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배터리 시장이 빠르게 양극화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이후 전기차(EV)용 배터리 수요는 성장세가 둔화된 반면,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은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정책 변화와 수요 구조 전환이 맞물리면서 배터리 산업의 중심축이 자동차에서 전력망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 내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는 지난해부터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잇따라 생산 계획을 조정하고, 소비자들이 높은 차량 가격과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구매를 미루면서 시장이 일시적 조정을 겪고 있다. IRA의 세액공제 요건이 강화되면서 중국산 부품 비중이 높은 모델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됐고, 그 결과 전기차 판매 증가 속도도 완화됐다.
반면 ESS용 배터리 시장은 전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 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확대되면서 잉여 전력을 저장하고, 전력망 피크 수요를 안정화하기 위한 ESS 투자가 급증했다. 미국 에너지부(DoE)에 따르면 2025년 ESS 신규 설치 용량은 전년 대비 70% 이상 증가할 전망이며, 이 중 상당수가 한국과 일본, 유럽계 배터리 업체의 공급으로 채워질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 배터리 업계의 미국 ESS 수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기준 한국의 ESS용 배터리 대미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늘어난 9억 달러를 돌파했다. ESS는 에너지 밀도보다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만큼, 국내 기업들이 주력하는 LFP(리튬인산철) 기반 배터리 기술의 채택이 늘어나고 있다.
정책적 요인 역시 시장 구도를 바꾸고 있다. IRA는 청정에너지 인프라 확대를 목표로 ESS 투자 세액공제를 포함한 지원책을 강화했으며, 미국 내 셀 제조시설을 보유한 기업에는 보조금을 추가로 지급하고 있다. 반면 EV 부문은 까다로운 현지 조달 요건과 보조금 제한으로 인해 성장이 지연되고 있다. 이러한 차별적 지원이 배터리 수요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향후 5년간 ESS 중심의 배터리 투자가 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 수급 불균형이 커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ESS 수요가 전기차 배터리를 능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들은 EV 중심 전략에서 ESS 중심의 포트폴리오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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