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월드랠리챔피언십(WRC)은 토요타 가주레이싱(TOYOTA GAZOO Racing, 이하 TGR)의 시즌이었다. 제조사 챔피언십 1위, 세바스티앙 오지에의 드라이버 타이틀, 코드라이버 타이틀까지 세 부문을 모두 가져가며 트리플 크라운을 완성했다. 제조사 포인트는 735점으로 현대 셸 모비스 WRT(511점), M-스포트 포드 WRT(205점)를 크게 앞섰고, 드라이버 포인트에서도 오지에(293점), 엘핀 에반스(289점), 칼레 로반페라(256점)가 1~3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한 시즌에 세 명의 드라이버가 타이틀 경쟁권에 동시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이번 성적은 특정 스타 플레이어의 시즌이 아니라 TGR이라는 개발·운영 시스템의 성공에 가깝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2025년은 WRC 최상위 클래스인 랠리1 규정이 크게 바뀐 해다. 파워트레인과 성능 기준이 재조정되면서 각 팀은 차의 특성부터 셋업 방향까지 전반적인 재정비가 필요했다. 익숙한 데이터로 버티기 어려운 환경에서 TGR은 개막전 랠리 몬테카를로부터 속도를 보여줬다. 시즌 첫 라운드에서 1·2위를 차지하며 분위기를 잡았고, 사파리 랠리 케냐 우승, 랠리 이스라스 카나리아스에서의 1~4위 동시 진입, 센트럴 유로피언 랠리와 랠리 재팬 포디엄 등 주요 라운드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제조사 포인트는 일찍부터 벌어졌다. 각 라운드마다 여러 대의 차를 포인트권에 올려놓는 운영 전략이 효과를 발휘했다. 팀은 베테랑과 젊은 드라이버를 적절히 섞어 기복을 줄였고, 다양한 노면과 기후에서 얻은 데이터와 피드백을 빠르게 차에 반영했다. 그 결과가 735점이라는 숫자이고, 드라이버 순위 상위권에 TGR 드라이버 세 명이 동시에 자리 잡은 현재의 최종 성적이다.

제조사, 드라이버, 코드라이버 타이틀은 각각 평가 기준이 다르다. 제조사는 플랫폼과 내구성을 포함한 차의 완성도와 팀 운영 능력, 드라이버는 속도와 리스크 관리, 코드라이버는 노트와 전략 판단이 핵심이다. 서로 결이 다른 세 영역에서 같은 시즌에 모두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은, TGR이 기술·인력·프로세스를 하나의 구조로 정리해 두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TGR의 출발점은 단순한 레이싱 팀이 아니라 개발 현장에 가까운 조직이다. 토요타는 오래전부터 “모터스포츠를 통한 더 좋은 차 만들기”를 선언해 왔고, TGR은 이 철학을 실천하는 전면에 서 있다. 눈, 비, 자갈, 아스팔트가 뒤섞인 WRC는 차체 강성, 서스펜션, 파워트레인, 냉각 시스템까지 폭넓게 시험하는 무대다. 극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주행은 양산차 개발 단계에서 얻기 힘든 데이터를 제공한다.
TGR의 강점은 이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에 있다. 드라이버가 느낀 차의 거동을 엔지니어가 기술 언어로 정리하고, 개발팀이 이를 곧바로 차량 개선과 셋업에 반영하는 구조다. 이 피드백 루프가 시즌 내내 빠르게 돌아갈수록, 새로운 규정과 노면 변화에 대한 적응 속도도 같이 올라간다. 이번 시즌에 TGR 드라이버 여러 명이 포인트 상위권에 동시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 구조가 있다.

