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알부페이라. 휴양지 분위기 가득한 남유럽의 소도시에서 메르세데스-벤츠의 새로운 전기 SUV를 만났다. 더 올 뉴 일렉트릭 GLC, 즉 GLC EV다. 지난 2025년 IAA를 통해 처음 공개된 이 차량은 이제 본격적인 판매 단계에 들어섰다. 국내에는 올 하반기 중 출시될 예정이다. 기존 GLC에 전기 파워트레인을 얹은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전기차 전용 플랫폼, MB.EA 플랫폼을 기반으로 재탄생한 GLC다. 유럽의 거친 도로 위에서 직접 확인한 그 변화를 전한다.
디자인의 변화는 꽤 강렬하다. 가장 먼저 시선을 붙드는 건 전면의 조명형 그릴이다. 각각의 패널이 조명처럼 밝게 빛나고, 삼각별을 중심으로 그라데이션 효과가 더해지면서 광활한 전면부가 하나의 디스플레이처럼 보인다. 기존 내연기관 모델의 그릴이 수행하던 '환기'의 기능 대신, 브랜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독립적인 디자인 요소로 진화한 셈이다.
헤드램프는 지난 CLA 콘셉트에서 처음 선보였던 삼각별 형태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방향지시등을 켜면 이 삼각별 형태가 밝게 점등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좌우에 위치한 디지털 라이트는 약 600m 전방을 조사할 수 있어 야간 주행 시 시야 확보에도 유리하다. 볼륨감 있는 라인이 강조된 보닛 디자인과 측면의 벨트라인은 직선으로 이어지다 후방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올라오며 쿠페라이크한 인상을 더한다. 전형적인 박스형 SUV에서 한 걸음 나아간 스포티한 실루엣이다.
다만 번호판 위치가 그릴 하단에 자리하고 있어, 각국의 번호판이 장착됐을 때 이 인상이 그대로 유지될지는 다소 궁금하다. 국내 전기차용 파란색 번호판이 장착됐을 때의 모습이 특히 기대되면서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후면에는 삼각별 형태의 리어 램프가 이어진다. 전면과 동일한 디자인 언어를 공유하며 전체적인 일관성을 완성한다. 리어 도어는 레버를 당기는 방식으로 열리며, 하단에는 디퓨저 형태의 디자인 요소도 가미됐다.
주목할 또 하나의 포인트는 2.4톤에 달하는 견인 능력이다. 고출력 전기 파워트레인 덕분에 가능해진 수치다. 미국 시장에서 GLC의 비중이 큰 만큼 다양한 활용성을 강조하는 의도가 담긴 부분이기도 하다. 트렁크 쪽 버튼 하나로 트레일러 결합용 힌지가 나오도록 설계된 점도 인상적이다.
실내에 탑승하는 순간, 가장 먼저 압도되는 것은 역시 디스플레이다. 총 길이 99.3cm에 달하는 MBUX 하이퍼스크린이 대시보드를 가득 채운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사상 가장 큰 스크린이다. LG가 공급한 세 개의 디스플레이를 이음새 없이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화면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보면 세 개로 나뉜 경계를 눈치채기 어렵다.
계기반, 인포테인먼트, 조수석 화면이 각각 구분돼 있지만 동일한 배경 테마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연속적인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배경 테마에 따라 앰비언트 라이트 색상이 자동으로 변하는 기능도 인상적이다. 아쿠아리움 모드, AI 테마 등 다양한 시각적 요소를 선택할 수 있으며,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AI 어시스턴트도 음성 명령으로 활용 가능하다.
화면 전환 속도는 확실히 눈에 띄게 빨라졌다. 이전 세대 MBUX, 혹은 EQS에서 경험했던 속도감과는 차원이 다른 반응성이다. 게임 앱 로딩도 스마트폰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빠르다. 기존 소프트웨어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만큼, 이 부분의 개선은 실질적인 체감 만족도를 크게 높이는 요소다.
시트 조절 레버도 달라졌다. 기존 모델에서는 조작 시 작동 여부를 직관적으로 느끼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딸깍 소리와 함께 확실한 조작감을 전달하도록 개선됐다. 사소해 보이지만 고객 피드백을 세심하게 반영한 부분이다.
