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럭셔리가 '넘볼 수 없는 거리감'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면, 현대의 럭셔리는 '소속감과 유대감'을 심는 비즈니스로 진화했다. 최근 서울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공간으로 꼽히는 성수동 쎈느(Scène)가 붉은빛 열정으로 물들었다. 페라리코리아가 국내 최초로 몰입형 브랜드 팝업 공간인 ‘카사 페라리(Casa Ferrari)’를 공식 오픈한 것이다. 페라리는 이 자리에서 브랜드의 차세대 오픈톱 모델인 ‘페라리 아말피 스파이더(Ferrari Amalfi Spider)’를 국내 최초로 공개하며, 한국 시장을 향한 전례 없는 구애의 메시지를 보냈다.
카사(Casa)는 이탈리아어로 '집'을 의미한다. 페라리에게 카사 페라리는 브랜드 DNA를 가장 고밀도로 압축한 환대 공간이다. 개념의 기원은 F1 서킷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알버트 파크에서 처음 시작된 트랙사이드 호스피탈리티 시설이 싱가포르, 실버스톤, 마이애미 등 주요 그랑프리로 퍼져 나갔고, 이후 페블 비치 콩쿠르 델레강스와 같은 명망 있는 클래식카 행사장에서도 운영되기 시작했다. 카사 페라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의 저택이나 빈티지 건물을 통째로 빌려, 이탈리아식 환대 문화와 극소수 초대 고객만을 위한 완전한 독점성을 결합하는 것이었다.
미국 이스트 햄튼에서 열린 카사 페라리는 페라리 VIP와 선별된 인플루언서만 입장할 수 있는 극도로 제한적인 행사로 운영됐으며, 그 분위기는 마치 엔초 페라리의 자택 거실에 초대받은 것과 같았다고 참가자들은 묘사했다. 멜버른 카사 페라리 행사를 담당한 관계자는 "페라리는 항상 모터스포츠 세계에서 주목받지만, 카사 페라리 건물 자체가 하나의 명소가 됐다"고 했다.
그런 카사 페라리가 6월 8일 서울 성수동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반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오너 전용 VIP 라운지와 퍼블릭 세션을 함께 운영한다는 구성 자체가 카사 페라리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형식이었다.
2025년 9월, 페라리 본사는 효성 그룹 계열의 FMK와 합작법인 형태로 페라리코리아를 설립하며 한국 시장에 '직접 진출'을 선언했다. 페라리 본사가 지분 51%를 확보하고 차량 수입, 인증, 가격 책정, 마케팅, 딜러 네트워크 관리 등을 직접 맡는 구조다. FMK는 딜러로서 전시장 운영과 차량 판매·서비스에 집중하게 됐다.
이러한 법인 설립은 페라리가 한국 시장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했음을 의미한다.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브랜드 일관성과 고객 경험을 본사 기준으로 끌어올리는 전략의 연장선이었고, 한국은 그 우선 대상국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다. 카사 페라리 성수동 팝업은 그 출범 이후 8개월 만에 내놓은 전략적 행보이다. 청담동의 고밀도 럭셔리 스트리트도, 강남의 상업 중심가도 아닌 공장과 카페가 공존하는 성수동을 택한 것 또한, 기존 오너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고객 접근 폭을 넓히기 위한 의지도 담겨 있다.
2024년 기준, 페라리 신차 판매의 81%는 기존 오너에게서 나왔다. 다시 말해, 페라리는 높은 고객 충성도를 갖고 있는 브랜드다. 페라리는 이 반복 구매 사이클을 설계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커뮤니티에 투입한다.
페라리는 고객이 행사에 얼마나 참여하는지, 어떤 모델을 보유하는지에 따라 새 차량 배분 우선권을 차등 부여하는 방식으로 커뮤니티 참여를 실질적인 혜택과 연결한다. 카발카데(Cavalcade) 드라이빙 투어, 코르소 필로타(Corso Pilota) 주행 교육, 패클토리 투어, 비공개 신차 프리뷰가 모두 이 생태계의 구성 요소다. 2030년 전략 발표에서 페라리 경영진은 "현재 9만 명의 액티브 고객이 있으며, 2022년 이후 3만 2300명의 신규 고객을 브랜드에 유입했다"고 밝혔다. 카사 페라리 운영 기간 중 6월 14일에 WEC 르망 24시 라이브 뷰잉 세션을 고객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사기관 베인앤컴퍼니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1997~2012년생)는 2030년까지 전 세계 럭셔리 구매의 약 3분의 1을 담당할 전망이며, 밀레니얼 세대는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럭셔리 시장의 무게중심이 빠르게 젊어지고 있다.
이 세대는 자동차를 다르게 경험한다. 전시장 방문보다 SNS로 먼저 접하고, 제품보다 브랜드가 만드는 라이프스타일에 먼저 공명한다. 소셜 미디어는 Z세대의 구매 결정에서 브랜드 충성도와 제품 발견 경로를 모두 형성하는 핵심 채널이 됐다. 성수동의 팝업 문화는 그 접점을 가장 밀도 있게 구현하는 형식이다.
국내 최초로 열린 '카사 페라리'는 스스로도 그 문법을 따랐다. 행사 예약이 열린 지 1시간여 만에 전 회차가 매진됐고, 인스타그램과 각종 커뮤니티에는 입장 인증 사진이 빠르게 퍼졌다. 카 오너만이 아닌 브랜드 팬을 만들겠다는 전략이 적어도 이번 '카사 페라리'에서는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과거 럭셔리 브랜드는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높은 벽을 세워 가치를 유지했다. 가격 장벽과 제한된 공급은 브랜드를 동경의 대상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였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의 확산과 소비 세대의 교체로 이러한 수직적 거리감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현대의 소비자는 일방적인 우러러보기를 거부하고 브랜드와 대등한 위치에서 소통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글로벌 명품 기업들은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을 전면 수정하고 있다. 희소성을 무기로 삼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소비자가 브랜드의 세계관에 깊이 동참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현대 럭셔리 비즈니스의 핵심은 제품 자체보다 그 제품을 둘러싼 공동체의 유대감에 기반한다. 소비자들은 특정 브랜드를 소비함으로써 자신과 취향이 같은 집단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얻는다. 기업들은 오프라인 전용 멤버십 공간을 운영하거나 독창적인 디지털 커뮤니티를 구축해 고객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유도한다.
이러한 커뮤니티 중심의 접근은 고객의 브랜드 충성도를 붙잡아 두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일회성 구매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유대 관계를 맺음으로써 브랜드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효과를 거둔다. 소유를 통한 과시보다 깊은 관계 형성이 현대 럭셔리 시장을 움직이는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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