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에서 열린 ‘대한민국 방방곡곡’ 비전포럼에서 지역여행이 왜 확산되고 있는지, 그리고 지역여행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현장형 논의가 이어졌다. 3월 5일 행사에서 에어비앤비 코리아는 ‘전문가와 나누는 지역여행’을 주제로 패널 토론을 진행했고, 정성갑 갤러리클립 대표가 좌장을 맡아 양경수 한국관광공사 국민관광본부 본부장, 유현준 건축가, 서가연 에어비앤비 코리아 컨트리 매니저와 대화를 이끌었다.
패널들은 공통적으로 “여행이 ‘관광지 체크리스트’에서 ‘일상 체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흐름에 동의하면서도, 지역으로의 확산을 위해서는 숙박만이 아니라 콘텐츠, 생활 인프라, 그리고 제도적 뒷받침이 동시에 맞물려야 한다고 진단했다.
(왼쪽부터)정성갑 갤러리클립 대표, 양경수 한국관광공사 국민관광본부 본부장, 유현준 건축가, 서가연 에어비앤비 코리아 컨트리 매니저
‘도장 깨기’에서 ‘내 취향대로 살아보기’로…지역여행이 커진 배경
토론은 각 패널의 ‘기억에 남는 지역(또는 여행) 경험’으로 시작됐다. 유현준 건축가는 건축학과 특성상 로마에서 한 달가량 머무르며 현지 장터에서 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해 먹었던 경험을 꺼냈다. 그는 관광객 동선에서 벗어나 “현지 시민처럼 생활을 나누는 감각”이 가장 특별하게 남았다고 말했다. 국내 경험으로는 대전의 대학가 마을에서 직접 에어비앤비 숙소를 만든 사례를 언급하며, 예상치 못한 동네 베이커리에서 ‘자몽 케이크’를 발견해 이틀 동안 거의 한 판을 먹었던 기억을 소개했다. 지역에서의 ‘우연한 발견’ 자체가 여행의 감도를 바꾼다는 취지다.
양경수 본부장은 제주에서의 경험을 들려줬다. 2006~2007년 무렵 사진 촬영을 취미로 계절마다 제주를 찾던 그는, 서귀포 인근에서 우연히 마을 주민들을 만나 바다에서 잡은 작은 전복 같은 해산물을 함께 먹고 마시며 2시간가량 어울린 일을 “제주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바뀐 계기”로 꼽았다. 관광객으로 스쳐 지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계획에 없던 교류가 만들어낸 체험이 이후 올레길 걷기 등 ‘길 위의 여행’으로 확장되는 출발점이 됐다는 설명이다.
서가연 컨트리 매니저는 공주를 언급했다. 주말에 큰 기대 없이 찾은 한옥 스테이에서 젊은 호스트가 개조한 공간의 섬세함을 보고, 동네 산책과 독립서점 방문, 로스팅 커피를 마시는 동선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고 했다. 그는 작은 지역에서 ‘고즈넉함’과 ‘현대적인 취향’이 함께 발견되는 순간이 지역여행의 매력이라고 강조하며, 이 경험이 결국 자신이 ‘호스트’로 나서게 만든 계기 중 하나였다고 덧붙였다.
이후 본격 질문에서는 “왜 지금 지역여행이 세계적 트렌드가 됐나”가 핵심 화두로 다뤄졌다. 양 본부장은 여행 빈도의 증가를 먼저 짚었다. 저비용항공사 확대 등으로 이동의 장벽이 낮아지면서 경험치가 쌓였고, 그 결과 과거처럼 ‘랜드마크를 찍고 다니는 방식’에서 벗어나 혼잡과 피로를 피하며 개인 취향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흐름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관광 마케팅 관점에서도 대도시 집중은 혼잡, 주민 갈등, 국가 이미지 등 복합 문제를 낳는 만큼 관광객의 이동을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방향 설정이 계속돼 왔다고 설명했다.
유현준 건축가는 지역여행 확산의 가장 큰 요인으로 ‘스마트폰’을 꼽았다. SNS가 ‘나를 표현하는 방식’을 물건에서 경험으로 옮겨왔고, 사진과 후기가 축적되면서 간판 없는 골목 카페나 지방의 숨은 공간도 정보 접근성이 높아졌다. “누군가 이미 다녀온 검증된 곳”이라는 인식이 장벽을 낮추고, 다시 그 경험이 개인 콘텐츠로 되돌아가며 선순환이 생긴다는 진단이다.
서가연 컨트리 매니저는 에어비앤비의 관점에서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에어비앤비가 초기부터 ‘여행은 살아보는 것’이라는 가치를 던졌고, 그 메시지가 지금의 흐름과 맞물리며 지역여행 확산에 영향을 줬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호텔이 들어서기 어려운 지역에도 숙박 공급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업 구조 자체가 ‘인적 드문 곳의 체류’라는 경험을 현실화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관광지의 숙박 공급은 이미 포화에 가까운 반면, 절벽 전망의 외딴 공간처럼 전통 숙박이 닿기 어려운 곳에서는 공유숙박이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지역여행 활성화, 결국 콘텐츠와 생활의 ‘마지막 1칸’이 관건”
‘지역여행을 더 활성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서는, 패널들이 각자 다른 접점을 강조했다.
