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영국의 자동차 산업계가 브렉시트 무역 협정에 의거해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전기차 원산지 규정을 추가 유예해 달라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를 상대로 거센 압박을 가하고 있다. 중국 자동차 업계의 가공할 만한 생산 과잉과 환율 우위를 앞세운 공세 속에서, 준비되지 않은 규제 강행이 유럽 완성차 제조사들의 경쟁력을 완전히 붕괴시킬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EU-영국 무역협력협정(TCA)에 따르면 오는 2027년 1월 1일부터 무관세 혜택을 유지하며 전기차를 교역하기 위해서는 한층 엄격해진 역내 부품 조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차량 총 가치의 최소 55%가 유럽 대륙 내에서 생산되어야 하며, 핵심 부품인 배터리 팩의 70%, 배터리 셀의 65% 이상이 반드시 EU나 영국 현지에서 제조되어야 한다. 이 요건을 단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양국 간 교역 시 10%의 징벌적 관세가 즉각 부과된다.
해당 규정은 당초 2024년 발효될 예정이었으나, 유럽 내 배터리 생산 인프라 구축 속도가 정당 및 업계의 예상치를 크게 밑돌면서 이미 한 차례 3년 연장된 바 있다. 브렉시트 협정 초기에는 역내 배터리 제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배터리 팩과 셀의 현지 생산 목표를 30%로 설정하는 등 임시 이정표를 두기도 했다. 그러나 팬데믹 여파와 러-우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이 겹치면서 공장 증설 계획은 수년째 차질을 빚었다.
문제는 3년의 시간을 벌었음에도 산업계의 현실이 여전히 규제 장벽을 넘기 어렵다는 점이다. 유럽자동차제조사협회(ACEA)는 당초 규제 유예 당시인 2024년만 해도 2027년까지 승용차와 트럭을 아우르는 전체 배터리 물량의 60%를 유럽산으로 채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현재 추정치로는 2027년 시점 역내 배터리 생산 비중이 20% 미만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 역시 사정은 조금 나은 편이나 규제 기준치를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유럽 자동차 업계가 이처럼 자급제 달성에 실패한 배경에는 배터리 셀 제조의 핵심 원자재인 리튬 가공 및 정제 부문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끊어내지 못한 점이 가장 크다. 광산 채굴 단계에서 배터리급 소재를 양산하기까지는 수년의 긴 리드타임과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되는데, 현재 유럽 내 배터리 제조 원가는 중국보다 30% 이상 높은 실정이다.
공급망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세가 부과되면 EV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내수 수요를 위축시키고 유럽 자동차 산업의 공동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많다. 이에 따라 6월 18일 개최될 EU 정상회의에서 중국발 공급망 대응과 함께 브렉시트 EV 관세 유예 연장 건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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