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지금야말로, 하추자를 걷기 딱 좋은 계절이다.
 
 
    풍경의 여백을 찾아서
제주시 북서쪽 약 45km 해상에 있는 섬, 추자도.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에게 추자도는 오히려 접근하기 좋은 섬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여행자들은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내려와 또 다른 섬 여행을 이어 간다. 그들은 제주에서 추자를 오가는 왕복 배편 운임이 상시 50% 할인된다는 사실도 간파하고 있다.
 
 
    아침 8시, 제주항을 떠난 여객선은 2시간 만에 하추자 신양항에 도착했다. 커다란 계단이 선측 난간에 걸리고 익숙하게 승강장을 완성하자, 작은 배낭을 짊어진 올레꾼들이 배에서 내렸다. 상추자와 하추자는 분명 두 개의 섬이지만, 지금의 주민들은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여기고 산다. 그러나 처음 다리가 놓인 1972년도 이전까지만 해도 왕래를 하려면 작은 도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신대산과 돈대산 자락에 마을을 꾸리고 살던 하추자 사람들은 대부분 어업으로 생계를 꾸렸다. 이들에게 상추자행은 마치 장에 나가는 일과 같았다. 미역, 멸치, 다시마를 싣고 예초리를 출발한 도선은 대서리 선착장으로 향했고, 쌀과 연료, 생필품을 싣고 돌아왔다.
 
 
    자료에 의하면 두 섬은 꽤 많은 부분에서 갈등을 빚었단다. 대표적인 것이 중학교 설립 문제였다. 주민들은 각기 자신들의 섬에 학교가 생기기를 희망했다. 이 일은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졌고, 쉽게 해결이 나지 않자 대표를 뽑아 회의를 거듭하게 된다. 결국 하추자 신양리에 중학교를 세우는 대신 상추자에는 외항 방파제를 축항하는 조건으로 합의에 이르렀다. 추자중학교는 1951년도에 개교했다. 두 섬이 이어지기 전까지 학생들 역시 배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하추자(4.2km2)는 상추자(1.25km2)에 비해 면적은 3배 이상 크지만, 주민 수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행정 및 편의 시설이 몰려 있는 상추자가 오밀조밀한 매력이 있다면, 하추자에서는 자연이 주는 풍경의 여백을 느낄 수 있다.
 아름답고 편안한 길
2022년 6월, 제주 올레 18-2 코스가 새로 열렸다. 이로써 추자도는 두 개의 올레길을 가진, 명실공히 ‘섬 트레킹의 성지’로 등극하게 된다. 신 코스는 일명 ‘하추자 올레’라고도 불린다.
핵심루트는 하추자의 남단을 아우르는 졸복산과 대왕산이다. 봉우리와 능선을 넘나드는 약 4km의 구간은 하늘, 바다, 섬이 만들어 내는 청정무구의 풍광을 품고 있다. 한 번이라도 그 길을 걸어 본 사람이라면 특별한 수식어가 아닌 ‘아름답고 편안하다’라는 표현에 공감하게 된다.
 
 
    졸복산은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살짝 아쉬운, 작고 완만한 봉우리다. 몇몇 자료에 따르면 부근에서 졸복이 많이 잡혀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크게 근거는 없어 보인다. 차라리 올챙이의 전라도 방언이 졸복임을 감안하고 산의 생김을 비추어 보면 이해가 더 쉽다. 졸복산은 스스로를 낮추고 주위를 돋보이게 하는 겸손의 풍모를 지녔다. 산을 둘러싼 자연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힘이다. 그러다 보니 여행자는 고갯길 위로 풍만하게 솟은 구름 덩어리, 윤슬 바다를 떠돌다 한 점이 되어 버린 고깃배에 집중하게 된다.
 
 
    서쪽 바다에서 바라본 대왕산의 모습은 마치 공룡의 등줄기를 연상케 한다. 풍화와 해식 작용의 결과물이며, 추자도의 다른 지형과는 달리 층리가 불분명한 규암과 응회암의 혼합 암석층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올레 18-2 코스의 난이도가 상급으로 평가받는 것은 분명 대왕산의 힘이다. 대왕산 정상과 능선에서는 나바론절벽, 추자대교, 섬생이섬, 신양항, 청도, 수덕도 등 추자의 대부분이 조망된다.
 
