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I의 새로운 디자인 총괄 홀거 함프(Holger Hampf)는 BMW 디자인웍스에서 10년 가까이 머문 뒤 지난해 초 MINI의 지휘봉을 잡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전형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의 길을 걷지 않았다는 점이다. 산업 디자인과 가구 디자인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자동차를 이동수단에 가두지 않는다. 사람의 일상에서 살아 숨 쉬는 제품이자 즐거움을 주는 경험, 그리고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바라본다. 최근 MINI가 보여주는 변화의 결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최근 MINI 라인업을 살펴보면, BMW 그룹에 합류한 지난 25년의 역사 중 가장 파격적인 디자인 전환을 보이고 있다. 과거 MINI를 상징하던 화려한 크롬 장식과 아일랜드 테일라이트, 번쩍이는 토글 스위치들이 자취를 감췄다.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은 정갈하고 절제된 형태의 언어다.
처음 접했을 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오랜 팬들에게는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 만큼 급진적인 변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장식을 걷어낸 미니멀리즘 그 이상의 가치가 숨어 있다. 사이드 스커틀이나 에어 스쿱 같은 디테일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었을 뿐, MINI의 핵심인 황금 비례는 고스란히 유지되었다. 짧은 오버행과 낮은 무게중심, 고카트를 타는 듯한 탄탄한 자세까지 본질적 요소들은 변함이 없다.
'카리스마틱 심플리시티'. MINI가 내세운 새 디자인 철학의 이름이다. 복잡한 요소를 덜어내면서도 캐릭터의 힘은 오히려 키웠다. 먼 거리에서도 MINI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2020년대의 감각을 투영했다. 이 균형점을 찾는 고난도의 작업을 현재의 MINI는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MINI 디자인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둥근 헤드라이트나 육각형 그릴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전체적인 비례와 스탠스에 답이 있다. 3도어 해치백 쿠퍼를 보면 이 설명이 쉽게 이해된다.
휠의 위치와 그린하우스의 비율, 벨트 라인의 높이, 차체에 꼭 맞게 씌워진 루프까지 각 요소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가 MINI를 완성한다. 이 균형이 깨지는 순간 아이코닉한 매력도 사라진다. 1959년 오리지널 미니가 제시했던 최소 공간 점유와 독창적인 공간 활용 철학은 오늘날의 비례 속에서도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한다. 차체가 커졌음에도 여전히 민첩해 보이는 착시를 만들어내는 비결, 그것이 바로 디자인의 힘이다.
SUV 모델인 컨트리맨은 브랜드 확장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다. 쿠퍼의 크기를 그저 키우는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가족과 반려견을 태우는 차는 그에 걸맞은 독자적 개성을 갖춰야 한다.
컨트리맨은 MINI의 DNA를 지키면서 패밀리카로서의 실용성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풀었다. 과거 MINI가 세컨드카의 역할에 머물렀다면, 컨트리맨은 일상의 유일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그릇을 갖췄다. 쿠퍼가 도심을 누비는 영리한 카트라면, 컨트리맨은 언제든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된 탐험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브랜드의 확장이 복제가 아닌 다채로운 변주임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인테리어에서 가장 시선을 붙잡는 요소는 중앙의 원형 디스플레이를 꼽을 수 있다. 업계 전체가 천편일률적인 직사각형 화면을 채택할 때 MINI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화면이 사각형인 세상에서 MINI의 원형 인터페이스는 매우 도발적인 시도다.
이런 행보는 스타일의 차별화에 그치지 않는다. 사용자가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기와 소통하는 방식 자체를 새롭게 제안한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이내 MINI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감각적인 표현임을 이해하게 된다. 특히 모든 기능을 터치스크린에 가두는 최근의 추세와 달리 물리적 버튼과 스위치를 통한 촉각적 경험을 유지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로운 공존, 그것이 2020년대 인테리어에 대한 MINI의 답변이다.
디스플레이 너머에는 재료의 본질이 자리한다. 표면의 질감과 소재의 감촉, 마감의 완성도가 MINI의 정체성을 뒷받침한다. 자동차가 차가운 기계에 머물지 않고 감성적인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손 끝으로 느껴지는 만족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최근 MINI의 실내를 채운 소재들은 이런 철학을 잘 대변한다. 플라스틱 소재 하나에도 생동감 있는 질감을 입혔고 스위치의 조작감은 명확하다. 스티어링 휠을 잡았을 때 느껴지는 밀도 높은 감각은 산업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준다. 자동차라는 카테고리 그 이상의 완성도 높은 제품으로서 MINI를 대하는 관점이 돋보인다.
전기차 시대의 도래에 MINI 역시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파워트레인의 변화가 디자인의 급격한 변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연기관 모델과 전기차 모델을 나란히 두어도 그들은 한 가족처럼 보인다. 이런 형태는 의도적인 선택이다.
동력원과 디자인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관점이다. 고객에게 엔진이냐 모터냐를 묻기보다 어떤 취향의 디자인을 선호하는지를 먼저 묻는다. 선택의 핵심 기준이 미학적 즐거움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거대한 혁신이 진행되었다. 배터리 무게와 구동 특성이 완전히 달라졌음에도 MINI 특유의 고카트 주행감을 전기차에서 구현해 낸 것은 기술적 승리다.
MINI는 이제 자동차를 벗어난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이다. 패션과 서핑, 모터사이클 등 다양한 문화 권역과 협업하며 경계를 허물고 있다. 레이싱 헤리티지를 품은 JCW부터 도심형 쿠퍼, 모험가적인 컨트리맨까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앞으로의 MINI는 아웃도어와 자유, 독립성이라는 테마를 더욱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험로 지향적인 MINI가 등장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MINI만의 방식으로 해석된 오프로드의 모습은 벌써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결국 최근의 MINI 디자인이 가리키는 지점은 '균형'이다. 60년의 유산과 2025년의 현실, 아날로그의 향수와 디지털의 편의성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좌표를 찾아냈다. '카리스마틱 심플리시티'는 모양을 깎아내는 작업이 아니라 본질에 집중하는 과정이다.
과거를 예우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팬들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하면서 새로운 세대를 포섭해야 하는 줄타기와 같다. 그러나 MINI는 그 어려운 과정을 즐기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전동화가 가속화되고 기술이 진화해도 고카트의 즐거움과 공간에 대한 창의적 접근은 계속될 것이다. MINI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본질은 언제나 MINI로 남을 것이다. 60년의 세월을 버텨온 브랜드가 다음 60년을 준비하는 가장 MINI다운 방식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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