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었다. 내가 2005년 창립부터 몸담았던 폭스바겐 코리아가 한창 분위기를 올리고 있었다. 매해 두 배 성장하면서 2008년에 드디어 연간 판매량 5천대를 넘겼다. 당시 시장을 뒤흔들었던 여러가지 파격적 행보를 통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탈바꿈하면서 만들어낸 결과였기 때문에 더욱 보람이 있었다.
그러나 도전해야 할 벽도 분명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높은 벽이 바로 혼다였다. 2008년 혼다는 12,356대를 팔았다. 수입차 브랜드 최초로 1만대 벽을 넘어섰고 당연히 수입차 브랜드 1등이었다. 폭스바겐 코리아보다 단 1년 먼저 출발한 혼다 코리아인데 판매량은 두 배가 넘게 차이가 나 버렸다. 게다가 혼다는 어코드 3.5와 2.4, 그리고 CR-V가 수입차 베스트셀러 탑 5의 세 자리를 차지하는 아주 안정적인 구조를 향유하고 있었다. 나처럼 좌충우돌할 필요가 없었다. 숨이 찼다.
그랬던 혼다가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어제인 4월 23일, 금년말을 마지막으로 국내 시장에서 승용차 판매 중단을 발표했다. 이륜차 판매에만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회의 도중에 뉴스를 접했고 나는 회의를 중단시켰다.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혼다는 내게 거대한 산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충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개인적 감상을 배제한다면 혼다 코리아의, 그리고 더 나아가 혼다의 현재 상황은 많은 시사점을 남겨준다. 어쩌다가 혼다가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가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2009년으로 돌아간다. 전년도에 1만2천대를 넘기며 독보적인 수입차 1위를 했던 혼다 코리아는 이듬해인 2009년에는 판매량이 4,905대로 폭락하였다. 물론 리먼 사태로 경기가 위축되었다고는 하지만 전년과 거의 같은 판매량을 기록한 전체 수입차 시장에 비한다면, 그리고 내가 몸담았던 폭스바겐 코리아가 이 와중에도 거의 30%의 성장세를 이어나갔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대조적한 결과였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혼다 혼자만 가격을 15% 올렸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환율 폭등이었다. 그런데 다른 수입차 브랜드들은 가격을 거의 동결하였다. 그들도 막대한 환차손에 노출된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말이다. 나도 독일 본사와 환율 인상에 따른 가격 정책을 두고 수도 없이 밤샘 회의와 출장을 거듭했고 가격을 지켰던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브랜드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가격을 지키거나 소폭 인상으로 제한했다. 그런데 혼다는 15%의 가격 인상을 결정한 것이다.
물론 엔화가 달러나 유로보다 더 올랐던 것은 사실이다. 혼다가 환율 인상분을 모두 가격 인상에 반영한 것도 아니었기는 하다. 하지만 같은 엔화 환율에 노출되었던 토요타 코리아의 공격적 가격 결정과는 상반되는 전략이었다. 더욱이 토요타 코리아는 2009년이 처음 진출하는 시점이었고 따라서 혼다 코리아와는 달리 수익을 축적할 기회도 없이 고스란이 환차손에 노출되는 환경이었는데도 말이다.
혼다 코리아가 가격 인상을 선택한 데에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택 당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혼다는 가격 결정권을 본사가 갖는 구조다. 따라서 아무리 시장을 대변하는 혼다 코리아가 시장의 경쟁 환경과 성장 가능성을 대변하더라도 혼다 본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그런데 같은 의사 결정을 가진 토요타 코리아는 초기 시장 진입 단계에서 정 반대의 결정을 했다. 매우 공격적인 가격으로 토요타의 한국 시장 진출에의 의욕을 표현한 것이다. 즉, 시장의 잠재력을 적극 반영하여 공격적인 결정을 했다는 뜻이다. 단기적으로는 높은 환율이 수익성에 악영향을 미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환율이 안정될 것이고, 또한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감안한다면 단기적 출혈은 감수할 만 하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다.
