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센터 본부장에 다시 독일인이 임명됐다. 아우디와 BMW, 포르쉐 등 자동차회사와 빅테크 기업 애플의 경력이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현대차그룹은 실리콘밸리에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었다. 하지만 진척이 되지 않자 소프트웨어 부문을 중심으로 연구개발을 주도했던 포티투닷의 송창현이 퇴진했다. 그에 이은 만프레드의 하러의 부상은 여러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무엇보다 하드웨어 회사인 현대차그룹이 소프트웨어 조직과 어떻게 융합해 시너지를 낼 것인지가 핵심이다. 외부의 파괴적 경쟁자들의 개발 주도권 장악과 중국 자동차업체들의 시장 확대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도 풀어야 할 과제다. 과거 피터 슈라이어나 알버트 비어만처럼 확실한 성과를 이루어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글/채영석(글로벌오토뉴스 국장)
정의선 회장의 인사 중 피터 슈라이어와 알버트 비어만이 가장 큰 변화를 이끌었다. 피터 슈라이어는 현대기아의 디자인을 크게 향상시켰고 알버트 비어만은 주행성에 대한 현대차그룹 내의 인식을 바꾸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디자인 수장은 이상엽으로 바뀌었고 연구개발은 우여곡절 끝에 수장이 다시 바뀌었다. 포르쉐와 애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만프레드 하러다. 송창현 퇴진 뉴스가 나왔을 때 이미 결정이 났을 수 있고 앞으로는 자동차와 IT 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리더가 필요하다고 했었다. 정의선 회장의 스타일로 미루어 나름대로의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 송창현의 퇴진을 받아 들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프레드 하러의 임무는 막중하다. 그는 2018년 연구개발부문 최고위직에 올랐던 알버트 비어만 이후 전반적인 개발을 책임진 두 번째 독일인이다.
만프레드 하러를 선택하게 된 근저에는 소프트웨어 기반 모빌리티 그룹으로의 전환이 있다. 2018년에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를 선언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진척이 없었다. 그래서 포티투닷의 송창현을 영입했다. 그때부터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은 변동이 심했다. 보통 10년 가까이 조직을 이끌던 것과는 달리 6개월만에 본부장이 바뀌는 등 불안한 양상이었다.
그 과정에서 송창현이 사실상 연구개발 센터를 주도하는 양상이 됐다. 외부의 시각에서는 그가 자동차산업을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었다. 그렇다고 일론 머스크처럼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당연히 그룹 내 연구개발 조직과의 융합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송창현 시대의 현대차그룹은 약 3년간 정체되어 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로 연구개발 센터를 이끌게 될 만프레드 하러는 앞으로 그룹의 기초 연구부터 자동차 및 소프트웨어 플랫폼, 최종 제품에 이르는 모든 개발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된다. 그의 주요 역할은 소프트웨어와 관련 분야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SDV 경쟁력을 강화하고 차세대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하러는 아우디, BMW, 포르쉐 등에서 약 14년간 섀시 개발자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애플의 전기차 프로젝트 타이탄 팀에서 경험을 쌓았으며, 2024년 현대차그룹에 합류한 이래 핵심 차량 성능 향상과 현차와 기아 브랜드 정체성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그를 연구개발부문장에 임명한 것은 단순한 인사를 넘어, 그룹의 최우선 과제인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이런 표현은 새롭지 않다. 이미 수차례 공개적으로 언급했던 것이다.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배터리와 소프트웨어, 반도체, 인공지능 등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춰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방향성은 정립했지만 그동안은 구호에 그쳐왔다. 그나마 전기차 판매 둔화로 그룹의 판매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외형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레거시 자동차업체들이 그렇듯이 자동차의 본질이 바뀌는 상황에서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고 그에 걸맞는 기술력 개발이 필수다. 현대차그룹은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어왔다. 플레오스라는 운영체제를 개발하기는 했지만 온전히 자체적인 기술력으로 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그 운영체제를 기동할 SoC 를 외부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는 공통 과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한 상황에서 수백개에 달하는 ECU를 통합하는 것도 해결해야 한다.
