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전면부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얼굴이다. 지금 그 얼굴 위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과거의 얼굴이 금속의 광택으로 권위를 세웠다면, 이제는 정교하게 제어되는 빛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발광 그릴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1965년 크라이슬러 300L의 센터 그릴 주행등부터 메르세데스-벤츠의 발광 배지까지, 빛은 늘 장식의 영역에 머물렀다. 하지만 BMW는 '아이코닉 글로우(Iconic Glow)'를 통해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X6에서 시작된 실험은 이제 1시리즈부터 7시리즈까지 전 라인업으로 확산되었고, 최근 공개된 신형 i3를 기점으로 완성형에 도달했다.
지난 3월 공개된 신형 BMW i3는 뉴 클라쎄(Neue Klasse)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두 번째 양산 모델이다. 기존의 BMW의 디자인 문법을 배제하고, 키드니 그릴과 헤드라이트, 그리고 자율주행을 위한 각종 센서가 하나의 거대한 수평 구조물로 통합되었다.
좌우 주간주행등이 방향지시등 기능까지 수행하는 새로운 '포 아이 페이스'는 차폭을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여기에 아이코닉 글로우 패키지가 결합되면 자동차는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보인다. 운전자가 접근할 때 펼쳐지는 웰컴 애니메이션과 'Balanced', 'Relaxed', 'Excited'로 구분된 세 가지 조명 테마는 이동 수단과 사용자 사이의 정서적 교감을 유도한다.
뉴 클라쎄 디자인의 가장 파격적인 대목은 크롬의 퇴장이다. BMW는 iX3와 i3에서 전통적인 크롬 장식을 모두 걷어냈다. 대신 그 자리를 LED 라이팅 띠가 채운다.
세바스티안 크로에스(Sebastian Kroes) 뉴 클라쎄 인테리어 수석 디자이너는 이 결정이 오랜 숙고의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그는 디지털성과 전동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빛이 크롬보다 압도적 우위에 있음을 강조한다. 크롬은 빛이 없는 밤에는 그 기능을 상실하지만, 빛은 24시간 내내 브랜드의 정체성을 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Adrian van Hooydonk) 디자인 총괄 역시 발광 키드니 그릴이 야간에도 BMW임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라는 점을 역설한다. 낮의 정체성에 만족하지 않고, 밤의 영역까지 브랜드의 지배력을 넓히겠다는 의지다.
BMW는 지난 10년간 시도했던 과장된 디자인, 특히 특정 시장의 취향에 치우쳤던 거대 그릴 디자인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수용했다. 반 호이동크는 이번 뉴 클라쎄로의 전환을 2000년대 초 크리스 뱅글 시대 이후 가장 큰 '시각적 리셋'으로 규정했다.
그가 내세운 키워드는 '평온함'이다. 복잡한 선과 과한 장식을 걷어내고, 더 간결하고 단단한 조형미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소음과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가 사용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뉴 클라쎄의 전면부는 미적 기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키드니 그릴과 헤드라이트 사이의 블랙 섹션은 자율주행과 ADAS를 위한 센서들이 집약된 '그래픽 유닛' 역할을 수행한다. 기술이 디자인 속으로 매끄럽게 녹아든 결과물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경쟁사들과의 온도 차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여전히 크롬 테두리를 강조한 그릴을 통해 프리미엄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아우디 역시 라이팅 기술에 집중하지만, BMW만큼 과감하게 크롬을 삭제하고 전면부 전체를 디지털 캔버스로 활용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뉴 클라쎄가 그리는 미래는 물리적 실체와 디지털 경험이 결합된 '피지털'의 세계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자동차의 눈빛과 표정을 바꾸고, 상황에 따라 최적화된 시각적 피드백을 제공하는 시스템은 자동차를 단순한 기계에서 파트너의 영역으로 격상시킨다.
빛은 금속보다 유연하고,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보다 확장성이 넓다. BMW가 크롬을 버리고 빛을 선택한 이유는 변하지 않는 권위보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경험이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가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형 i3가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자동차의 얼굴이 가진 새로운 가능성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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