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지난 이야기이니까 해도 될 것 같다. 현대 아이오닉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현대차의 ‘아이오닉’ 브랜드 사용법은 잘 된 대표적 사례다. 아이오닉은 2016년 친환경 전용 모델로 출시된 모델의 이름이었다. 하이브리드 –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 순수 전기차 등 친환경 파워트레인으로만 이루어진 라인업을 가진 모델은 세계적으로 거의 유래가 없었다. 친환경 모델의 대표주자인 프리우스도 순수전기차 버젼은 없었다. 그 결과 아이오닉은 서유럽 등 세계에서 현대차의 친환경 기술과 이미지를 심으며 판매에도 준수한 성적을 보였다.
그리고 현대차가 본격적인 전기차 플랫폼인 E-GMP를 개발하게 됩니다. 800V 아키텍처 등 과하다 싶을 정도의 스펙으로 전기차 시장에서 하극상을 일으킨 – 당시에는 일으키려는 – E-GMP 플랫폼 기반의 모델들을 담을 서브 브랜드의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임팩트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에 아이오닉을 전기차 브랜드의 이름으로 제안했다. 친환경 파워트레인의 문을 여는 전문 모델의 이름으로서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이름 아이오닉. 그렇다면 다음 단계인 본격적인 순수 전기차 라인업의 서브 브랜드 이름으로 승격, 진화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견이었다. 현대차의 친환경 전략은 아이오닉 모델과의 1단계에서 성공했고, 따라서 그 다음 단계인 첨단 전기차로 확대하는 2단계로 발전하는 것이라는 뜻이 모델명이 서브 브랜드의 이름으로 진화하는 배경에 담긴 뜻이다.
메인스트림 브랜드인 현대차에게 고객의 안심감은 구매 결정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모델 이름이 서브 브랜드의 이름으로 발전했다면 ‘아, 이것은 성공한 것이구나’라는 것을 곧바로 느낄 것이고 그것은 낯선 선택일 수 있는 전기차 판매에게는 매우 중요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오닉 브랜드에 대해 한 가지를 더 말했었다. 아이오닉을 개척자 혹은 얼리어답터 전문 브랜드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얼마 후면 전기차도 대중화될 것이고 더 이상 특별한 서브 브랜드로 묶을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이미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 벤츠가 ‘ID’나 ‘EQ’ 등의 특별한 서브 브랜드로 전기차들을 차별화하던 전략을 취소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라인업이 늘어나고 내연기관 모델들의 단종이 현실화되는 단계에서 전기차의 특별한 취급이 더 이상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폭스바겐 ID와 메르세데스 EQ는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는 중이다. 현대차의 아이오닉 브랜드도 전기차가 대중화되면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오닉이라는 소중한 브랜드를 좀 더 오래,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아이오닉을 단순히 전기차 서브 브랜드가 아니라 그 이후의 혁신에도 계속 사용하는 즉 ‘혁신 전문 브랜드’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전동화 모델에서 지금은 최신 전기차 전문 브랜드로 자리잡은 아이오닉이라면 다음의 혁신을 담아내는 데에 효과적일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새로운 기술과 컨셉트가 적용된 혁신적 신모델은 아무래도 가격적으로 비쌀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특별한 의미를 담은 브랜드로 담아낸다면 그 가치를 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 혁신 전문 브랜드 아이오닉의 제안 배경이다. 부디 앞으로 아이오닉이 현대차의 혁신 제품을 계속 담아내는 그릇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기아는 그 접근법이 좀 달랐다. 기아는 훨씬 직설적인 서브 브랜드 혹은 모델 네이밍 전략을 선택했던 것. 전기차는 ‘EV*’라는 아주 직설적인 이름을, 세계 최초의 목적 기반 모빌리티(PBV) 모델은 ‘PV*’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한 것이다. 누가 봐도 전기차, 누가 봐도 목적이 있는 차들이라는 직설적인 이름을 크기에 따라 숫자를 붙여 체급으로 구분하니 이해하기가 아주 쉬웠다.
자, 이제 니로 이야기를 해 보자. 기아 니로는 현대 아이오닉에 해당되는 친환경 전문 모델이다. 그리고 패스트백 해치백이었던 모델 아이오닉에 비해 크로스오버 SUV였던 니로는 판매 실적에서도 아이오닉을 항상 이겼다. 그러니까 이미지와 사업성에서 모두 아이오닉을 앞선 니로였던 것이다. 그래서 1세대 모델로 출시 7년만에 단종된 모델 아이오닉에 비해 니로는 2세대 모델까지 출시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니로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EV3가 출시된 이후 니로 전기차는 단종되었다. 본격적인 대중형 전기차 EV3가 있기 때문에 니로 EV의 임무는 끝난 것이다. 해외 시장에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라도 있지만 국내 시장에는 이제 하이브리드 모델 하나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니로 하이브리드의 존재마저 위협받게 되었다. 셀토스 하이브리드가 출시된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니로 하이브리드도 EV3를 만난 니로 EV와 비슷한 운명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현대차의 아이오닉처럼 니로 브랜드가 새로운 임무를 받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는 후회도 부질없을 듯 했다.
하지만 니로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뭐랄까… 그래, 직업을 바꿨다. 지금까지 친환경 전문 모델로서 개척자의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일상의 삶으로 귀향한 듯 평범한 직업을 선택하기로 한 것. 이번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더 뉴 니로는 이전 니로에 비해, 그리고 정통 SUV처럼 우락부락한 셀토스에 비해 깔끔하고 단정한 디자인을 선택했다. 디양한 색상을 선택할 수 있었던 C 필라 가니시와 같은 자극적인 요소도 삭제되었다.
단순히 셀토스보다 좀 더 성숙한 분위기를 갖기 위한 선택이었을까? 물론 그런 면도 있을 수 있다. 왜냐 하면 니로의 기존 고객들은 연비와 공간 등 니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 비교적 보유 기간이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신모델이나 시장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객층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 따라서 더 뉴 니로는 이런 성향의 고객들이라면 빠르게 식상해질 수도 있는 화려함이나 자극적인 요소는 걷어내고 단정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선택한 것이다. 즉, 단기적 실적보다 꾸준한 판매를 꾀하는 스테디 셀러의 방향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방향성은 도심형 패밀리 모델로서의 성격 강화다. 셀토스보다 낮은 시트 높이로 승하차가 쉽고, 낮은 본네트 높이로 전방 시야에 사각이 작다. 그리고 셀토스보다 넓은 공간감 등으로 시내에서 편하고 다루기 쉬운 모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니로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니로 브랜드가 친환경 전문 모델로서 계속 존재하기는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임무를 받은 현대 아이오닉과는 달리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개척자의 이름을 생활 속에서 친숙하게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물론 니로는 이전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랜 친구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할 때가 있다. 그리고 니로는 기아 브랜드의 살아있는 자산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 모든 차가 전기차가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남게 된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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