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AI 도입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실제 운영 체계를 갖춘 조직은 아직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는 응답은 90%에 육박했지만, 전사 차원의 활용 기준과 운영 체계를 마련한 기업은 10곳 중 1곳 수준에 머물렀다. AI를 도입한 기업과 이를 실제 성과 중심으로 운영하는 기업 사이에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AI 기반 온라인 테스팅 플랫폼 기업 그렙은 23일 ‘2026 기업 AI 역량평가 현황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3월 31일 서울 코엑스 그랜드볼룸홀에서 열린 ‘HR Exchange 2026’ 현장에서 채용, 조직진단, 사내 교육을 담당하는 기업 HR 실무자와 의사결정권자 354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응답 기업은 AI 활용 수준에 따라 초기 활용군, 확산 활용군, 운영 체계화군 등 3개 그룹으로 나뉘어 분석됐다. 응답자 구성은 대기업 및 대형기관이 31.4%, 중견 및 성장기업이 35.0%로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업종별로는 제조, 금융, 유통 등 비IT 업종이 66.8%로 IT·디지털 업종 33.2%를 크게 웃돌았다. AI 전환이 특정 산업군에 국한되지 않고 전 업종으로 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 기업의 87.9%는 이미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활용 방식은 자료 요약 및 보고서 작성이 44.4%로 가장 높았고, 문서 초안 작성 25.4%, 직무별 실무 과제 수행 20.9%, 업무 프로세스 개선 9.3% 순으로 집계됐다. 현재 기업들의 AI 활용이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반면 조직 차원의 체계는 아직 미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사 기준의 AI 활용 원칙과 운영 체계를 갖췄다는 응답은 12.1%에 그쳤다. 기업 대다수가 AI를 실제 업무에 접목하고는 있지만, 이를 조직 차원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쓰고 있는지 판단할 공통 기준까지 마련한 곳은 많지 않다는 의미다.
활용 수준별로 보면 각 조직이 직면한 고민도 뚜렷하게 달랐다.
AI를 개인 단위에서 간헐적으로 사용하는 초기 활용군 80개 기업은 ‘기본 이해도 파악’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비중은 33.8%였다. 이들 가운데 역량평가 도입 자체를 아직 검토 중이라고 답한 비율도 37.5%에 달했다. 도입을 가로막는 요인으로는 예산 문제 25.0%, 우선순위 부족 18.8%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AI 활용이 아직 조직 내 출발선 정리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부 팀 단위에서 AI를 반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확산 활용군 231개 기업은 보다 실무 중심의 고민을 드러냈다. 이 그룹은 ‘실무 활용 가능 여부 확인’을 가장 필요한 항목으로 꼽았는데, 응답 비율은 64.1%로 전체 평균 57.6%보다 높았다. AI를 실제로 쓰기 시작했지만, 구성원이 이를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기준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역량평가 우선 적용 영역으로는 조직진단이 33.8%로 가장 높았다. 채용이나 교육보다 현재 조직의 AI 역량 수준을 먼저 진단하려는 수요가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이 현장에서 겪는 대표 과제로는 내부 설득용 사례 및 데이터 부족 39.4%, 시작 방식의 불명확성 25.5%가 꼽혔다.
전사 차원의 AI 운영 체계까지 갖춘 운영 체계화군 43개 기업은 또 다른 단계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 그룹은 ‘채용과 교육, 조직진단 통합 기준 마련’을 가장 필요한 항목으로 제시했다. 응답 비율은 34.9%였다. 단순히 AI를 도입하거나 부서별로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전사적으로 일관된 기준을 설계하려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특히 이미 역량평가를 도입한 이 그룹에서는 ‘AI 교육 효과 측정’을 핵심 목적으로 꼽은 비율이 71.4%에 달했다. 교육의 시행 여부보다 교육이 실제 성과로 이어졌는지를 검증하는 데 초점이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안 과제 역시 설계 인력 부족 46.5%가 예산 문제 14.0%를 크게 앞질렀다.
세 그룹의 공통점도 확인됐다. AI 활용 수준과 관계없이 기업들이 공통으로 호소한 문제는 AI 역량을 판단할 표준화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기업들이 활용 중인 판단 방식은 이력서 및 포트폴리오 34.3%, 현업 매니저 평가 31.1%, 면접 및 과제 전형 28.9% 등으로 분산돼 있었다. 별도 기준 없이 개별적으로 판단한다는 응답도 28.6%에 달했다. 조직의 AI 성숙도와 무관하게 평가 프레임 자체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렙은 이번 조사가 지난 3월 전 직군 대상 AI 역량 평가 서비스를 정식 출시한 직후 수집된 데이터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현장에서 제기돼 온 AI 역량 진단의 어려움과 평가 기준 부재 문제가 수치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임성수 그렙 대표는 “AI 도입 성과는 실무자가 기술을 얼마나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다루느냐에 결정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실력을 가늠할 객관적 잣대가 없어 혼란을 겪는 상황”이라며 “그렙은 기업들이 각자의 성숙도에 맞는 판단 기준을 세우고 실질적인 AI 전환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와 평가 체계를 제공하는 든든한 가이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준문 기자/jun@newsta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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