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미국의 온라인 영화 플랫폼에서 큰 인기를 얻은 ‘K-팝 데몬 헌터스’는 알려진 대로 한국계 캐나다 감독의 원작을 바탕으로 미국에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에서 만든 3D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런데 5년 전에 애니메이션 제작을 시작할 때는 전 세계적인 코로나 감염병 시기이어서 극장 개봉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는 데다가, 내용에 한국적인 것이 너무 많아서 글로벌 흥행이 어려울 걸로 보고 온라인 플랫폼으로만 하는 조건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의 제작 과정에서도 제작사 측에서는 지속적으로 한국적 요소를 줄여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감독과 작가는 원안대로 제작하려는 의지를 지켰고, 그로 인해 오히려 개성이 강해져 인기를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애니메이션은 한국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우리 주변의 사물과 공간들이 많이 나옵니다. 컵라면부터 편의점, 한의원, 설렁탕 식당, 그리고 남산의 성곽과 타워 등 우리 눈에 익숙한 모습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민화(民畵) 호작도(虎鵲圖) 속의 호랑이와 까치를 모티브로 한 ‘더피(Derpy) ‘서씨(Sussie) 라는 캐릭터도 나옵니다. 실제 영화 속에서는 이들은 그저 tiger(호랑이)와 bird(새)로 언급됨에도 사람들이 이들의 영화 속 이름을 찾아내서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이들 캐릭터의 바탕이 된 조선시대의 원작 그림을 보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의 방문객이 크게 늘어나 전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순위에서 1~2위에 오르는 건 물론이고, 호작도 모티브의 기념품은 가져다 놓는 즉시 매진된다고 합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야말로 단군 이래 초유의 사태라고 합니다.
‘K-팝 데몬 헌터스’의 원작자는 춤과 노래로 구성된 굿으로 악귀를 물리치는 우리나라의 전통 무속인을 모티브로 했다고 합니다. 무속인은 영어로 데몬 헌터(demon hunter), 퇴마사(退魔士)이므로, 애니메이션 속의 주인공 세 사람 루미, 미라, 조이 등은 우리나라 전통 무속인의 21세기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단지 무속을 소재로 한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의 노래, K-pop이 전체 이야기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세 사람이 이룬 헌트릭스를 비롯해 사자보이즈 등 가상의 한국 남녀 아이돌(idol) 가수들의 노래가 세계 음원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상을 받는 등의 초유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자극을 받은 중국과 일본이 자국의 노래를 각각 C-pop과 J-pop 등으로 칭하며 세계에 알리려고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만, 어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K’가 붙는 것이 세계인들의 시선을 잡는 시대가 됐습니다. 여기에서 ‘K’는 물론 한국, ‘Korea’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코리아의 본래의 알파벳 표기는 ‘Corea’ 였습니다.
그것은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왔던 스페인 배의 선원들이 고려(高麗)의 발음을 스페인어로 쓰면서 Corea로 표기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계속 그렇게 쓰이다가 일제강점기에 C를 K로 바꾸어 알파벳 순으로 Korea가 Japan의 뒤로 가도록 한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그렇게 해서 ‘K’가 됐지만 결국은 K-pop은 C-pop이나 J-pop보다 훨씬 더 입에 착 달라붙는 이름이 됐습니다. K-pop이 이렇게 지명도가 높아진 것도 어감이나 발음이 좋은 것도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편, 요즘 우리나라의 차 이른바 K-car의 평판은 과거에 싼 가격으로 팔리던 때와는 다르게 고유의 디자인과 미학, 그리고 넓은 실내 공간으로 인해 이제는 싸구려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K-car라는 이름은 조금 옛날로 가 보면 기아자동차가 1989년에 준중형 승용차로 개발했던 캐피탈 승용차의 개발 코드이기도 했습니다.
K-car는 기아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1970년대 말에 파산 직전이었던 미국의 크라이슬러(Chrysler)를 되살려낸 경영인 리 아이어코카(Lee Iacoca; 1924~2019)는 K-car 라는 차량 개발 계획으로 2,400cc 앞바퀴 굴림 승용차 플랫폼으로 연비 나쁜 덩치 큰 승용차를 대체하는 중형 승용차와 최초의 미니밴도 개발해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키기도 했습니다.
즉 오늘날의 플랫폼 공용화의 개념을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크라이슬러의 K-car였던 것입니다. 크라이슬러의 K-car는 리무진 모델로도 개발되는 등 플랫폼 공용화 개념을 확대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물론 기아의 K-car와 크라이슬러의 K-car는 서로 관련은 없지만, 모두 실용적인 차량으로 개발됐다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한편 크라이슬러의 역사 속에는 1951년에 나온 K310 모델도 있습니다. K로 시작하는 이름의 이 모델 K310은 시간이 지나 2005년에 크라이슬러가 벤츠와 합병 이후 혁신적 디자인으로 내놓았던 300C 모델 계보의 시초 차량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1951년의 K310의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등이 2005년의 300C와 닮아 있기도 합니다.
이런 걸 보면 ‘K’라는 알파벳이 미국인들에게는 낯설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국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 중에는 ‘K-mart’라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이들 K와 우리의 K-pop이나 K-car는 직접 관련은 없지만, 적어도 이름 자체는 생소한 건 아닐 것입니다.
한편 놀랍게도 미국 온라인 영화 플랫폼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100번 넘게 본 미국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 ‘케이 팝 데몬 헌터스’가 저렇게 인기를 얻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신 분들도 아마 느끼셨을 것입니다만, 영화 속에 나온 K-pop 노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정서였던 ‘한(恨)’을 승화한 감성이 녹아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주제가였던 ‘Golden’을 비롯해서 말미에 나오는 ‘What it sounds like’ 같은 곡들은 누구나 살면서 느꼈을 법한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 했던 정서와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을 가사에 담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은 건 지도 모릅니다.
단지 악귀를 퇴치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울림을 주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실제로 주인공 루미의 목소리를 연기한 한국계 미국 성우 Arden Cho는 유년기에 자신이 동양인이라는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경험으로 인해 더욱 더 주인공 역할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하며, 루미의 노래를 부른 가수 EJ 역시 한국에서 10년 넘게 연습생 생활하다가 데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해 미국으로 돌아간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의 원작자가 영화에서 지키고자 했던 한국적 요소의 바탕에는 저러한 ‘약자가 가진 한’의 정서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세계인이 공감하는 K-문화는 우리의 심연에 있는 그런 정서가 바탕이 돼서 그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리고 그런 고난 극복의 정서는 우리의 생활 공간과 사물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자동차에 까지도 녹아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저작권자(c) 글로벌오토뉴스(www.global-auto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저작권자(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