토요다 아키오 회장이 ‘모리조(MORIZO)’라는 이름으로 직접 레이스에 나서는 행보 역시 같은 맥락이다. 뉘르부르크링 내구 레이스에 자신이 타는 차를 들고 들어가는 것은, 모터스포츠를 단순 홍보 수단이 아니라 개발 과정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분명히 드러낸다. 올해 WRC 트리플 크라운은 이런 문화가 팀 전체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토요타는 2017년 TGR 이름으로 WRC에 다시 돌아온 이후 빠른 속도로 성적을 쌓아 왔다. 복귀 첫해부터 포디엄에 오르며 존재를 알렸고, 2018년에는 제조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후 여러 시즌에 걸쳐 제조사·드라이버 타이틀을 반복해서 가져가며 WRC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드라이버 라인업의 변화도 흥미롭다. 세바스티앙 오지에 같은 랠리 레전드부터 칼레 로반페라 같은 차세대 에이스까지, 서로 다른 성향의 드라이버가 TGR을 거치며 챔피언에 올랐다. 이번 시즌 포인트 상위 3위까지 오지에·에반스·로반페라가 모두 TGR 드라이버라는 점은, 한 명의 슈퍼스타에 의존하지 않는 팀 구조를 잘 보여준다.
2025년 드라이버 순위를 보면 토요타 소속 드라이버들이 전체 상위권을 넓게 차지하고 있고, 제조사 순위에서는 TGR WRT2가 4위에 올라 있다. 메인 팩토리팀뿐 아니라 서브팀까지 포인트 경쟁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든 덕분에, 토요타는 WRC의 여러 클래스에서 안정적으로 데이터와 성적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2025년 토요타의 모터스포츠 성과는 WRC에만 그치지 않는다. 토요타는 같은 해 다카르 랠리와 FIA 월드 랠리-레이드 챔피언십(W2RC), 내구레이스와 뉘르부르크링 24시까지 여러 무대를 동시에 운영했다.
다카르와 W2RC에서는 GR 힐럭스 기반 랠리 레이드 카로 상위권을 꾸준히 지키며 타이틀 경쟁을 이어갔다. 장거리 오프로드는 서스펜션 스트로크, 차체 강성, 연료·냉각 시스템 내구성까지 복합적으로 시험하는 환경이다. 이 영역에서 얻은 경험은 픽업트럭과 SUV, 오프로드 성향 모델의 개발에 그대로 반영된다.
세계내구레이스(WEC)에서는 GR010 하이브리드로 하이퍼카 클래스를 치열하게 치렀다. 8시간, 24시간 레이스에서 에너지 매니지먼트와 타이어 전략, 드라이버 교대 운영을 다듬는 과정은 전동화 파워트레인 개발에 중요한 자산이다.

뉘르부르크링 24시 레이스 복귀도 상징성이 크다. TGR과 ROOKIE Racing은 GR 야리스와 GR 수프라 GT4 기반 머신으로 클래스를 완주하며, 고성능 소형차와 스포츠카의 개발 방향을 다시 점검했다. 이런 활동을 모두 합쳐 보면, 토요타는 모터스포츠 각 카테고리를 개별 이벤트로 두지 않고 하나의 개발 네트워크로 묶어 운용하고 있다.

2025년 WRC 트리플 크라운 달성은 TGR이라는 조직이 그룹내에서 어느 위치까지 올라왔는지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첫째, TGR은 토요타의 고성능·모터스포츠 부문을 넘어 개발 프로세스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WRC와 다카르, 내구레이스, 뉘르부르크링에서 나온 데이터는 GR 브랜드와 일반 양산차의 품질·주행 성능·내구성 개선에 연결된다. GR 야리스, GR 수프라, GR 코롤라와 같은 모델들은 이 흐름이 구체적인 결과물로 드러난 사례다.

둘째, TGR은 인재와 경험이 순환하는 플랫폼 역할도 한다. 랠리, 랠리 레이드, 서킷을 오가는 드라이버와 엔지니어, 메카닉들이 다양한 카테고리를 경험하고 다시 개발 현장으로 돌아가는 구조가 잡혀 있다. 이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는 장기적으로 토요타 스포츠·고성능차의 경쟁력을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셋째, WRC 트리플 크라운은 토요타가 여전히 세계 랠리 무대에서 기준을 제시하는 브랜드임을 다시 확인시킨다. 2017년 복귀 이후 꾸준히 타이틀 경쟁을 이어온 TGR은, 새로운 규정이 시작된 첫 해에도 가장 안정적인 패키지를 만들어 냈다. 올해의 트리플 크라운은 그동안 쌓아 온 철학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맥락에서 2025년 WRC는 TGR이 토요타 그룹 안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선명하게 보여준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모터스포츠는 TGR에게 성적표이면서 동시에 개발 현장이고, 토요타에게는 다음 세대의 신차를 준비하는 실험실에 가깝다. 2025년의 트리플 크라운은 이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물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신호다. 내년 1월 개최되는 도쿄 오토살롱에서는 지금까지 TGR의 성과, 그리고 향후 방향성에 대한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2025년 트리플 크라운 달성으로 기술적 성과가 확인된 만큼, 어떤 방향성이 제시될 지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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