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르노뤼시옹(Renaulution) 플랜 출범 이후, 르노 그룹의 영업이익률은 2021년 2.8%에서 2025년 6.3%까지 증가했다. 5년 전만 해도 70억 유로 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하던 회사가 유럽 주요 완성차 메이커 반열에 재진입했다는 평가를 받기까지, 32개 신차 출시와 브랜드 포트폴리오 재편이라는 밀도 높은 전략이 바탕이 됐다. 그 토대 위에서 2026년 3월 공개된 것이 새로운 중장기 전략 '퓨처레디(futuREady)'다.
퓨처레디의 핵심 목표는 '하나의 성공 스토리'를 만드것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공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르노 그룹은 성장(Growth Ready), 기술(Tech Ready), 탁월함(Excellence Ready), 신뢰(Trust Ready)라는 네 가지 축을 전략의 근간으로 내세우며, 2030년까지 36개 신차를 출시하고 연간 200만 대 이상 판매를 목표로 설정했다.
프랑수아 프로보 르노그룹 CEO는 전임 루카 드 메오 체제가 일궈낸 실적 회복세를 이어받아 보다 현실적이고 복합적인 전략을 제시했다. 르노뤼시옹이 전기차 전환과 수익성 회복에 집중했다면, 퓨처레디는 불확실성이 커진 환경에서의 지속 가능성에 목표를 두고 있다. 순수 전기차 플랫폼과 하이브리드를 병행 개발하는 멀티 에너지 전략이 바로 그 핵심이다.
르노 브랜드는 2025년 유럽 외 시장에서 62만 대를 판매하며 전년 대비 11% 성장했고, 2030년까지 유럽 외 판매 비중을 전체의 절반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모로코·튀르키예·중남미·한국·인도 등 5개 글로벌 허브를 핵심 성장 거점으로 지정했다.
르노 그룹은 중남미, 한국, 인도가 유럽 외 국제 시장 확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명시했으며, 한국은 특히 D·E 세그먼트 차량의 전략적 허브로 기대를 받고 있다. 소형차 중심의 허브가 아닌, 프리미엄 레인지를 담당하는 제조·수출 거점이라는 뜻이다. 부산공장이 유럽 내 생산망과는 별개의 위상을 갖게 됐다는 것이기도 하다.
퓨처레디 플랜 내 승용차 전 모델은 네 개의 플랫폼 위에서 개발되는데, 그 중 유럽 외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플랫폼이 지리(Geely)와 공동 개발 중인 RG EA Medium이다.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에서 생산될 차세대 전기차가 이 플랫폼 기반일 가능성이 높다. 협력사 지리의 기술 기반과 르노의 설계 역량이 결합된 제품이 부산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는 구조, 이것이 르노코리아에 부여된 역할이다.
이번 전략 발표를 제대로 읽으려면 르노코리아가 걸어온 지난 4년을 짚어야 한다. 2022년 착수한 오로라(Aurora) 프로젝트는 두 차종으로 마무리됐다. 2024년 D세그먼트 SUV 그랑 콜레오스, 그리고 2026년 E세그먼트 크로스오버 필랑트. 둘 다 르노코리아 역사상 드문 대형 신차였고, 르노 그룹의 글로벌 DNA를 한국 생산 체계에 이식하려는 시도였다.
그랑 콜레오스는 출시 전 기대와 우려가 혼재했다. 브랜드 이미지 재건이라는 과제를 안고 출시된 차량인 만큼, 판매 성과가 전략 전체의 신뢰도를 좌우하는 위치에 놓였다. 르노코리아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실적 또한 크게 개선되었다. 필랑트는 보다 명확한 포지셔닝, 유럽산 대형 크로스오버라는 희소성을 무기로 삼았다. 오로라 프로젝트가 르노코리아를 단순 판매법인이 아닌 생산·개발 거점으로 되살리기 위한 내부 재정비였다면, 퓨처레디 플랜은 그 성과를 전제로 한 외연 확장이다.
퓨처레디 전략의 기술적 핵심 중 하나는 신차 개발 기간을 2년 이내로 단축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 경쟁사들의 빠른 제품 사이클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르노코리아의 부산공장이 스마트 제조 허브로 기능하기위해선 설계-생산 사이클 자체가 빨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2027년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의 첫 출시와 함께, 이후 레벨2++ 자율주행과 AIDV로의 전환을 예고한 로드맵도 주목할 대목이다. 르노 그룹은 C세그먼트 이상 모델에 SDV 아키텍처를 적용하고, 이를 점진적으로 AIDV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다만 기존의 도메인 제어 아키텍처도 병행 유지한다는 방침이어서, 실질적으로는 복수의 기술 경로를 동시에 가져가는 구조다. 르노코리아가 공개한 AI 파노라마 시스템과 E2E 방식 파일럿 주행 기능은 이 계획의 한국 버전이다.
낙관만 하기엔 변수들이 적지 않다. 르노와 닛산·미쓰비시 간 얼라이언스가 약화되는 흐름 속에서, 퓨처레디 플랜은 복수의 개발 방향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개발 비용 분담 파트너 확보가 관건인데, 그 전망은 아직 불분명하다.
한국 시장 내부의 조건도 만만치 않다. 배터리 국내 공급망 구축은 중장기 비용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지만, 국내 배터리 셀 업체들과의 협상 구도, 정부 지원 연계 여부, 공급 규모 등 구체적인 실행 조건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2028년 전기차 양산이라는 목표와 공급망 완비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느냐가 향후 르노코리아 전략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다.
퓨처레디 플랜에서 르노코리아에 부여된 역할은 D·E 세그먼트의 전략적 허브, 차세대 전기차 생산 거점, SDV와 AIDV 기술 적용의 아시아 전진기지이다. 명칭은 거창하지만, 허브는 서로 연결되었을 때만 작동한다. 그룹 플랫폼, 배터리 공급망, 소프트웨어 파트너십이 실제로 부산공장과 맞물리기 시작할 때, 오로라 프로젝트 이후의 르노코리아의 역활과 그룹 내 존재감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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