소재 선택의 폭도 넓다. 전시 차량의 경우 알칸타라로 마감된 일체형 버킷 시트를 갖추고 있었으며, 크롬과 다양한 소재들이 실내 곳곳에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비건 패키지 옵션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건 소사이어티 인증을 받은 내장 소재로 구성된 이 패키지는 메르세데스-벤츠를 세계 최초로 독립 인증된 비건 인테리어를 제공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GLC EV는 내연기관 모델 대비 휠베이스가 84mm 더 길다. 이 여유는 오롯이 실내 공간으로 이어졌다. 1열에서 상당히 여유 있게 시트를 뒤로 밀어도 2열 무릎 공간이 주먹 하나 반 이상 확보될 만큼 넉넉하다. 발 아래쪽 공간도 여유롭다.
트렁크는 기본 570리터, 2열 시트를 접으면 1,740리터까지 확장된다. 여기에 더해 프렁크(앞쪽 트렁크)가 128리터의 추가 적재 공간을 제공한다. 종전 EQS처럼 프렁크를 사용할 수 없던 구조와 달리, MB.EA 플랫폼 기반의 GLC EV는 프렁크 접근도 쉽게 설계됐다. 엠블럼 부분을 누르면 전동으로 열리는 구조다. 기내용 캐리어를 가로세로 방향 모두 넣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크기다.
파노라마 선루프는 SKY CONTROL 방식으로 버튼을 통해 구간별 투명도 조절이 가능하다. 완전히 뿌옇게 할 수도, 완전히 투명하게 할 수도 있다. 2열 탑승자 머리 바로 위까지 이어지는 넓은 글라스 면적 덕분에 실내 개방감은 탁월하다.
사실 수치만으로는 실감하기 어려웠다. GLC 400 4MATIC은 360kW, 환산하면 약 500마력에 달하는 출력을 발휘한다. 0→100km/h 가속은 4.3초. 하지만 이 차의 본질은 가속 수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포르투갈의 도로가 알려줬다.
유럽의 도로는 생각보다 거칠다. 포장 상태가 균일하지 않은 거친 노면이 여전히 많다. 그 위를 달리는 GLC EV는 놀랍도록 조용하고 안정적이다. S클래스에 적용된 것과 동일한 AIRMATIC 에어서스펜션이 옵션으로 제공되는데, 이를 갖춘 차량에서의 승차감은 거친 노면 위에서도 충격을 깔끔하게 흡수해낸다. 4.5도 후륜 조향 시스템도 큰 역할을 한다. 고속에서의 안정감은 물론, 좁은 포르투갈 골목에서의 회전 반경이 눈에 띄게 줄었다.
회생제동 역시 이번 모델에서 크게 신경 쓴 부분 중 하나다. 강한 회생제동을 갖추면서도 내연기관 차량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연스러운 제동 감각을 구현했다. 30km 남짓을 내리막과 곡선 구간 위주로 달렸는데 배터리 소모량이 4% 남짓에 불과했다. 회생제동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됐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800V 아키텍처 기반의 MBA 플랫폼 덕분에 충전 성능도 크게 향상됐다. WLTP 기준 최대 715km의 주행가능거리를 갖추며, 10분 충전으로 최대 303km를 달릴 수 있다. 기존 400V 기반 시스템에서 진일보한 것은 물론, 자체 개발 전기모터를 처음 적용하면서 효율과 성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메르세데스-벤츠가 EQ 브랜드를 통해 전기차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 노력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EQS는 급진적인 디자인 변화와 소프트웨어 문제 등으로 아쉬운 반응을 남겼다. 그 경험이 이번 GLC EV에 그대로 녹아든 것으로 보인다.
화려하되 위화감 없는 디자인, 빠르고 직관적인 소프트웨어, 개선된 공간 활용성, 그리고 내연기관 모델에서 느끼던 편안한 주행 감각까지. GLC EV는 전기차이기 이전에 GLC로서의 정체성을 단단히 붙들고 있다. CLA가 올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처럼, GLC EV 역시 그 흐름을 이어받을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느꼈다.
국내 출시는 하반기로 예정되어 있다.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해외 기준 독일 시작가가 7만 1,281유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가격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에는 BMW iX3, 내년 초 볼보 EX60 등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도 국내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치열한 구도 속에서 GLC EV가 어떤 존재감을 보여줄지, 포르투갈의 도로 위에서 느낀 인상만큼은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글, 영상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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