이번에 엔비디아의 블랙웰 AI칩 5만개를 공급받기로 하면서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해 나갈지에 대한 구상도 구체화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대에 맞는 방향성 제시는 하고 있지만 그것이 구현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현대차그룹 내에 인공지능 관련 인력이 얼마나 확보되었느냐도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만프레드 하러는 전통적인 고성능 하드웨어 개발의 명가인 포르쉐와, 첨단 소프트웨어 및 혁신을 상징하는 애플의 전기차 프로젝트를 두루 거친 독특한 이력을 이력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건이다.
우선 가정할 수 있는 것은 차체 기술과 소프트웨어의 융합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연구인력들간의 융합이 먼저다. 거기에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 허물기라는 장벽이 있다. 기존의 자동차 개발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되어 진행되었다. 하러는 섀시 성능과 주행 경험을 소프트웨어로 정의하고 제어하는 방식을 그룹 내에 정착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이 추구하는 제네시스의 고급감과 N 브랜드의 고성능을 소프트웨어적으로 더욱 세밀하게 구현하고 최적화하는 것도 풀어야 할 과제다.
그는 우선 소프트웨어팀과 하드웨어팀 간의 장벽을 허물고 데이터 기반의 통합된 개발 프로세스를 정착시키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가장 어려운 도전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를 통해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로 전환의 핵심은 개발 주기를 단축하고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다. 애플이 추구했던 빠른 반복과 집중적인 개발 방식을 그룹 내에 이식하여, 경쟁사 대비 기술 선점 속도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독일과 실리콘 밸리 경험은 현대차그룹이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 분야에서 최고의 글로벌 인재를 영입하고 이들과 비전을 공유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토요타나 폭스바겐 등과는 다른, 수직 통합 및 고객 경험 최적화를 통해 차별성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현대차그룹은 수평분업보다는 수직 통합적인 자세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위에 았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한 장단점은 또 다른 분석이 필요하다.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로의 전환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의 복잡성으로 인해 토요타와 폭스바겐 등 대부분이 조직적, 기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토요타 아린이나 폭스바겐 카리아드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외부에 분리하거나 대규모 조직 개편을 겪고 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내부 연구개발 조직 내에서 수직 통합하여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경쟁사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하러 사장의 리더십 아래 전략적 우위를 점할 수 있어야 한다.
만프레드 하러는 섀시 개발의 최고 전문가였고 애플에서의 경험도 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 하드웨어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주행감과 안전성 등 성능과 ADAS, 인포테인먼트 등 기능을 최적화하는 데 유리하여, 경쟁사 대비 더욱 완성도 높은 차량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하는 부분이다. 더불어 소프트웨어를 통해 각 브랜드의 고유한 가치를 차별화하는 데 집중할 것임을 예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완성차 생산기술과 구매 부문을 아우르며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과 미래 생산체계 구축을 주도하게 될 제조부문장 정준철 사장의 역할도 크다. 그는 로보틱스와 차세대 생산 기술 도입을 통해 제조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는다.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 등 생산 단계부터 소프트웨어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거 품질 개선을 생산 공장이 아니라 연구개발 과정부터 이루게 한 역사를 상기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 구축은 제조 공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전기차 원가 경쟁력 확보에 기여한다. 이는 소프트웨어의 수익화 전략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자동차 구매 후에도 새로운 기능을 구매하거나 기존 기능을 개선할 수 있는 수익화 기반 서비스를 통해 고객 만족도를 지속적으로 높이고, 그룹의 소프트웨어 관련 수익을 확대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 가능하다.
요약하자면 현대차그룹은 만프레드 하러의 연구개발센터 체제 하에서 하드웨어 기반의 역량과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술을 내부에서 통합하는데 우선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 가치 제고도 동시에 이루어야 한다. 고성능 및 프리미엄 고객 경험을 차별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수행해야 한다.
기술 발전 속도는 빠르지만 그것을 제품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번 현대차그룹의 변화에서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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