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대표적인 양산차 제조사인 폭스바겐 그룹, 스텔란티스, 르노 그룹이 내수 제조업 보호를 목표로 한 메이드 인 유럽 규정 강화를 골자로 하는 공동 건의안을 EU 정책 입안자들에게 제출했다. 블룸버그를 비롯한 외신 보도에 따르면, EU 역내 자동차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하는 이들 3사는 유럽 집행위원회가 입법을 추진 중인 산업 가속기법 협상의 일환으로 이번 제안서를 전달했다.
3사의 공동 행동은 전략적 분야에서의 기술 격차, 높은 에너지 및 제조 비용, 규제 부담과 더불어 비야디(BYD) 및 상하이자동차(SAIC) 산하 MG 등 중국 브랜드들의 저가 전기차가 가하는 공세에 맞서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현재 유럽 자동차 산업이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연간 판매량이 약 300만 대가량 감소한 침체기를 겪고 있는 만큼, 현지 조달 및 생산을 촉진할 명확하고 강력한 제도적 틀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제출된 건의안의 핵심은 EU 회원국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유럽경제지역(EEA)을 포함한 지역에서 부품 가치와 노동력의 최소 70%가 창출된 차량에 한해 정부 지원 및 인센티브 자격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특히 이 현지 조달 비율(Local Content) 산정 기준에 최종 차량 조립뿐만 아니라 초기 연구개발(R&D) 작업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제조사들은 이 기준을 충족하는 유럽산 소형 전기차에 우선 적용될 예정인 '슈퍼 크레딧(Super Credits)' 제도를 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전기차로 확대 적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 슈퍼 크레딧은 친환경차 생산량에 가중치를 부여해 기업 평균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규제 달성을 용이하게 해주는 보너스 제도로, 이를 통해 가혹한 환경 규제 압박을 상쇄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EU에 기반을 두지 않은 해외 완성차 업체들은 이 같은 배타적 보호주의 움직임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토요타, 닛산, 재규어 랜드로버 등은 해당 제안이 통과될 경우 영국, 일본, 터키 등 유럽 인근 및 기존 공급망 국가에서 생산된 부품이 심각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나카타 요시히로 토요타 유럽 법인 사장 겸 CEO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들을 포용하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라며 "EU 외곽의 주요 제조 시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할 경우 글로벌 투자와 상업 활동 전반에 심각한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 집행위원회가 올해 3월 초안을 공개한 산업 가속기법은 오는 2035년까지 제조업의 EU 국내총생산(GDP) 기여도를 현재 14% 수준에서 20%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광범위한 산업 정책이다. 공공 조달과 보조금 지급 시 '메이드 인 EU' 제품을 노골적으로 우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향후 유럽 의회 및 이사회 협상 과정에서 역내외 제조업체 간의 이해관계 충돌과 보호무역주의 논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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