서가연 컨트리 매니저는 키워드를 “콘텐츠와 제도”로 정리했다. 여행객들이 “무엇을 할지”를 더 중요하게 보는 흐름 속에서, 에어비앤비가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해 체험 콘텐츠를 함께 만들기 시작했으며 올해 협업을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제도 측면에서는 현장의 복잡성이 여전히 크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에서 공유숙박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영업 신고 형태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그는 “27가지”라고 언급) 호스트들이 진입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고, 지자체별로 기준이 달라 혼선이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호스트 실거주 요건’이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징이라고 설명하며, 이는 과거 ‘민박·하숙’ 개념에서 출발한 제도적 연원과 맞물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독채 선호가 커진 시장 현실과 제도 간 간극도 문제로 제기됐다.
유현준 건축가는 제도보다도 “아침 식사”라는 생활 문제를 핵심으로 짚었다.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의 숙소는 조용히 쉬기 좋은 대신, 걸어서 갈 가게가 없거나 배달이 되지 않는 등 먹거리 접근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는 완주에서 경험한 한 숙소를 사례로 들며, 냉장고에 식빵·요거트·샐러드가 준비돼 있고 토스터기도 제대로 갖춰져 있어 “그것만으로도 아침이 해결되는” 경험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지역여행에서 ‘잠’은 비교적 쉽게 해결되지만, ‘아침’이라는 마지막 1칸이 막히는 순간 여행의 만족도와 재방문 의지가 크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숙소 운영자 관점에서도 아침 제공은 인력, 동선, 프라이버시 문제로 이어져 소규모 운영의 허들이 되기 쉽다는 현실적인 언급도 나왔다.
양경수 본부장은 업계에서 말하는 지역관광의 필수 조건으로 ‘5대 접점’을 제시했다. 안내, 교통, 숙박, 음식, 쇼핑이 갖춰져야 하고, 여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오게 만드는 이유”, 즉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다만 콘텐츠는 아이디어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획과 운영을 지속시키는 인력과 구조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한국관광공사의 대표 사업으로 ‘관광두레’를 소개하며, 전국 기초 지자체 단위에서 지역 주민들이 숙소·빵집 등 소규모 사업체를 만들고, 이를 기획·운영 측면에서 지원하는 ‘PD’가 5년간 함께 조직화해 가이드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참여 지자체가 선정되면 장기간 연속 지원을 통해 “지속 가능한 운영”을 뒷받침한다는 취지다.
빈집을 관광콘텐츠로…규제의 벽과 ‘협업 모델’ 사이
토론 후반에는 지역을 걷다 보면 흔히 마주치는 ‘빈집’이 의제로 떠올랐다. 유현준 건축가는 빈집을 보면 “고쳐서 숙소로 만들고 싶어지는” 충동이 들 정도로 아이디어는 많지만, 현실에서는 규제가 걸림돌이 된다고 토로했다. 젊은 세대의 에너지와 역량은 충분한데, 막상 실행 단계에서 제약이 누적되며 시도가 좌절된다는 것이다. 그는 빈집을 숲처럼 보이게 만들어 “아침에 눈을 뜨면 마치 숲에 있는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재해석해 보고 싶었다는 구상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양 본부장은 시행 중인 빈집 재활용 사업을 소개했다. 2023년부터 지자체와 협업해 좋은 위치의 빈집을 관광 스타트업이 새로운 공간과 콘텐츠로 재기획하는 방식의 사업을 추진 중이며, 지자체가 장소를 제공하고 행정적 제약을 조정하며 기업이 기획·운영 모델을 만드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북 경주에서 시작한 사례를 언급하며, 성과가 확인되면서 점차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인공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는 양 본부장이 “지역 주민이 주체가 돼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다만 대도시에서 멀어질수록 기획·운영 인력이 부족하고 특히 청년층이 부족한 현실이 있어, 관광두레 등 여러 사업을 통해 외부의 기획 역량을 지역에 연결해 주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가연 컨트리 매니저는 ‘머무는 여행’을 만드는 요소를 “공간·콘텐츠·사람”으로 정리했다. 동네 자체의 매력(작은 가게, 커피, 책방 등)이 바탕이 되고, 그 위에 호스트의 환대와 안내가 얹히면 낯선 곳에서도 ‘일상처럼 머무는’ 체험이 가능해진다는 논리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공간에 좋아하는 미술품을 두고, 지역의 떡집·카페·식당 등을 안내서 형태로 소개해 게스트가 몇 곳이라도 직접 경험해 보도록 돕는 방식이 지역 체류의 만족도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서가연 컨트리 매니저는 올해 에어비앤비가 국내 지역여행 활성화를 위해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매력을 알리는 캠페인”에 집중하고, 제주에서 로컬 숙소와 콘텐츠가 더 활기를 띠도록 숙소와 체험 서비스를 연계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또한 빈집 이슈를 포함해 지역 기반 숙박과 콘텐츠가 확장될 수 있도록 과제를 정리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준문 기자/jun@newstap.co.kr
ⓒ 뉴스탭(https://www.newstap.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뉴스탭 인기 기사]
· 애교살 볼륨 한 번에… 3CE, ‘아이 스위치 스틱’으로 색조 시장 정조준
· 국제수영연맹 인증 획득한 배럴 ‘엣지 레이서’…시야·밀착감·저항까지 잡았다
· 극장판 개봉 맞춰 ‘하사웨이 노아’ 전원 지급… SD건담 지 제네레이션 이터널, 최대 다이아 4000개 제공
· 비는 막고 땀은 빼고…K2,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고어텍스 하이킹화 출시
· DDR5 가격 폭등 속 대안? PATRIOT DDR5-6000 CL30 SIGNATURE PREMIUM EVO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