요컨대, 혼다의 2009년 가격 인상은 시장 상황을 반영하기 어려운 의사 결정 구조와 리먼 사태에 의한 단기적 출혈을 감내하지 못하는 본사의 전략적이지 못한 결정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결정은 국내 시장에서 혼다가 다시는 한국 수입차 시장의 강자가 되지 못하는 결정적인 패착이 되고 만다. 기껏 열었던 일본 브랜드의 시장은 고스란히 토요타 코리아가 가져갔고 혼다는 이후 2017년에 딱 한 번 1만대를 넘었을 뿐 오늘의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두번째는 현실 반영의 부재다. 대표적 예가 2023년에 발표한 온라인 판매를 통한 혼다 코리아 직판제일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원 프라이스 정책을 통하여 고객 신뢰를 높일 수 있고, 딜러들도 가격 할인 이외의 고객 서비스 등 질적 경쟁으로 전환하는 장기적 선순환 구조를 꾀할 수 있다. 게다가 테슬라가 온라인 판매만으로도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는데다가 다른 브랜드들도 온라인 직판제를 고려하는 등 분위기 반전을 위한 선제적 조치로 리스크도 크지는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공론에 불과했다. 테슬라가 온라인 직판제로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독보적인 브랜드 이미지, 온라인 판매에 익숙한 성향의 가망 고객층, 그리고 반발할 수도 있는 기존 딜러사가 없는 ‘시작부터 온라인 판매’였다는 점 등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결과였다. 이에 비하여 혼다는 시장에서 더 이상 강자의 입장이 아니었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고객층이 일본 브랜드의 주요 고객이었기 때문에 온라인 판매 방식이 낯설었을 것이며, 딜러사들은 자신들이 금융 비용을 부담하는 딜러 재고를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판매에 느슨해질 여지가 생겼다는 점 등 실패할 요소들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혼다 코리아는 재고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어 비용 구조가 악화되고 금융 리스크를 더 지게 되었으므로 마케팅 및 판촉 예산에도 악영향을 줄 우려가 발생하였다. 또한 재고가 수입사와 딜러사에 분산되지 못하므로 재고 확보량도 줄어들어 판매 기회에도 악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딜러사 입장에서는 신차 판매 마진이 수수료 수준으로 낮아지므로 애프터서비스에만 주 수입원을 의존해야 하므로 전반적 사업성이 악화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요컨대 혼다의 온라인 직판제 결정과 도입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중요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는 정확한 현황 분석과 치밀한 시행 계획이 필수적이다. 이에 더하여 강력한 실행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혼다 자체의 경쟁력 약화를 들 수 있다. 혼다 하면 떠오르는 말이 ‘기술의 혼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혼다의 현재 상황은 이런 이미지를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제품 라인업은 여전히 어코드와 CR-V에 집중되고 있으며 파일럿이나 오딧세이 등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여기에는 파일럿과 오딧세이는 고유가 – 친환경 시대에 걸맞지 않은 대배기량 휘발유 엔진만 존재한다는 것도 커다란 이유. 전체 라인업을 하이브리드 중심으로 꾸린 토요타와 대조된다. 게다가 고관여 고객들을 흡인할 수 있는 고성능 – 스포츠 이미지에서도 GT86으로 꾸준한 이미지 빌드업을 하고 있는 토요타와 역시 차별화된다.
게다가 최근 프로젝트 자체가 취소된 아필라로 대표되는 전기차 라인업의 부재는 혼다가 더 이상 혁신적이지 않은 브랜드라는 실망감으로 이어진다. 즉, 혼다의 핵심 경쟁력이었던 혁신과 엔지니어링 주도 이미지가 손상된 것이다. 게다가 아필라 프로젝트는 컨셉 모델만 몇 해 동안 선보이다가 겨우 예약을 받았지만 결국 취소되고 모두 환불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는 등 주요 프로젝트의 추진력과 경영 능력 자체를 의심받는 수준까지 이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혼다는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현재의 시장에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현재 경쟁력이 가장 강한 모델로 핵심 시장층을 공략하는 전술적 능력 만으로도 시장에서의 상황을 돌이킬 여지는 충분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재 혼다는 안주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혼다 본사는 자동차 판매가 잘 되는 북미 시장과 일본 내수 시장, 독보적인 세계 시장 장악력을 가진 이륜차 중심의 포트폴리오에 안주하는 형태다. 그리고 이런 결정은 우리 나라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졌다. 국내 시장 1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혼다 이륜차 사업부에 의존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안주의 끝은 그리 밝지 않다. 이미 혼다는 동남아 시장에서 중국차에 자동차 시장을 대폭 잠식당하고 있다. 아직은 굳건한 동남아 및 인도 이륜차 시장에서도 인도 자체 브랜드들의 성장, 그리고 중국산 전기 이륜차 모델에게 위협받고 있는 것도 이미 현실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륜차 시장의 미래는? 솔직히 밝다고는 할 수 없다. 국내 제작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륜차 산업이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퍼스널 모빌리티에 대한 정책적 추진 의지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e-커머스의 폭발적 성장에 따라 딜리버리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륜차의 사회적 역할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반대로 이륜차 라이더에 대한 사회의 불만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번호판 제도가 개편되었고 전면 번호판도 수시로 정책에 거론되고 있다.
혼다 코리아가 이륜차 사업에 의존하여 생존하고 싶다면 국내 이륜차 산업의 미래 생태계에 투자하는 방법밖에 없다. 라이더 교육을 위한 혼다 에듀케이션 센터를 설립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국내 이륜차 공급망과 연계된 미래 모빌리티의 개발에도 투자하는 등 유럽 브랜드들이 국내 공급망과의 연계를 통하여 관계를 고도화하는 것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현재 혼다 이륜차는 서울을 비롯하여 다수의 딜러를 모집하고 있다. 혼다 코리아가 이륜차에 주력한다는 발표를 하는 시점에 이륜차 딜러 네트워크가 탄탄했다면 더욱 신뢰가 갔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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