 미국은 규제가 완화되는 추세다. 중국에서는 전기차가 주로 저가 세그먼트로 인식되며, 람보르기니 고객들은 여전히 내연기관을 선호한다.
"람보르기니 가격대의 차량은 전 세계적으로 약 15만 대 규모다. 전체 글로벌 시장 8천만 대 중 매우 미미한 부분이다. 그래서 우리의 접근 방식은 다른 모든 브랜드와 다를 수밖에 없다." 윙켈만 CEO의 이 말은 람보르기니가 대중적 전기차 브랜드와는 다른 게임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람보르기니의 약속은 명확하다. 새 차를 내되, 이전 세대보다 더 나은 성능을 제공하면서 CO2 배출은 줄이는 것.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다. 하지만 한 가지 모델을 완전 전기차로 만들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시장을 면밀히 관찰하며 기회를 엿보는 것, 그것이 람보르기니의 전략이다.
람보르기니의 디자인 철학을 이해하려면 밋챠 보커트를 빼놓을 수 없다. 포르쉐에서 17년, 람보르기니에서 10년째 근무 중인 그는 두 브랜드의 DNA를 모두 체화한 인물이다. 그가 디자인한 페노메노는 람보르기니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이퍼 엘레강트(Hyper Elegant)." 보커트 총괄이 페노메노를 정의한 단어다. 하이퍼카지만 매우 우아하고, 람보르기니의 시그니처인 날카로움에 부드러움을 가미했다. 특히 수직으로 배치된 Y자형 헤드램프는 람보르기니만이 할 수 있는 디자인 언어다. "가끔 '이게 너무 단순한 건 아닐까?' 싶었지만, 아니다. 멋지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말에는 디자이너로서의 확신이 묻어났다.
람보르기니의 디자인 언어는 모델마다 조금씩 다르다. 시안(Sian)은 매우 복잡하고 흥미로운 형태를 가졌고, 레벤톤은 단순하지만 페노메노와는 또 다른 단순함을 추구한다. 보커트 총괄은 "나는 항상 다른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차별화된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람보르기니 디자인 센터의 역할이다.
람보르기니의 날카로운 디자인을 구현하는 데는 소재 선택이 결정적이다. 보커트 총괄은 탄소섬유 작업을 "차량 소재 사용의 올림픽"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설명은 기술적이면서도 예술적이었다.
"디자이너가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소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다. 스케치를 시작할 수 있고 '이렇게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떻게 만드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의 말은 디자이너가 단순히 그림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제조 공정까지 이해하는 엔지니어이기도 해야 함을 의미한다.
플라스틱은 싸 보이지만 매우 날카롭고 정밀한 형태를 만들 수 있다. 알루미늄은 성형할 때 20밀리미터 정도의 라디우스가 필요하다. 탄소섬유는 초경량이지만 날카로움 측면에서는 의외로 부드럽다. 특히 노출형 탄소섬유(visible carbon fiber)를 사용할 때는 섬유 방향이 모든 파트에서 일치해야 한다. 펜더와 도어의 탄소섬유 방향이 맞아야 하고, 표면 처리는 극도로 섬세해야 한다.
"그래서 탄소섬유가 그렇게 비싼 것이다." 보커트 총괄의 설명을 듣고 나니, 람보르기니의 가격이 단순히 브랜드 프리미엄만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레벤톤처럼 세 가지 소재를 결합한 차를 만들 때, 디자이너는 셧라인을 어디에 둘지, 연결부를 어디에 둘지, 각 모서리를 어떻게 디자인할지 모든 소재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이런 경험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더 많이 작업할수록 소재의 제약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 엔지니어에게 "당신이 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다. 디자이너가 소재를 이해하고 엔지니어와 협업해야 한다. 이것이 람보르기니가 극한의 날카로움을 구현할 수 있는 비결이다.
람보르기니의 미래 계획은 신중하면서도 야심적이다. 윙켈만 CEO는 2028년까지 다수의 파생 모델(derivatives)을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만 세 가지 신차가 나오고, 2029년에는 우라칸 후속 모델이, 2030년에는 우루스 후속 모델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건 람보르기니가 라인업 확장에 매우 신중하다는 점이다. 윙켈만 CEO는 테메라리오의 후속 차종으로 리무진, 소형 SUV, GT카 세 가지 옵션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결론은 GT카였다. 리무진을 제외한 이유는 명확했다. "리무진을 만들려면 롱 휠베이스와 숏 휠베이스 두 가지를 제공해야 한다. 아시아와 미국에서는 롱 휠베이스를, 유럽에서는 숏 휠베이스를 선호한다. 롱 휠베이스는 람보르기니 같은 브랜드에 적합하지 않다."
소형 SUV도 배제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진입하고 싶지 않은 가격대로 내려가야 하고, 브랜드 가치가 희석된다." 람보르기니는 볼륨을 추구하지 않는다.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GT카를 선택한 이유는 브랜드 DNA 때문이다. "GT카는 슈퍼카 브랜드의 DNA 일부다. 우리는 350 GT, 400 에스파다 같은 GT카로 시작했다." 역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람보르기니가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람보르기니의 신중한 전략은 브랜드 성격에 차이는 있지만, GM의 브라이트드롭 실패 사례와 대비된다. GM은 전기 밴 사업을 단 4년 만에 접었다. 표면적 이유는 "상용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더디다"는 것이었지만, 내부 사정은 달랐다.
브라이트드롭 밴은 성능도 우수했고, 장기적으로는 운영비를 절감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문제는 인프라였다. GM은 차량 판매에만 집중한 나머지, 충전 인프라 구축은 외부 파트너에 과도하게 의존했다. 차고지 충전(depot charging) 솔루션을 차량 구매 패키지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
람보르기니는 다른 접근을 한다. 그들은 차를 팔기 전에 고객이 어떻게 사용할지, 어떤 경험을 원하는지 먼저 이해한다. 충전이든, 정비든, 커뮤니티든, 모든 것이 패키지로 제공된다. 이것이 람보르기니가 소수지만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결국 람보르기니의 전략은 명확하다. 전동화는 피할 수 없는 미래지만, 그것이 브랜드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0-100km/h 가속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운전하는 순간 느끼는 감정, 코너를 공략할 때의 희열, 엔진 사운드가 주는 전율이다.
이것이 람보르기니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고수하는 이유다. 전기 모터는 성능을 보완하는 수단이지,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다. 하지만 시장이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고, 고객의 요구가 달라지면 람보르기니도 변할 것이다. 다만 그 변화는 감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2025년 람보르기니 데이 제팬에서 만난 두 사람, 윙켈만 CEO와 보커트 디자인 총괄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람보르기니가 왜 여전히 특별한지, 왜 사람들이 수억 원을 기꺼이 지불하는지 이해가 됐다. 그것은 차를 사는 것이 아니라, 감성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성은, 전동화 시대에도 여전히 값어치가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도쿄 현지 취재)
<저작권자(c) 글로벌오토뉴스(www.global-auto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저작권자(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