 
    묵리에는 해녀들이 산다
졸복산과 대왕산을 내려오니 길은 신양2리를 관통하고 다시 묵리로 이어진다. 묵리항은 대체로 고즈넉하지만, 낚싯배나 해녀 작업선이 출항할 때만큼은 본연의 역할을 찾은 듯 분주해진다. 해녀들은 한 달에 12일 정도 작업한다. 인근 무인도에서 5시간 정도 물질 후 얻은 수확물은 소라, 해삼, 전복, 성게, 문어, 홍합 등으로 모듬 해물의 최고 스쿼드를 자랑한다.
특히 추자 뿔소라는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꼬들꼬들한 식감에 단맛이 돌고 오래 씹을수록 고소함이 배가 된다. 뿔소라는 어촌계로 위판되기 전에 해녀에게 직접 살 수 있다. 바다에서 갓 따온 것은 상온에서 2~3일까지 보관이 가능하다. 통째로 삶아 알맹이를 내어 먹어도 좋고 회로는 더할 나위가 없다. 이때, 내장과 몸통 사이에 붙은 치마 부분은 제거해야 한다. 입 안에 쓴맛이 돌게 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한편, 추자는 낚시로도 유명하다. 배를 가진 숙소들은 숙박, 식사, 낚시를 묶어 손님을 받는다. 요즘 같은 가을에는 삼치와 참돔 그리고 벵에돔이 잡힌단다.
짠맛과 눈물의 섬
하추자 여행을 완성하기 위해 돈대산 능선을 넘어 예초리로 향했다.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바닷가에 놓인 큰 통들도 그대로다. 그것에는 명성 높은 추자 멸치젓이 담겼다.
추자 인근 해역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해 먹잇감이 풍부하고 물살이 센 편이라 멸치의 살이 단단하다. 멸치는 뜰망으로 잡아 선별한 뒤, 간수를 뺀 천일염과 함께 섞는다. 이른바 ‘생젓’이라 불리는 제조법이다. 잡은 날 그대로 담그기 때문에 신선도가 높고, 자연 발효가 시작되는 속도도 빠르다.
이렇게 담근 젓갈은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숙성시킨다. 긴 숙성 기간을 거치면 멸치의 살과 내장이 풀어지며 담홍색 액체가 생기는데, 이것이 추자 멸치액젓이다. 인공조미료 없이 발효로만 얻어지는 감칠맛, 특유의 구수한 향 그리고 농밀한 짠맛의 조화가 깊은 맛을 만든다.
 
 
    예초리는 맛의 섬이자, 동시에 이야기를 품은 섬이다. 예초리기정길을 따라 눈물의 십자가를 지나 황경한의 묘까지 이어지는 길은 지금도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황경한의 아버지 황사영은 1801년 천주교 신유박해 때 순교했다. 이에 황사영의 처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 관노로 유배 가던 도중 추자도에 잠시 기항했고, 두 살배기 아들 황경한을 예초리 바닷가에 남기고 떠난다. 아들 또한 관노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가슴 저린 모정이었다.
이후, 어린 황경한은 어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고 그의 아들로 살았다. 눈물의 십자가는 바로 모자가 헤어진 ‘물생이 바위’에 세워졌다. 십자가 아래에는 ‘눈물의 샘’이라 불리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순례자들은 이를 ‘용서의 물’이라 부른다.
 하늘만큼 천진한 해변
모진이해변은 추자 유일의 공식 해수욕장으로 퍼걸러와 화장실, 개수대 등의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해변에는 모래가 아닌 둥근 몽돌이 깔려 있다. 이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아마도 ‘거칠고 세다’라는 뜻의 ‘모진’에 ‘이’라는 어미가 붙어 지명이 된 듯하다. 돌이켜보면 이곳 해변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다가 강한 바람 때문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가을날의 모진이는 하늘만큼이나 천진하다.
 
 
    모진이에서 신양항까지는 불과 10분 거리. 하추자를 한 바퀴 걸은 셈이다. 올레 한 코스보다 긴 동선에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섬 하나를 섭렵했다는 보람에 나름 뿌듯해졌다. 내일은 버스를 타고 상추자로 넘어가 봐야겠다. 하늘길과 나바론 절벽, 용둠벙, 다무래미, 상추자항도 다시 만나야지.
묵리에 있는 추자민박펜션은 오래전 인연으로 단골이 된 ‘최애’ 숙소다. 문득 저녁상이 궁금해졌다. 소라구이와 참돔 회가 급히 당긴다. 걷고 나니 훨씬 더 맛있을 거란 부추김에 침샘이 솟는다.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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